사막 곳곳 숨어있는 호젓한 물가… 에덴이 여기로구나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입력 2017-09-30 03:00 수정 2017-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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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성지이자 전쟁터’ 이스라엘의 속살

이스라엘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라면 예루살렘 성을 들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면 이 마사다가 아닐까 싶다. 300m 높이의 이 거대한 바위는 로마제국군대에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저항한 유대인의 요새. 여기가 요르단계곡이고 저 파란 부분이 해발 -415m의 사해다. 그 건너편은 요르단. 마사다(이스라엘)에서 summer@donga.com
이제까지 세 차례의 이스라엘 여행 취재. 그런데 최근 여행에서야 비로소 ‘성지’와 ‘종교’를 뺀 민낯의 이스라엘을 즐길 수 있었다. 그건 쉽지 않았다. 어디서 무얼 보든 이 두 주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서다. 지상최고(最古)의 도시 예리코(요르단강 서안지구)만 해도 역사가 1만 년에 이르고 기원전후도 구약 신약 두 성서에 기록돼서다. 로마·페르시아제국과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도 이곳의 고대·중세사는 드러난다. 게다가 예루살렘이 어딘가.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라는 세계 3대종교 성지로 오랫동안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렇다보니 기사 범주도 그걸 벗어나긴 힘들었다. 성지순례와 1만 년 역사유적을 다룰 수밖에.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통상의 여행지로 다뤘다. 자연과 먹고 즐길거리, 액티비티 중심으로. 그러자 새롭게 부각됐다. 지중해와 홍해, 스키장과 사막, 호수와 강을 두루 거느린 네게브사막의 오아시스로. 이렇게 보니 보기와 달리 살만한 땅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이제껏 의문이 들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구약의 표기에 수긍하게 됐음이다.

사막도 생명의 땅이다. 물이 있어서다. 비가 오면 강도 흐르고 평소엔 지하수로 존재한다. 도시와 마을은 모두 거기. 그게 오아시스다. 하지만 그 오아시스도 우리에겐 탐탁지 않다. 팍팍한 황무지, 견디기 힘든 땡볕 탓. 그런데 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늘(숲과 나무, 집안) 아래선 사막도 천국. 물까지 있으니 거기가 에덴동산이다. 이스라엘은 국토 80%가 건조기후(Arid·예상증발량이 강수량을 넘어선 곳)다. 그럼에도 비 내리는 겨울(11월∼이듬해 4월)이 있다. 지중해를 끼어서다. 그래서 헤르몬산에선 스키도 탄다. 극심한 일교차(20도 안팎)도 생존의 특혜. 해만 지면 선선해서다. 과일의 높은 당도도 그 덕분. 그런 이스라엘을 어떻게 즐길지 알아본다.

텔아비브의 벤구리온국제공항. 한 안내직원이 ‘킨네렛크로싱(Kinneret Crossing)’이란 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갈릴리호수 건너기 수영대회’. 올해로 64회째인데 여기 참가가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었다. 이튿날 예루살렘에서 옛 철도역부터 찾았다. 오토만제국 치하에서 독일기술진이 가설한 최초 철도(1900년)다. 현재는 레일도 뜯기고 역사(驛舍)도 커피숍으로 이용 중이다. 여길 찾은 건 세그웨이(Segway·서서 타는 두 바퀴 전동차)투어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예루살렘에서도 성밖 투어는 땡볕 아래서 많이 걸어야 해 실행자가 많지 않다. 세그웨이 투어는 그 대안으로 개발됐다. 두 시간 동안 곳곳을 둘러보기에 요긴했다. 탑승법은 5분이면 OK.


죽어가는 사해

이날 오후, 남쪽 요르단계곡의 사해로 향했다. 오후 네 시경 사해북단의 네베미드바 비치에서 몸을 담갔다. 무릎 깊이에서도 몸이 둥둥 뜨는 이 염해. 여러 차례 체험에도 여전히 신기했다. 사해 건너편도 황무지인데 거긴 요르단 땅.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 사해(이쉬타르)에서 여길 보며 물위에서 책을 읽던…. 그런데 아뿔싸, 비치에 둔 스마트폰이 오간데 없다. 곁에서 친절을 베풀던 아랍청년 역시. 누군가 알려주었다. 여긴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팔레스타인자치지구)라고. 국제법상 여긴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다.

이날 숙소는 요르단계곡 산기슭 오아시스의 엔게디 리조트. 키부츠가 운영하는데 시설도 식사도 훌륭했다. 이튿날 새벽 5시. 해맞이를 위해 마사다로 향했다. 마사다는 예루살렘 성 함락(70년)후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유대인의 바위산 꼭대기 요새. 1년 이상 포위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자 로마군은 흙과 돌로 산을 쌓아 정상까지 길을 냈다. 그렇게 공략한 요새. 그런데 여인과 어린이 몇 명뿐이었다. 나머지 953명은 모두 숨진 상태. 집단자결이었다.

애초 마사다는 예수시대 로마로부터 유대 땅 통치를 위임받은 헤롯 왕의 별장지였다. 그 실체가 드러난 건 1842년의 일. 지금 유적은 1960년대 발굴 결과다. 정상높이는 300m. 케이블카가 있어 쉽게 오르내린다. 하지만 운행은 오전 8시에 개시. 해맞이를 하려면 스네이크패스(Snake Path)라는 지그재그 산길을 50분쯤 걸어 오른다. 그날 새벽 해맞이객은 수백 명에 달했다.


갈릴리호수를 찾아서

요르단강이 시작되는 갈릴리호수 근방. 사막에도 이런 천국이 있다. 갈릴리(이스라엘)에서 summer@donga.com
사해와 갈릴리호수, 요르단강은 한 몸이다. 북쪽 갈릴리호수에서 흘러나와 강을 이룬 물이 고인 웅덩이가 사해다. 요르단계곡은 이 물길(요르단강)의 습곡. 사해의 높은 염도는 땡볕에 증발돼 남은 소금의 축적에서 왔다. ‘죽음의 바다‘란 이름은 생물생존불가의 환경에서 왔고. 사해 수위는 매년 1m씩 내려가고 있다. 유입수량은 줄고 증발량은 늘어서다. 농업·생활용수로 늘어난 물 소비와 지구온난화가 원인. 그래서 이미 오래전 호수중간쯤 바닥이 드러나 호수는 남북으로 갈렸다. 마사다는 북쪽 호수의 남단쯤에 있다.

성경에 따르면 요르단강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 등에게 침례를 준 곳. 위치는 최근에야 확인됐는데 사해 북쪽의 요르단 땅. 물길은 바뀌어 강에서 수백 m 떨어져 있다. 근처 강엔 침례를 받기 위해 찾는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양국 모두 마주한 양안에 침례시설을 두었다. 요르단강은 사해와 마찬가지로 양국의 국경. 평화협정 체결(1994년) 전까지는 최전선이었다. 지금도 침례소의 폭 20m의 강 양편엔 양국 무장초병이 경계를 선다.


여기가 에덴동산

내 여행 취재는 요르단강을 따라 북상하는 루트를 따랐다. 갈릴리호수는 물론 이리로 흘러드는 강의 발원지 헤르몬산과 골란고원까지. 요르단강의 최상류에서 놀라운 장면과 조우했다. 짙은 녹음의 강에서 물놀이 광경이다. 호수남단의 이 좁은 물길은 온통 나무로 덮인 숲을 관통하는데 사막엔 이런 천국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윽고 갈릴리호수에 닿았다. 기독교인에겐 예수가 물위를 걷고 산상수훈과 오병이어의 기적 등 예수의 공생활(公生活)이 전개된 성스러운 무대. 하지만 그를 예언자로 간주하는 유대교인에게 이 호수는 귀중한 수원이자 더없는 휴양지다.


갈릴리호수 바이크투어

킨네렛크로싱은 그런 국민정서가 반영된 이벤트다. 오전 6시 반 시작된 이 행사의 올 참가자는 1000명도 넘었다. 대부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대체로 5km 장거리보다는 1.5km 단거리에 도전했다. 도중 200m 간격으로 폰툰(pontoon·수상쉼터)을 띄워 유영을 돕는데 모두들 축제처럼 즐겼다. 기자도 1.5km를 어렵사리 횡단했다. 이튿날은 빌린 자전거로 호수남단 일대를 돌아보았다. 그 길에 이스라엘 최초(1910년 설립)의 키부츠(공동생산 공동소유 원칙의 협동농장 겸 주거지) 드가니아도 들렀다. 드가니아는 시오니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건설을 향한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 거기엔 A B C 세 개의 키부츠가 있는데 주업은 대추야자 시트론 멜론 등의 과일플랜테이션(대규모 기업영농). 마침 대추야자 수확 철이라 숲 그늘에선 선별 포장작업이 한창이었다. 갈릴리호반의 중심 타운은 티베리아스. 로마제국 당시 전상자 치료센터로 개발한 온천타운이다. 거기서 북쪽으로 15분 거리의 막달라는 최근 1세기 예수시대 유적이 발굴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막달라의 예수시대 유적

막달라는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걸 최초로 목격한 여인 마리아의 고향. 당시엔 200∼300명이 거주하는 어촌이었다. 그 유적은 순례자숙소 공사에 앞서 진행된 발굴조사 중에 발견됐다. 최고의 수확은 잘 보존된 1세기 유대교 회당.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갈라지게 된 시점의 유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엔 여성에 초점을 맞춘 종교시설도 문을 열었다. 호수 동안의 탑가(Tabgha)는 예수의 공생활 무대. 그 중심인 가버나움엔 그가 머물렀던 베드로의 집과 마을이 발굴됐다. 산상수훈과 오병이어 현장엔 제각각 기념교회가 조성돼 있다.


생명수의 발원, 골란고원

골란고원은 갈릴리호수 동쪽의 고지. 6일 전쟁(1967년) 때 도발한 이스라엘이 점령해 이제껏 지키고 있다. 시리아는 10월전쟁(1973년) 때 소련 지원의 미사일과 막강 탱크전력으로 권토중래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부족. 유엔평화유지군 관측소가 설치된 메롬 골란 고지(1165m)에 오르니 1973년 시리아의 1200대 전차군단에 단 몇 백대로 맞섰던 전장 ‘눈물의 계곡’이 훤히 조망됐다. 이곳은 현재 유엔군의 감시로 평화가 유지되는 전장.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사과 플랜테이션을 조성했다. 전장을 벗어난 갈릴리호반쪽 고원 서사 면엔 샤토 골란 등 수많은 와이너리가 있다. 이 고원이 전장이 된 건 여기가 갈릴리호수의 수원이기 때문. 호수유입 강의 발원지임은 물론 호반용출 샘물의 수원이어서다. 그런 만큼 두 차례 격돌은 물 전쟁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스라엘의 최고 기밀은 지하매설 상수도관 지도라고. 고원 곳곳엔 당시 벙커와 요새가 버려진 탱크 장갑차와 더불어 전시돼 보존 중. 예서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막에서 스키를

다음 행선지는 이스라엘 백두산이라 할 최북단의 헤르몬산(2803m).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3국이 만나는 곳인데 정상만큼은 시리아 영토다. 도중 레바논 국경의 미스가브암 키부츠에 들렀다. 거기엔 텅 빈 레바논마을이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다. 2006년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로 개시된 전쟁터인데 역시 유엔군 감시 하에 있다. 여기서 지방도 999호선은 헤르몬산을 뱀처럼 기어오른다. 그 끝은 헤르몬스키장(1651m). 체어리프트 세 개가 2041m 지점까지 오르는데 규모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니다. 사막의 스키장, 뜨악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라스베이거스(네바다주)에도 스키장(리캐니언·2642m)이 있으니 호사가들에겐 기막힌 도전거리다.


지중해의 해운대 텔아비브

이제 취재여정도 막바지. 처음 도착한 텔아비브로 돌아갔다. 많은 이들이 여기를 이스라엘 수도라 여긴다. 가장 크고 각국 대사관이 있는데다 비즈니스 허브여서다. 하지만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수도’라 규정했다. 요르단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무력으로 탈취, 예루살렘 전체를 차지한 6일 전쟁 이후의 일이다. 지중해변의 텔아비브는 성곽도시 예루살렘과 딴판이다. 고층빌딩의 도심이 비키니차림으로 태닝하는 여인들의 비치에서 멀지 않다. 팔레스타인과 갈등, 시리아 레바논과 전쟁, 이슬람과의 갈등이 여기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앤틱숍이 골목을 이룬 플리마켓(벼룩시장), 남대문시장처럼 북적대는 카멜마켓(재래시장)도 인상적이었다. 어른주먹만 한 석류 6개를 압착해 낸 과즙주스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상큼했다.

이스라엘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항공편:
대한항공(직항)이 텔아비브를 운항 중. 가는데 11시간 10분, 오는 데 10시간 10분 소요. 추천 숙소: ◇키부츠 운영 리조트 ▽사해 △엔게디: www.engedi.co.il ▽갈릴리호반 △기노사: www.ginosar.co.il ◇호텔 ▽예루살렘 △프리마로열: www.prima-hotels-israel.com ▽텔아비브 △얌(YAM): 비치가 도보 8분 거리의 부티크호텔. www.atlas.co.il 추천 식당: ◇텔아비브 ▽블루루스터: www.thebluerooster.rest.co.il ◇갈릴리호수 ▽막달레나: 멕달(Megdal)의 막달라 센터 소재 고급식당. 04-673-0064 ◇나자레드 ▽티슈린: www.tishreen.rest.co.il ◇요드팟(Yodfat) ▽고츠위드더윈드: 돌산 중턱(377m)의 염소치즈농장. 여주인이 직접 만드는 빵과 치즈, 샐러드로 음식도 낸다. 예약 필수. 050-532-7387 www.goatswithth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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