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악역… 그래서 더 섬뜩한

장선희기자

입력 2017-09-13 03:00 수정 2017-09-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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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범’ 현빈-‘조직보스’ 윤계상… 차기작에서 반전있는 배역 맡아
“관객 호기심 자극, 제작진 선호”


우락부락한 외모의 배우가 악역을 하던 시대는 갔다. 왼쪽부터 영화 ‘범죄도시’에서 생애 첫 악역을 소화한 배우 윤계상, ‘대장 김창수’의 송승헌, ‘브이아이피’에서 살인마를 연기한 이종석. 각 배급사 제공
겁나고 두렵지만 한 번쯤 꼭 도전하고 싶은….

배우에게 ‘악역’이란 이런 존재다. 최근 개봉한 영화 ‘브이아이피’에서는 배우 이종석이 잔혹한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아 주목받았다. 하얗고 순해 보이는 외모로 줄곧 ‘꽃미남’ 역할만 해 왔던 그는 이 영화에서 해맑게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까딱하면 기존의 맑은 이미지까지 잃을 수 있는 ‘도박’이었던 터라 주변의 만류도 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기 변신을 통해 “내가 연기 좀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악역을 선택한 그의 포부다.

험상궂은 외모의 ‘악역 같은’ 배우들이 악역을 맡던 시대는 갔다. 오히려 고운 외모의 꽃미남 배우들이 스크린의 주요 악역을 꿰차고 있다. ‘시크릿 가든’ 등 주로 멜로드라마에서 로맨틱한 연기를 선보여 온 배우 현빈은 JK필름이 제작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 ‘협상’에서 인생 첫 악역으로 희대의 인질범 역을 소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액션 코미디 영화 ‘공조’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해보고 싶은 역’을 묻자 바로 돌아온 답이 “악역”이었던 그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아이돌’이나 ‘꽃미남’처럼 고정된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서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 악역 선택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면서도 “다만 실패했을 때 기존 이미지마저 잃을 위험이 커 선뜻 택하기 어려운 양날의 검”이라고 밝혔다.

제작진도 그간 익숙한 악역 전문 배우들보다 ‘반전 있는’ 악역을 선호하는 추세다. 10월 개봉 예정인 액션 영화 ‘범죄도시’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윤계상이 신흥 범죄조직의 보스 ‘장첸’ 역할을 맡는 게 대표적이다. 제작진은 그동안 한 번도 악역을 하지 않은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하기를 원했다. 역시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도 송승헌이 극 중 악역인 일제강점기 감옥소 소장 역을 연기한다. 배우 경력 20여 년 만의 첫 도전이다. 12일 열린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그를 캐스팅한 이원태 감독은 “연출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사람을 다른 이미지로 앉혀놓는 것에 욕심이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연출이고 관객들에게는 재미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악역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기존의 이미지를 한 번에 뒤집는 도구가 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 악역 캐릭터가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도 반영됐다”며 “예상 밖의 배우가 악역을 맡으면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극에 신선함을 줄 수 있어 제작진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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