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아’ 했는데 ‘어’로 듣는 정치권

김창덕 산업부 차장

입력 2017-09-11 03:00 수정 2017-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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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국내 기업 A사와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B사는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국회와 정부는 A사에 적용되는 규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B사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A사 대표는 “역차별”이라며 규제 자체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국회는 그렇다면 B사도 규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나섰다. ‘황당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딱 들어맞는 말일 거다.

A사는 신세계, B사는 이케아다. 국회는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월 2회 영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는 신세계와 롯데 등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케아 역시 생활용품 전반을 팔고 음식점도 입점해 있지만 가구전문점으로 등록돼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스타필드 고양 개장식에서 “이케아는 왜 안 쉬나”라고 했다. 전후 맥락을 따져 보면 전통시장과 품목이 거의 겹치지 않는 복합쇼핑몰까지 규제를 적용하려는 데 대한 반어법적 이의 제기였다.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이 지역 소상공인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주무 부처조차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고 하는 상황이다. 규제의 합리성부터 입증해 보자는 취지였지, 타사에 대한 물귀신 작전이 아니었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국회는 이를 거꾸로 알아들은 듯하다. ‘이케아도 쉬도록’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국회에 계류 중인 28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모두 묶은 ‘종합판’을 곧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발의안마다 대형 유통시설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거나 의무 휴업 대상 확대, 월 4회로 의무 휴업 강화, 상권영향평가 범위 확대 등의 다양한 규제를 담고 있다. 업계에서 “규제 만들기만큼은 굉장히 창의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던 복합쇼핑몰 영업제한은 종합판에 당연히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한발 더 나가 규제 대상을 ‘취급 품목과 상관없이 매장 면적 1만 m² 이상(기준 미정) 유통시설’처럼 광범위하게 설정할 태세다. 역차별 논란을 피하려 그물을 더 촘촘히 짜고 있는 것이다.

이케아는 2014년 12월 오픈한 광명점(13만2000m²)과 올 10월 문을 여는 고양점(16만4000m²) 모두 영업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안드레 슈미트갈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가 방문하고 싶을 때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케아는 2020년까지 한국 내 매장을 4개 더 추가할 예정이었다. 7월 채용된 고양점 직원 550명을 포함해 총 4000개의 일자리가 기대됐다. 국회의 ‘규제 만능주의’가 행여나 이 귀한 일자리들을 내던져버리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훨씬 좁아진 그물눈(강화된 규제)을 통과하지 못할 치어(중소 쇼핑센터)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파악도 안 된다.

유통산업발전법이 1997년 7월 제정됐다. 대규모 점포에 대한 허가제가 등록제로 바뀐 것도 그때였다. ‘소비자 보호’는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 건전한 상거래 질서 확립과 함께 이 법의 목적으로 명시돼 있다.

20대 국회 개원 다음 날인 지난해 5월 31일 조경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2명이 다시 허가제로 되돌리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이 발의안 아래 ‘소비자들도 국민입니다’란 제목으로 다음 같은 댓글이 달렸다. “국회의원님들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은 좋은 상품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정치권이 설마 이 글귀까지 오역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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