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면서 다시 차오르는 ‘재첩’의 맛

동아경제

입력 2017-09-09 13:00 수정 2017-09-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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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섬진강의 가을이 좋은 이유
일일이 발라낸 재첩 살과 부추를 듬뿍 넣은 재첩국. 여러 가지 채소와 사과, 김을 넣어 무쳐 먹는 재첩숙회. 뜨거운 밥에 재첩 살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는 재첩비빔밥(위부터).


섬진강의 봄은 완벽하다. 강가와 낮은 구릉마다 매화와 벚꽃이 차례로 흐드러지게 피고 물에서는 재첩, 다슬기, 참게, 벚굴이 풍성하게 잡힌다. 눈도 입도 호사롭게 섬진강을 누릴 수 있는 때가 봄이다. 하지만 나는 여름과 가을이 만나는 이맘때의 섬진강을 잊을 수 없다. 길가에 선 나무는 잎이 풍성해져 올록볼록 초록으로 가득하다. 그림처럼 푸른 하늘은 한낮엔 뜨겁다가도 오후가 되면 빛도, 색도 그윽해진다. 멀리 보이는 낮은 구릉 역시 여름 나무로 덮여 색이 곱고 능선도 가지런하니 예쁘다. 절정의 풍경은 해 질 무렵 시작된다. 하늘이 밝은 파랑에서 검붉은색으로 수차례 뒤바뀌며 하늘과 강이 하나가 된다. 해가 영영 넘어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이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인 줄 알면서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재첩은 섬진강에서 잡은 것을 최고로 친다. 바지락처럼 생겼지만 훨씬 작은 세모꼴 조개가 재첩이다. 하동지역에서는 ‘갱조개’, 즉 강의 조개라 부르며 부산에서는 ‘재치’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낙동강에서도 재첩을 많이 잡았지만 하구에 둑이 생기면서 지금은 섬진강에서 주로 잡는다. 모래에 사는 재첩은 껍데기 색이 노르스름하고, 갯벌에 사는 것은 펄처럼 흑빛을 띤다. 섬진강 재첩은 대부분 거무스름한 색이다. 산란기인 여름을 제외하면 봄, 가을에 살이 오르고 맛도 좋다.

재첩은 잡아서 먹기까지 손이 꽤 많이 간다. 흙바닥에서 재첩을 건져 올리면 작은 돌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야 한다. 뭍으로 가져온 뒤 물에 담가 그 작은 몸에 담고 있는 모래나 흙을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여러 번 헹궈가며 깨끗이 씻는다. 껍데기에 모래나 흙이 붙어 있으면 국물 맛을 버린다. 잘 씻은 재첩은 껍데기가 반짝거리며 제 색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커다란 솥에 재첩을 넣고 팔팔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이것이 재첩 진액이다. 이를 약으로 먹기도 하지만 식당에서는 밑국물로 쓴다. 여기에 물을 적당히 섞어 끓이면 시원한 재첩국이 된다. 밑국물은 두었다 새로 끓이는 다른 밑국물과 섞어가며 시원한 국물 맛을 맞춰 내는 것이 섬진강변 식당의 흔한 노하우다.

재첩은 삶으면 살이 꽤 떨어져 나오지만 껍데기에 붙은 살도 발라내야 한다. 삶은 재첩을 단단한 채반에 올려 살살 문질러 살을 발라낸다. 이것을 국이나 무침, 비빔밥에 넣기도 하고 전으로 부쳐 먹기도 한다. 재첩 요리는 뭐니 뭐니 해도 국이 최고다. 국은 재첩 삶은 국물에 소금 간만 하면 완성된다. 푸르스름한 우윳빛을 띠는데 생선탕보다 감칠맛이 좋고 시원하며, 텁텁한 맛이 일절 없다. 주로 부추를 듬뿍 넣어 먹는데 겨울에는 파를 썰어 넣어도 맛있다. 재첩은 피로 해소는 물론, 간의 활동을 도와 숙취를 푸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이를 알지 못하고 먹어도 그 깊은 감칠맛에 온몸의 긴장이 살살 풀리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진다. 게다가 식당 밖 풍경이 노을 지는 섬진강이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1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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