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도입 13년,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 개선해 실효성 높이자

동아일보

입력 2017-08-24 03:00 수정 2017-08-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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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전 한국노총 사무처장)
최근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네팔 노동자 두 명이 잇달아 자살하면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들은 과로에 지친 나머지 다른 공장으로 이직하길 원했지만,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업주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편법 활용과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일으킨 ‘산업연수생제도’(1993년 시행)의 대안으로 2004년 8월 시행됐다. 2010년 9월 국제노동기구(ILO)가 “선도적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평가하고, 2011년 6월 유엔이 ‘공공행정 대상’으로 선정할 정도로 국제 사회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노동 인권 측면에서 본다면 사업장 변경의 자유, 즉 ‘계약 체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의문이 생긴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한 이래 ILO 협약 189개 중 29개를 비준했다. 특히 111호 협약은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국적 또는 사회적 신분에 근거한 고용, 직업 차별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협약은 체결과 비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언적 규범이든 실체적 규범이든 ‘규범력’을 확보하려면 규범의 취지와 가치를 살려 제도를 만들고 개편해야 한다. 고용허가제의 취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편법 활용과 인권 침해를 막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을 개편하는 등 규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외국인 취업교육의 내실을 강화해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와 사업주의 갈등 해소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특히 노사발전재단 같은 공공부문이 이런 역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고용허가제와 ILO 협약의 규범력을 더 확보해나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결사의자유 등과 관련된 ILO 핵심협약도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법외노조 합법화 등 큰 쟁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중요하다. 협약의 실효성과 비준에 따른 후속조치를 위해 사전에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는 노력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정신이 환경을 선택한다”고 했다. 2019년은 ILO 창립 100주년이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노동환경은 극명하게 변한다.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전 한국노총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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