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풍망 한라봉’ 첫 시도… 최고봉 우뚝

임재영 기자

입력 2017-08-23 03:00 수정 2017-08-23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벤처농부 100만 시대 열자]<12> 제주 귀농 5년째… 하영농원 박용근 씨

17일 제주 제주시 한경면 ‘하영농원’에서 박용근 씨가 한라봉 나무에 영양제를 뿌리고 있다. 2013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박 씨는 비닐하우스 시설 대신 방풍망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최고급 한라봉을 생산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감귤 품종은 다양하다. 극조생을 비롯해 조생 만감류 금감 오렌지류 등으로 나뉜다. 조생종에 비해 다소 늦은 만감류 가운데 독보적 존재가 바로 한라봉이다. 한라봉 재배는 1990년대 중반 시작됐다. 꼭지 부분이 불룩하며 독특하고 강한 향, 높은 당도 덕분에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면서 고급 감귤의 대표주자가 됐다.

한라봉 재배는 상대적으로 높은 기온을 유지해야 하는 비닐하우스 시설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깬 주인공이 박용근 씨(62)다. 그는 난방을 하는 비닐하우스 시설이 없어도 고당도의 한라봉 수확을 실현해 냈다.

17일 오후 박 씨가 운영하는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하영농원’. 비닐하우스 대신 촘촘하게 짜인 모기장 같은 하얀 방풍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방풍망은 9300m² 규모 과수원의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간혹 다른 과수원도 방풍망 벽을 세운다. 박 씨의 과수원은 위에도 지붕처럼 방풍망이 설치돼 있었다.

“한라봉은 직사광선을 직접 쬐면 당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바람입니다. 한라봉의 상품성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열매가 바람에 흔들리며 여기저기 상처를 입으면 상품으로 출하하지 못해요. 그래서 농업기술원 지도사의 조언을 듣고 방풍망을 위에도 설치했는데 효과가 너무 좋습니다.”


○ 처음으로 실현한 방풍망 한라봉

방풍망의 장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겨울이나 야간에는 외부에 비해 온도가 3도가량 높을 정도로 따뜻하기 때문에 사실상 비닐하우스와 비슷한 효과를 본다. 바람이 솔솔 통하면서 신선한 공기가 공급돼 한라봉 나무는 다른 곳보다 건강하고 병해충도 덜하다. 3.3m²당 설치비는 약 6만 원. 비닐하우스 시설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견고성이다. 태풍이나 강풍 폭우가 잦은 제주의 기상 특성 탓이다. 자칫 방풍망이 찢어지거나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박 씨는 기초공사를 꼼꼼히 하는 방법으로 이겨냈다. 박 씨는 “시설물이 무너지면 철거하고 복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처음에 돈을 더 들여서라도 기초를 단단히 해야 한다”며 “방풍망을 지탱하는 파이프 지주를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땅속 암반에 박는 조건으로 공사를 맡겼다”고 밝혔다. 그 덕분에 그동안 여러 차례의 태풍과 폭설을 무사히 견뎌냈다.

2014년 박 씨는 4∼6년생 한라봉 나무를 심었다. 보통 2, 3년생을 심지만 일부러 잔뿌리가 많은 나무를 선택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뿌리내리길 바라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상품으로 내놓기에 다소 부족했지만 이듬해 1500kg을 수확했다. 올해는 9000kg을 생산해 5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무럭무럭 자라는 한라봉 나무 덕분에 3, 4년 내 연간 2억5000만 원의 소득이 예상된다.

박 씨의 한라봉은 14∼16브릭스(Brix·100g에 들어 있는 당 함량 단위)로 당도가 높다. 16브릭스는 꿀과 비슷한 수준이다. 향기도 진해 직거래를 통해 금방 팔려나간다. 비닐하우스 시설에서 생산된 한라봉보다 가격도 20%가량 높다. 그는 상대적으로 먼저 익는 나무 위 열매부터 수확해 1월 중순에서 3월까지 순차적으로 출하한다. 박 씨는 “남보다 먼저 출하하려는 조급함, 중간 상인의 농간 등으로 덜 익거나 강제 착색한 한라봉과 감귤이 시장을 흐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꼼꼼한 준비와 충분한 정보는 필수

박 씨는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가 고향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근로자로 일했다. 1984년 그는 누나가 있는 경북 포항시에 정착한 뒤 평소 취미였던 화초 키우기를 활용해 ‘삼다난원’을 운영했다. 한파로 난이 모두 동사해 커피전문점을 창업하기도 했다. 그러다 자녀가 모두 서울로 떠나고 아내(56)의 건강이 악화되자 귀촌 귀농을 결심했다.

2013년 고향으로 온 박 씨는 한라봉 농사를 선택했다. 불과 4년 만에 박 씨의 과수원은 한라봉 본거지인 서귀포에서 전문가들이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박 씨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주시 귀농귀촌협의회 회장을 맡아 다른 사람들의 귀농을 돕고 있다. 그는 “귀농 대출이나 보조 등 지원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농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종잣돈을 날릴 수 있다”며 “미리 충분한 정보를 얻고 자문한 뒤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