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의 연극인 열전]극작가 고연옥 “당분간은 신화 속에서 놀고 싶다”

동아일보

입력 2017-07-15 17:32:00 수정 2017-07-15 17: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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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고연옥이 지상에서 구름 위로 승천했다. 2001년의 데뷔작 ‘인류 최초의 키스’ 등 초창기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은 월간지 기자생활의 경험을 살려 사건사고에 바탕을 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작품들은 신화(神話) 속으로 달려갔다. 그는 말한다. “신화란 인간 본성의 어떤 부분이 극대화된 이야기”라고. 즉 신화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하생활자들’ ‘내 이름은 강’ ‘처의 감각’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고연옥의 다음 놀이터가 궁금하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경우에는.

기자 출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기자 출신이라서 인터뷰를 안 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인터뷰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나.

“본인의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


‘기자스럽게’ 물고 늘어졌다.

그럼 당신은 기자 시절에 인터뷰한 사람의 의견을 100% 잘 전달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다만, 기자들이 틀을 정해놓고 자극적으로 쓰는 게 싫다. 소모되는 게 싫다. 작품이 아닌 것으로 얘기하는 게 웃긴다. 공연을 보면 알 걸, 그 전에 ‘이건 엄청난 작품’이라고 홍보를 하는 게 유치하지 않나.”

그는 젊었을 적에는 소위 보수 언론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국립극단과 일을 할 때, (당시 연극담당이었던)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가 내 작품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잘 써 줬다. 보수 언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됐다.”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자 경험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사건사고 전문 작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외로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본인도 종종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요즘 사건사고보다 신화(神話)의 세계에서 놀고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극작가 고연옥(46)이다. 7월 10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1. 기자와 작가 사이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1살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고교 때 교회에서 배우 2명과 음악 하는 친구를 데리고 3년 내내 무언극을 연출했다니, 연극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대학은 동아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글쓰기를 좋아했으나 직업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한의사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워낙 수학을 못해서, 수학을 안 해도 되고, 졸업하면 영양사 자격도 준다는 식품영양학과를 선택했다. 생활과학대 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교수님이 졸업생 중 두 번째로 취직을 시켜줬다. 그러나 기자가 되고 싶어 그 자리를 다른 졸업생에게 넘기고 나는 가지 않았다.”

이런 경우라면 분명 대학에서 연극 동아리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활과학대 기독교 동아리에서 대본과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리고, 전교 기독교 관련 행사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기독교가 복음만 전파해서도 안 되고, 사회참여와 약자원조도 해야 한다, 그게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 교회를 안 다니게 됐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긴 힘들지만…”

그는 졸업 후 1994년 부산MBC의 아동문학대상 소년소설부문에 등단해서 잠시 동화작가로 활동한다. 그는 “동화작가로 계속 일했으면 돈을 꽤 많이 벌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동화도 쓰고 글쓰기 교사로도 일하며 언론사 시험준비를 했다.

“사회부 기자가 꿈이었다”는 그는 부산에서 ‘시민시대’라는 월간지 기자가 된다.

“부산에 있는 월간지 기자로 들어갔는데 저한테는 정말 좋았어요. 자유롭게 취재꺼리를 정해서 길게 쓸 수 있었어요. 군 의문사 문제, 간첩조작 사건, 그런 억울하게 당하는 일들에 대해 몇 달을 취재해서 글을 썼어요. 방송국에서 피디수첩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 구성작가도 했어요”(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인’의 연극데이트, 2015년 8월 20일).

구성작가로 일한 프로그램은 부산KBS의 ‘PD현장보고’라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도 사회부 기자의 감각을 필요로 했다.

동화작가, 기자, 구성작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희곡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95년인가,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이윤택 선생님이 TV드라마, 시나리오, 희곡을 아우르는 ‘드라마 창작교실’을 열었는데, 차범석, 이강백 선생님, 박광수, 박철수 영화감독, 김운경 드라마작가, 쟁쟁하신 분들이 수업을 하셨어요. 그 때 처음 쓴 게 <백중사 이야기>였어요(실제로 공연되는 것은 2006년-필자 주). 이윤택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수업 시간에 나를 앞에 세우시더니 ‘이 사람은 작가가 될 겁니다’ 그러시더라고요. 되게 행복했죠”(앞에서 소개한 서울연극센터 웹진).

이윤택의 예고는 고연옥이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꿈이라면 좋았겠지’라는 작품으로 등단하면서 적중한다.


2. 실화와 신화 사이

2001년에 공연된 ‘인류 최초의 키스’는 고연옥의 데뷔작 겸 출세작이다. 실화에서 소재를 구하고, 인간을 극한 속으로 몰아가며, 개인은 거대한 권력 앞에 비참하게 무너지고, 그러면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초창기 작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작법의 일부는 지금도 변주를 해가며 구현되고 있다. 사진은 청소감호소 재소자인 학수가 사회보호위원회의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한 뒤 미쳐버려서 감방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자 동료재소자들이 말리는 장면. 극단 청우 제공


그의 작품이 무대에 처음 오른 것이 2001년 ‘인류 최초의 키스’다. 그로부터 15년 이상이 흘렀으니 그의 작품 세계에 변화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고연옥은 <인류 최초의 키스>(2001)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후 (중략) 권력의 폭력성과 자유의 문제를 다룬 사회극을 주로 발표했고, <발자국 안에서>(2007) <달이 물로 걸어오듯>(2008) <내가 까마귀였을 때>(2011) 등에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이는 알레고리극을, 최근에는 <지하생활자들>(2011) <내 이름은 강>(2012) <칼집 속에 아버지>(2013) <처의 감각>(공연제목 <곰의 아내>(2016)) 등 신화 소재와 모티프를 활용한 신화적 희곡을 발표했다”(김성희 한양여대 교수, ‘고연옥 희곡의 신화적 상상력과 신화 쓰기’, 드라마연구 51호, 2017).

우선 김 교수가 말하는 ‘사회극’이란 무엇인가. 사회성이 강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2003) ‘일주일’(2006) ‘백중사 이야기’(2006)와 나중에 발표한 ‘주인이 오셨다’(2011)도 그 범주에 들어갈 듯하다.

이중 ‘인류 최초의 키스’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는 각각 청송감호소, 경찰서 유치장, 군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사회극 3부작’, ‘남성 3부작’ 등으로 불리며 극작가 고연옥의 특성을 강하게 어필하며 연극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들 작품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연옥은 아이디어를 얻고, 쓰는 과정에서 기자로서의 경험과 감각, 취재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

‘인류 최초의 키스’는 청송감호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제도적이고 세속적인 구원이 아니라 그런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혔을 때 본인들이 생각하는 다른 차원의, 심리적이고 방어적인 구원을 말한다. 이 작품은 올해의연극 베스트3와 올해의 우수희곡으로 선정됐다.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뜻한다.

‘인류 최초의 키스’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했다.

“남편한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야기, 매혹적인 테마였다. 네가 쓸 수 있어!라고 묻는 듯했다. 내가 생각하던 구원이야기인데, 극적이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그 감정을 조금 거창하게 제목으로 붙여봤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청송감호소 출신자를 만났으나 결국은 취재도 못하고, 쓰지도 못했다. 정작 당사자는 잊고자 하는 기억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불러낼 수 있느냐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쓰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한 개인의 에피소드는 쓸 자격이 없지만, 인간 이하라고 취급 받는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은 더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그렇지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애기한테 말하고 싶었다. 일종의 태교였다고나 할까.”

이런 게 태교라고? ‘사건사고 전문기자’ 고연옥다운 발상이다.

‘웃어라 무덤아’는 한 할머니가 자신의 장례비를 품고 살다가 돈을 노린 동네 불량배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첫 애를 낳아 키우는 과정을 겪으며, 한 생명의 탄생이 이 세상에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죽음은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온 그 인생에 대한 위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이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과 어울려 있을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담고 싶었다”(한국연극, 2004년 1월호).

나는 고연옥의 이런 감정이 재일동포 유미리가 2000년에 밝힌 그것과 너무나 똑같아 놀랐다. 유미리는 그 때 아버지를 밝히지 않은 어느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면서, 10년간 동거했던 연극 연출가이자 암 선고를 받고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히가시 유타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었다. 즉 생명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아이를 중절하려고 생각했던 유미리는 이렇게 말한다. “히가시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내 뱃속의 생명 역시 빼앗아서는 안 되겠다는 사명감과도 같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동아일보 2000년 6월 12일자). 그는 그런 감정의 여정을 ‘이노치(命)’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지에 연재했고, 그것을 묶은 단행본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연옥은 왜 남성적인 스토리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사건 사고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연루된다. 남성성이 있다. 남성성을 해석하는 게 매력적이다. 나도 여자지만, 여성성은 잘 모르겠다. 어렵다.“

그런 그가 신화로 넘어가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고연옥은 김 교수가 사회극에서 신화극으로 넘어오는 중간에 알레고리극이라고 예를 든 ‘달이 물로 걸어오듯’과 ‘내가 까마귀였을 때’부터 이미 실화와 신화의 연결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막 작가가 되고나서 사회적인 사건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쓸 때는, 기자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혔다. 그때 신화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사건 사고도 나의 세계지만, 신화도 나의 세계다. 공부를 하면 이곳에서 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좀더 정제된 말로 설명하면 이렇다.

”어떤 사건들은 주기적으로 매우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아유기, 근친살해, 치정살해, 연쇄살인 등등 매우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충격을 덜 받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저는 그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본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건들의 면면이 신화 속 이야기와 닮은꼴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화’라고 하면 영원불멸하는 신들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저는 신화란 인간 본성의 어떤 부분이 극대화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신화만 해도 그렇지요. 자식 죽이고, 아버지 죽이고, 근친상간은 너무 흔한 이야기지요. 질투심 때문에 인간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어찌 보면 신들의 막장 드라마입니다“(2011년 10월 23일 국립극단 관객학교의 ‘극작수업’에서 한 발언. 고연옥 ‘극작수업Ⅱ’ 2012년).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부산에서 한 부부가 아내의 의붓엄마와 여동생을 죽여서 암매장한 사건과 남편이 구치소에서 참회문을 써 주었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고 콩쥐팥쥐와 신데렐라의 핏빛버전을 버무렸다.

그렇게 보면 ‘나는 형제다’도 보스톤 마라톤대회 결승선 테러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성경의 ‘카인과 아벨’ 형제를 끌고 왔다는 점에서 이 범주에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는 신화 속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들은 신화나 설화, 전설 등의 무게가 늘어나는데 ‘지하생활자들’은 뱀신랑설화, 또는 구렁덩덩신선비 설화에 강호순 사건을 입힌 것이고, ‘내 이름은 강’은 제주도 무속신화 ‘원천강(袁天江)본풀이’, ‘칼집 속에 아버지’는 바이칼 게세르신화, ‘처의 감각’은 곰나루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김성희 교수는 고연옥의 신화 쓰기를 이렇게 평가한다.

”고연옥의 신화 다시쓰기 방식은 신화의 줄거리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옮겨 놓는 단순한 번역의 차원이 아니다. 신화의 사유나 상징체계를 수용하면서도 신화의 서사나 인물, 의미구조를 현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가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다. …<지하생활자들> <내 이름은 강> <칼집 속에 아버지>를 관통하는 기본 정신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물신주의와 인간성 타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앞서의 논문)
신화 공부는 많이 하나.

”책을 많이 읽는다. ‘처의 감각’을 쓰기 위해서는 곰 관련 신화를 많이 읽었다. 여러 신화에서 원형과 유사성을 발견한다. 그러면 그걸 갖고 와서 활용한다. 신화 속에는 거친 것, 폭력적인 것, 순응시켜야 하는 것 등등이 들어있다. 신성(神性)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가려줄…. 인간을 아주 극한에 놓이기 해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 누군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부정했다.

”그렇지 않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도 아니고, 놀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리 잔인하지 않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분명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어느 기자가 고연옥 작가는 어둡고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광보 연출이 아닌데요, 보면 볼수록 희망을 얘기하는데요, 라고 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애만 쓰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극한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작가는 개인 만족이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작가의 위치라면, 자격이라면, 나는 그걸 작품 속에서 살려내고 싶다. 인간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확신하는 것만 압축해서 간결하게 전하고 있다. 작가의 꿈은 공연을 통해 관객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일부러 어렵게 쓰지는 않는다. 만약 내 작품이 어렵다면 그건 내가 공부가 덜 됐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화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 싶다. 현실의 눈으로는 해결 못할 것도 신화의 눈으로는 해결 가능한 것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3. 평론과 평론 사이

2011년 공연된 ‘주인이 오셨다’를 나는 악마성과 모성(母性)의 대결이라고 이해한다. 고연옥은 모성을 사전에서 쓰여 있는 것보다는 좀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주길 원하지만. 이 작품은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과 재일동포 3세여자의 수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사진은 자신이 겪는 모든 불행의 원천이 엄마 순이(속아서 한국으로 팔려온 흑인 매춘부)라고 생각하는 아들 ‘자루’가 엄마를 죽이려다 차마 죽이지 못하고 서로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 ‘자루’는 “너를 죽일 수 있는 악마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할머니와 아버지는 죽이지만, 엄마 순이는 그때도 죽이지 못한다. 순이를 모성과 구원의 상징으로 보는 이유다. 국립극단 제공
김성희 교수는 초창기 그의 작품들은 ‘고통과 구원:모성과 재생의 상상력’이라는 틀로 분석하기도 한다(2004년 연극평론 봄호). 고연옥의 작품은 희비극의 공존, 사실과 환상의 교직, 고통과 구원의 이중구조를 통해 모성과 재생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연옥도 그런 시각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모성(母性)’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했다.

”모성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가 아이들을 기를 때였다. 그런데 우리는 ‘모성’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모두들 입을 다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성은 인간 스스로 구원하려는 힘,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힘이다. 일상적인 감성이나 욕망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더 크고 높은 세계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처의 감각’에는 아이를 죽이는 엄마가 나오는데, 우리 앞에는 절대적인 감성, 즉 사랑, 애증, 증오, 분노가 있다. 모성도 그 중의 하나다. 모성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이중성과 위선도 들어있다.“

권경희 명지전문대 교수(연극평론가)는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마치 정언명제처럼 인간의 선함에 대한 강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그것을 부정해야 하는 쓰라린 진실과 회오를 각혈처럼 토해낸다“고 했다(‘때려도 보고 달래도 보는 김광보의 형식 찾기, 고연옥의 담론 풀기. 연극평론 통권 63호, 2011년 겨울호). 믿음에서 출발해서 쓰라린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쓰라린 진실 후에 믿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는 논쟁이 필요할 듯하지만.

고연옥은 이미 주목받는 중견작가다. 그때그때 나오는 작품평도 많고, 그만을 다룬 작가론까지 나와 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도 나는 왠지 갈증을 느낀다. 글이 너무 어려워서다. 알 듯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과 특성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첫째, 그의 작품 배경은 특별하고 특수하다. 그의 작품에는 가정이나 직장, 아니면 우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보다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다. 교도소, 경찰서, 병영, 지하, 쓰레기하치장 등등.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은 더 특별하고 더 특수하다.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가 인간을 극한 속에 밀어 넣거나, 신화를 테마로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둘째, 스토리 전개에 미스터리 기법을 자주 쓴다. 미스터리라는 말이 너무 쉬워서 평론가들이 언급을 꺼리는지 몰라도 그의 작품을 말하며 미스터리 기법을 뺀다면 납득하기 어렵다. ’웃어라 무덤아‘ ’달이 물로 걸어오듯‘ ’발자국 안에서‘ ’칼디의 열매‘ ’내가 까마귀였을 때‘에는 후반부에 반전의 카드가 나온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것이 분명하다. ’웃어라 무덤아‘에서 할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문호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나생문(羅生門)을 떠올렸다.

고연옥 본인도 말했다. ”내가 대사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은 구조다. 숨겨진 구도.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대사는 엉덩이 붙이고 쓰면 나온다. 대사는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 대사는 엉덩이로 쓰지만 구조는 머리로 쓴다는 뜻이다. 숨겨진 구조의 한 방법이 나는 미스터리 기법이라고 본다.

셋째, 갈등 구조는 약한 개인과 강한 그 무엇의 대결이 많다. ’강한 그 무엇‘은 사회극 계열에서는 약한 개인을 짓밟는 공권력이다. 그는 앞서 인용한 ’극작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은 점점 악의 속성을 더 드러냅니다. 그런 악에 의해서 점점 더 많은 다수의 피해자가 탄생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는 살인자 개인, 피해자 개인의 스토리보다는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만의 얘기가 되고 하나의 사건의 재현에 그칠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게 느껴지잖아요. 우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의 관심이 신화로 가면서 갈등 구조는 조금 약해지고 있다. 그는 2015년 ’처의 감각‘으로 제5회 벽산희곡상을 받았는데 심사평 중에 ”단순한 구성 속에서 인물 관계를 굳이 대립적으로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삶의 최대치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그걸 증명한다.

넷째, 그의 작품 속 인물 중에는 조직에 속하거나 인정받길 갈구하는 인물이 많다. 범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조직의 일원을 인정받으려는 인물이 여럿 나온다. ’백중사 이야기‘의 백중사, ’일주일‘의 길수, ’주인이 오셨다‘의 자루, ’내가 까마귀였을 때‘의 아이, ’꿈꾸는 화석‘의 조선인들이 대표적이다. 요즘 세상에 개인화. 파편화, 무명화(無名化)를 원하는 인간들이 많다고 하지만, 인간은 그 반대의 속성도 갖고 있음을 그의 작품은 웅변하고 있다.

다섯째, 비극적 결말이 많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는 고연옥 본인이 앞서 얘기한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제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구현하려는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의 작품 맨 마지막을 대사들을 정리해 보면 유의미한 정형(定型)이 나타난다. ”배 뜨지 않았지? 나 데려 가라구. 같이 가자구. 같이 떠나. 같이 갈 거지? 그렇지? 그렇지?“(인류 최초의 키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참 좋은 거지?/그럼요“(웃어라 무덤아),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꼭 와서 효도할게요“(일주일), ”…언젠가는 뭔가 떠오를지도 몰라. 아무도 모르게… 달이 물로 걸어오는 것처럼… 모든 걸 저절로 알게 될지도 몰라“(달이 물로 걸어오듯), ”사랑하는 아들아, 언젠가 널 다시 만날 수 있길 신께 기도할게“(주인이 오셨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꼭 돌아갈게요“(내가 까마귀였을 때), ”평생 절망하는 한이 있어도 꼭 용서받고 말겠어. 갑니다. 아버지! 내가 간다. 고향 땅아!“(꿈꾸는 화석), ”드디어 만났네요. …나 이제야 돌아왔어요“(칼집 속에 아버지), ”봐요. 나 당신한테 가고 있어요. 다시는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단 하루라도, 나 당신과 살고 싶어요“(처의 감각) 등등. 극중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재회‘를 갈망하고 있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재회와 가능성은 극한 속에 몰려 있는 인물들에게는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문학성과 연극성,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평가받는 극작가라는 말을 듣는다(여러 사람들의 예전 인터뷰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 웬만큼 성공한 극작가와 연출가는 모두 이런 말을 들으니 크게 무게를 둘 평가는 아닌 것 같다). 상은 조금 다르다. 그는 6개의 작품으로 여러 상을 받았는데, 2개만 써달라고 했다. 상은 운도 작용하는 데다, 좋은 작가들이 못 받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주인이 오셨다‘가 대한민국 연극대상 희곡상, ’칼집 속에 아버지‘가 대산문학상 희곡부문상을 받았다는 것만 언급한다.


4. 어제와 내일 사이


어제 얘기부터 해 보자.

본인의 작품 중에서 그래도 더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아주 진부한 질문 같지만, 답을 얻지 못한 적이 없다. 작가든, 배우든, 연출가든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형제다’는 김광보 연출이 2015년 서울시극단장이 되어 처음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2013년에 발생한 보스톤마라톤대회 결승선 폭탄테러범과 성경 속의 ‘카인과 아벨’ 형제를 모티프로 삼았다. 고연옥은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연극은 사회의 뒷북을 치기 쉬운데, 이 작품은 ‘테러’에 대한 통찰을 미리 제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연극의 배경은 실화와는 달리 영화관. 고연옥은 이를 통해 현대의 테러리즘은 우리 모두와 연결돼 있다는 말한다. 사진은 형이 동생을 죽이고 오열하는 장면. 형의 동생 살해는 자신의 세계에서 달아나고 싶어 하는 동생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서울시극단 제공

“우선 ’나는 형제다‘가 있다.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에서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요즘 영국에서 극장에서 테러가 벌어지기도 한다. 작품이란 보통 뒷북을 치게 마련인데, 미리 얘기를 했다는 점에서 애착이 간다. 다음이 ’지하생활자들‘과 ’처의 감각‘이다. 이 세상의 이전을 그리는 게 꿈이었는데, 어쨌든 두 작품을 통해 그걸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표작은 좋아하는 작품과는 다르다. 공연 사진을 석 장만 가려 달라고 했더니 ’인류 최초의 키스‘ ’주인이 오셨다‘ ’나는 형제다‘를 추천했다.

그는 7월 현재, 김광보 연출과 23개의 작품(재공연 포함)을 함께 했다(그는 김광보 연출을 ’같이 살지 않는 남편‘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며 웃었다).

”김 연출과는 인간을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자기 자신을 약자로 보는 것도 상통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적인 신뢰도 쌓였고. 희곡에는 문제가 있게 마련인데, 그럴 때 많은 연출가들은 희곡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연출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석과 직관이 뛰어나고, 오래했으면서도 매너리즘에 함몰되지 않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연출가로서 좋은 자질을 갖고 있다.“

그는 희곡을 마구 고치려는 연출가에게는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연출이 바꾸려는 것은 단순히 대사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이고, 그래서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2005년의 한 인터뷰에서 ”좋은 작품이 좋은 연출가를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본인은 운이 좋았던 셈이다.

극작가로서 다른 ’고집‘은 없는지.

”배우가 자기 입에 맞게 대사를 고치는 경우가 있다. 살짝 고치는 것은 괜찮은데 너무 멀리 가버리는 때가 있다. 습관적인 배우가 있다. 참다 못 하면 얘기를 한다. 김광보 연출은 ’고연옥 작품은 토씨 하나 고치지 마라, 뉘앙스가 중요하니까‘라고 한다. 나는 극중 인물이 힘들어하더라도 그걸 스테레오타입으로 표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뜨거운 것은 차갑게, 차가운 것은 뜨겁게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어 광부를 ’연기해서‘ 고통을 표현하면 거북하고 힘들어진다. 한계가 있다. 내면으로 소화해 미니멀하게 하면 된다. 확장하고, 펼치고, 지르고, 억지로 웃고 우는 걸 보면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안 그런다. 현실감 있게 한다.“

한 마디로 오버하는 연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데 능숙한 일본 배우들이 당신 작품을 연기하면 좋겠다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2010년과 2016년 일본의 세넨자(靑年座)가 사이토 리에코 연출로 자국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일본인의 감각에 맞게 배우들이 감정을 삭혀가며 연기를 했는데도, 마지막에는 우리 관객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연극이 극작가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희곡은 공연화가 결정되는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나지만, 공연이 끝난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작품 속으로 뛰어들었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과 시간과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고연옥 희곡집 ’인류 최초의 키스‘의 ’첫 희곡집을 묶으며‘, 2007).

(기자도 연극 프로세스의 한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니, 편하게 자주 인터뷰에 응해주면 어떨지).
그는 남의 작품을 손보는 데도 익숙하다. 각색, 윤색, 재창작의 세계다, 단테의 신곡(단테), 줄리어스 시저, 리어왕(이상 셰익스피어), 왕위주장자들, 사회의 기둥들(이상 헨리크 입센),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등 15개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그는 뮤지컬과 오페라에도 발을 담갔다. 자신의 작품인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오페라로 만들 때도 노랫말을 썼다. 이 오페라는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을 오페라로 만든 건 무리 아닌가.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이니.

”오페라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로맨틱한 것만이 오페라가 아니다. 오페라 ’달로 물로 걸어오듯‘은 연극보다 더 극적이었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본성에 오페라가 더 가깝다.“

당신 작품 중에 오페라로 만들어도 괜찮다고 보는 다른 작품이 또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많은 작품들이 그렇다“며 웃었다. 오페라로 만들면 ”대사의 무게가 더 깊어진다“고 했다.

연출을 하고 싶은 생각은.

”하고 싶다. 2010년에 ’내가 울어줄게‘라는 아동극 재공연을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작품 쓰기도 힘들고, 나이도 체력적으로도 늦은 것 같다. 나도 이제는 고참 작가 축에 드는데 신인연출이 되면, 창피하기도 하고.“

그는 지난해 5월 그가 참여했던 국립극단의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 ’작가의 방‘이 권력의 눈치를 봄으로써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꺾었다며 요즘도 이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는 ’작가의 방‘ 때문에 싸우고 있는데, 젊은 작가들을 위해 싸워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왜 내가 감정을 많이 소모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대학 때 운동권이어서, 아니면 내 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세상은 나를 기성세대로 주저앉히려고 한다. 그렇지만 힘닿는 한해서는 계속 거부하고 싶다. 젊은 작가들이 고통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온 사람으로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것이 작가와 연극이라면, 싸우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것도 작가와 연극이라고 본다. 피터 쉐퍼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좋아하는데, 그들은 관심선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는 사람이다. 높은 이상을 갖고 신과 인간의 관계라든가, 세계의 종말이라든가 등등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군분투한다. 아서 밀러처럼 살아 있을 때 100%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찾고 싸웠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런데 사실, 기억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담된다. 그냥 열심히 쓰고 공연했으니, 그 이후에는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그러나 조용히 사라지지는 못할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문창과, 동덕여대 문창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아카데미 등에서 그에게 배우고 있는 제자들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그를 기억에서 지울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기에.

그는 1년에 한 편씩은 쓰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역작을 쓰겠다는 생각은 버렸고, 꾸준히 발표해서 현재성 있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지금의 작품 발표 페이스는 적당하다고 본다.”

고연옥은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검은 입김의 신‘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검은 입김‘은 광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1980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노동쟁의 ’사북사태‘와 지금도 진행형인 세월호 사건이 다르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5. 엄마와 자식 사이

그는 지금 18살 딸 민주(고2)와 14살 아들 우영(중1)이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살고 있다.
애들은 엄마의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좋아한다. 딸은 내 작품을 많이 보는데 아들은 사람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며 안 본다. 혼자서 애들 키우면서 언제 글 쓰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딸은 아토피가 심했다. 풍욕이니 냉온욕이니 해서 사실 애를 다시 낳다시피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런 과정에서 딸과 스킨십을 많이 했다. 아들은 아토피는 아니었지만, 역시 소통은 잘 했다. 딸은 동생에게 ’엄마는 작가니까 말로 이길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에 ’가정방문‘이라는 짧은 희곡이 있다(이 작품도 뉴스를 통해 모티프를 얻었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아이들의 진로 결정에 개입할 의사가 있나.

“딸은 영화나 드라마 쪽의 세트를 만드는 무대미술가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고, 아들은 작가를 꿈꾸고 있다. 둘 다 응원한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먹고 살만한가.

“나보다 더 버는 작가도 있지만, 나는 만족한다. 내 능력에 비해서 많이 번다.” (더구나 그는 마감 시간을 어겨 본 적이 없단다.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다).

(고연옥이 쓰거나 각색한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창작극=’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 ’칼디의 열매‘(미공연) ’발자국 안에서‘ ’달이 물로 걸어오듯‘ ’가정방문(‘오늘, 손님 오신다’의 네 작품 중 하나) ‘내가 울어줄게’ ‘꿈꾸는 화석’ ‘내가 까마귀였을 때’ ‘주인이 오셨다’ ‘지하생활자들’ ‘내 이름은 강’ ‘칼집 속에 아버지’ ‘나는 형제다’ ‘처의 감각’(정식공연 안됨) ‘손님들’ ‘검은 입김의 신’ ▽각색·재창작·윤색=‘ ’달타냥과 삼총사‘ ’로빈훗과 친구들‘ ’억척어멈과 자식들‘ ’엄마를 부탁해‘ ’블라인드 터치‘ ’맹진사댁 경사‘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내 심장을 쏴라‘ ’단테의 신곡‘ ’줄리어스 시저‘ ’리어왕‘ ’프로즌‘ ’사회의 기둥들‘ ’세일즈맨의 죽음‘ ’왕위주장자들‘ ▽뮤지컬과 오페라=뮤지컬 ’햄릿‘ ’두 번째 태양‘, 오페라 ’연서‘ ’처용‘ ’달이 물로 걸어오듯‘ 등)


심규선 고문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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