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本色

여성동아

입력 2017-07-07 11:26 수정 2017-07-07 11:28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늑대소년〉 송중기의 뒤에는, 〈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의 옆에는,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윤균상의 앞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3남매의 아빠로 채널A 〈아빠본색〉에 출연 중인 대한민국 최고의 신 스틸러 배우 이준혁이다.


이준혁(45)은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려운 배우다. 섬세하고 세심한 성격인 것 같다가도 어느새 의리 넘치는 상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장 내관도, 〈역적〉의 용개도, 〈아버지가 이상해〉의 나영식도 하나같이 이준혁의 원래 모습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준혁의 진짜 얼굴이 궁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요즘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아빠본색〉에 출연 중이다. 〈아빠본색〉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닌 ‘진짜 이준혁’의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솔직히 말하면 방송에 비친 그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3남매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철들지 않은 ‘아재’의 모습이랄까. 부인 정지안 씨가 세 아이와 ‘전투 육아’를 하는 동안 그는 ‘취미’라는 이름으로 사들인 밀리터리 용품을 가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뒤 집안일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총을 들이대며 “밥 내놔”를 외치는 남편이다. 부인은 분통 터지겠지만, 그 모습이 왠지 얄밉지가 않다. 내 남편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날, 그는 “촬영을 위해 소품을 준비했다”며 문제의 밀리터리 용품들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에디터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러고는 외쳤다. “시작합시다, 빵야빵야!”

〈아빠본색〉에 등장했던 문제의 그 총이군요(웃음).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후 별소릴 다 들었어요. “부인이 성인군자다” “쓰레기다” “미친놈이다” 같은 반응들이었죠. 각종 악플에 시달렸는데, 무플보단 낫다고 생각했어요.

고가의 장난감인 셈인데, 부인이 그런 행동을 반대하진 않았나요.
엄청 반대하죠. 그런데 설득을 해요. “이거 나한테 꼭 필요한 거야. 나는 배우잖아” 하고요. 그런데 이거 거짓말 아니에요. 배우는 원래 여러 가지 색깔을 지녀야 하는 법이잖아요. 그러니까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는 거죠. 깊이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그건 시간이 만들어주는 거죠.

꽤 폼 나네요.
이래봬도 제가 태권도 3단에 특공대 출신이에요. 파이터 기질이 좀 있죠(웃음). 아마 무술 영화를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군 생활이 잘 맞았겠어요.
아니요. 제가 눈빛이 보통 사람들과 약간 달라요. 배우에겐 장점이라고들 하는데, 군대에선 표정이 이상하다고 엄청 맞았죠. 예전엔 겨드랑이에 땀 나는 거 싫어하고, 꽃꽂이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군 생활을 하면서 개조가 됐어요.

그의 꿈은 원래 영화감독이었다. 고등학교 땐 무작정 명보극장 건너편에 있던 영화제작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배우 강신성일·엄앵란이 세운 영화사였다. 영화 제작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영화사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그때 영화사에서 만났던 감독이 그에게 “영화감독을 하고 싶으면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게 우선”이라며 연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왜 영화감독이 하고 싶었나요.
중학생 때부터 광화문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을 드나들었어요.
5백원을 내면 그곳 지하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거든요. 자막이 나오지 않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냥 계속 봤어요. 지하에서 나는 퀴퀴한 극장 냄새가 마냥 좋아서요. 지금도 생각나는 건 이상하게 일본 영화를 자꾸 틀어주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영화들이 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들이었죠. 그때부터 감독이 돼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나 봐요.
완전 할리우드 키드였죠. 유치원 때부터 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영화관을 가셨어요. 국제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봤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운전수로 근무하셔서 8년 정도 떨어져 지냈는데,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인지 그때도 혼자서 영화 보러 충무로에 자주 갔어요. 1988년에 개봉한 〈마지막 황제〉는 대한극장에서 하루에 네 번을 봤어요.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라 하루에 딱 네 번 상영했는데, 아침에 일찍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거든요. 명보극장도 기억이 많이 나요. 그때 한국 최초로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을 들여왔는데, 그 음향을 듣는 순간 온몸이 찌릿하더라고요. 충무로는 제게 설렘이 가득한 공간이에요.

연기를 시작한 건 언제예요.
군 제대 후 연극 연출가 이성열 선생님 밑에서 연기를 배웠어요. 그분이 졸업반 아이들을 데리고 차린 극단이 백수광부죠. 연극제에서 좋은 상을 다 휩쓸었을 정도로 연극 바닥에선 유명한 곳이에요. 거기서 아내도 만났어요. 데뷔작으로 치는 건 2008년 영화 〈과속 스캔들〉이에요. 연극 무대에 서면서 학교 강의를 나갔는데 거기서 〈과속 스캔들〉을 만든 강형철 감독을 알게 됐죠. 강 감독이 데뷔하면서 저와 집사람을 출연시킨 거예요. 사실 아주 어렸을 때 연기자가 될 뻔한 적도 있어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제가 아역 탤런트 시험을 봤다가 합격했었대요. 그때 할머니께서 “딴따라는 안된다”며 막아서 못 했지만요.

극단에서 만났다는 이준혁의 아내는 정지안 씨다. 연애 당시 한 달 월급이 채 1백만원이 안 됐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단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처가를 찾았다가 “주차는?” 하고 물으시던 장모님의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준혁은 “당시 연극을 한다고 소개했더니 영국 가냐고 물으셨다”며 웃었다. 9년간의 열애 끝에 지난 2004년 결혼했고, 현재는 지훈·예훈·은서까지 3남매를 키우고 있다. 초등학생인 큰아이와 유치원생인 두 아이 덕에 이준혁의 집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방송에서 아내와 함께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아내는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나요.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영화 〈미쓰 와이프〉에 둘이 부부로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 셋을 돌봐야 해서 쉽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육아와 〈아빠본색〉에 전념하고 있어요. 〈아빠본색〉 때문에 보철도 하고 교정도 했죠(웃음).

이준혁 씨에게 아내는 어떤 사람이에요.
감사한 분이죠. 저를 데리고 살아주니까요. 사랑해요. 진짜로. 애가 셋이잖아요. 말 다 했죠 뭐(웃음).

결혼을 후회해본 적 있나요.
첫째 낳고 살면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생활비가 없어서 집에 있는 패물을 팔았거든요. 아파트 단지에서 가끔 장이 열리는데 그때 금을 사는 사람이 와요. 아내가 거기서 자기 반지를 팔고, 저는 옆 동네 장터에 가서 첫째 아이 돌 반지를 팔았어요. 한 번에 다 팔면 창피하니까 다음 장이 설 때까지 기다리고 그랬죠. 그래도 알콩달콩 행복했어요. 제가 은근히 책임감은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되게 많이 했거든요. 백화점 파트타임 근무는 물론이고, 경마장 앞에 가서 경마 예상지랑 볼펜을 팔 정도로 끊임없이 일을 하러 다녔어요. 1천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한 것 같아요. 돈만 주면 영혼도 팔아치울 기세로요.

지난 연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남자 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설움을 날렸겠어요.
안 떨릴 줄 알았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되게 떨리더라고요.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극단 시절부터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을 적어 갔는데 정작 소감 발표 때 너무 떨려서 중간 중간 빼놓고 읽었어요(웃음). 수상자 발표 때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집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가족들이 전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하더라고요. 시상식 마치고 아내와 통화했는데 정말 많이 기뻐했죠.

그는 “첫째 아들에게 빚이 많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시종일관 유쾌한 답변을 내놓던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도 아들의 돌 반지를 팔았던 경험을 털어놓을 때였다. 지난해 출연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해외로 포상휴가를 떠났을 때, 그는 큰아들 지훈 군을 비행기 옆 좌석에 태웠다.

〈아빠본색〉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가족을 위해 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 하면서 작품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문득 ‘진짜야? 아이 보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아빠본색〉을 찍으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작품 세 개를 병행하고 있어서 도저히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요. 방송 시간 못 맞추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결국 못 맞췄어요. 스튜디오 촬영 때 저 대신 아내가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죠.

아이들이 아빠를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집에선 어떤 아빠예요.
장점이라면 아이들과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거죠. 동화책을 읽어줄 때도 사운드 효과를 직접 입으로 내면서 실감 나게 연기를 해줘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에겐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하고 말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래도 초등학생인데 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더라고요(웃음). 욱하는 성질부터 하나에 깊이 빠져드는 성격까지 큰아이가 저와 가장 많이 닮았어요. 전에는 레고에 심취해 있기에 덴마크를 미워했는데 요즘은 닌텐도 때문에 일본을 싫어하게 됐어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엄청 좋아하는데 유튜브에 그걸 방송하는 ‘도티’라는 친구가 있다는 거예요. 그 친구처럼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그 친구를 만나게 해줄 수 있을지 수소문하고 있어요. 아시는 분 연락바랍니다(웃음).

얼마 전엔 이준혁이 예훈이와 은서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임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아빠본색〉에 등장했다. 사실 그는 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에게 늑대 몸짓을 지도했고, 영화 〈미스터 고〉에서 고릴라의 모션 캡처를 담당했던 유명 마이미스트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 대부분은 그의 마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마임은 언제 배웠어요.
스물일곱 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으로 계시는 마이미스트 남긍호 선생님과 우리 극단이 콜래보레이션 무대를 꾸민 적이 있는데 그때 인연으로 배우게 됐죠. 선생님과 10년 정도 같이하면서 프랑스 거리예술극단에서 활동한 적도 있어요.

예훈이와 은서가 유치원을 찾은 아빠의 모습에 무척 감격하는 것 같더라고요.
무척 좋아해서 저도 정말 기뻤어요. 아이들 앞에서 마임 공연을 보여준 게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 방송을 보고 큰아이는 많이 삐졌어요. 달래느라고 혼났죠.

요즘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도 중학생 아들을 둔 철없는 아빠 역할로 등장하던데요(웃음).
엄청 확 와 닿는 상황이 등장하더라고요. 극 중 영식이처럼 아들은 너무 똑똑한데 형편이 안돼서 과학고를 못 보낸다면? 어떤 통계를 봤는데, 아이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보내는 데 학비만 3억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일단 거기에 곱하기 3을 해야 하잖아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이준혁의 ‘바쁜’ 연기 인생에 든든한 지원군은 역시 아내다. “남편 일이 잘 풀리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그녀는 2년 전쯤 ‘진희’에서 ‘지안’으로 개명을 했다. 바꾼 이름이 무슨 뜻인지를 묻자 알아봐야겠다며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재밌는 건 지안 씨도 자신의 이름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 찾아보고 알려주겠다더니 이내 ‘슬기로울 지’에 ‘편안할 안’자를 쓴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실제로 일이 잘 풀렸냐는 질문에 “일이 끊이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출연 작품들을 꼼꼼히 챙겨 보는 편인가요.
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챙겨 보지 못해요. 그나마 영화는 나은데 드라마는 ‘본방 사수’를 못 하니까 다시보기로 시청하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안테나를 세우고 주변의 반응을 살피는 식이에요.

이준혁의 인생작을 하나만 꼽는다면.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죠. 찰리 채플린의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다음 작품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배우는 저마다 빛을 내요. 김해숙 선생님, 김성령·송강호·설경구 선배, 보검이 모두 빛나는 배우들이죠. 각자 빛을 내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화면 안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는 건 모두 같죠. 저도 언젠간 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이준혁의 차기작은 뭔가요.
영화 〈숨바꼭질〉을 연출했던 허정 감독의 작품 〈장산범〉이 8월에 개봉할 예정이에요. 목소리로 사람을 홀리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고, 배우 염정아와 박혁권 그리고 제가 나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이만큼만 얘기할게요(웃음).

그는 철부지 같은 모습을 한 속 깊은 아빠이자,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유쾌함으로 포장한 배우였다. 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전히 그가 궁금한 이유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고 보면 볼수록 보고 싶어지는, 이준혁은 그런 배우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헤어&메이크업 누리 의상협찬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editor 정희순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