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곤충-세포배양 고기… 징그럽다고요? 미래 식량입니다

김성규기자

입력 2017-06-17 03:00 수정 2017-06-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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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단백질의 세계

경기 양주시에 있는 식용곤충식품 가공업체 ‘인섹트비전’의 박혁성 대표가 공장에서 갈색거저리 애벌레(고소애)와 장수풍뎅이 애벌레 등 말린 식용곤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양주=김경제 기자 kjk8574@donga.com
금방이라도 꿈틀댈 듯 애벌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라 볶은 메뚜기나 삶은 번데기를 잘 먹는데도 새로운 ‘식재료’ 앞에서는 역시나 잠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중국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어른 손가락만 한 매미와 전갈들이 꼬치에 꽂혀 있던 시장통. ‘으, 저건 못 먹겠다’ 싶었다. 하지만 ‘대체 메뚜기나 번데기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가 보다. 그때 본 매미와 전갈에 비하면 ‘고소애’는 정말 애교에 불과하다.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갔다.

식감은 건새우를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곧 이름처럼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다 먹고도 고소한 맛이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맛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새 손가락은 한 마리를 더 집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소인 단백질의 공급원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돼지·닭 등 고기와 계란, 콩 등 기존 식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유명해진 식용곤충은 물론이고 단백질 합성으로 만든 ‘가짜 고기(페이크 미트)’까지, ‘대안 단백질’이 주목받고 있다.


#1 미래식량 1순위 ‘곤충’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천로에 있는 카페 ‘이더블커피’를 찾았다. 겉보기엔 보통 카페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곤충 식재료로 만든 쿠키와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전시된 쿠키와 견과류, 누룽지 봉지를 보면 안에 애벌레가 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애벌레의 이름은 ‘고소애’. 원래 이름은 갈색거저리 유충이다. 흔히 ‘밀웜’으로 불린다. 식용으로서 거부감을 줄이고 고소한 맛을 강조하기 위해 식품업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식용곤충이 주목받기 전부터 국내에서도 많이 먹었던 벼메뚜기나 누에 번데기, 백강잠을 제외한 곤충 중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가장 먼저 식품원료로 인정받았다. 이후 국내에서 식품원료로 인정된 곤충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굼벵이), 장수풍뎅이 애벌레, 쌍별귀뚜라미가 있다.

식용곤충이라고 하면 영화 ‘설국열차’에서 단백질 바를 만드는 데 쓰였던 벌레 떼처럼 징그러운 겉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경기 양주시 공장에서 식용곤충을 식재료로 가공하는 인섹트비전의 박혁성 대표(58)는 “어린이들은 곤충 형태 그대로인 제품도 호기심에 잘 먹는 편이지만 어른들은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분말로 가공해 기존 식재료에 첨가한다”고 설명했다. 식품이라기보단 영양소에 더 가까운 셈이다.

이더블커피의 최고 인기 메뉴는 고소애 셰이크인데, 밀크셰이크에 고소애 300∼500마리 분량의 분말이 들어간 것이다. 먹어 보니 셰이크에 미숫가루가 들어간 듯한 느낌인데, 그보다 고소한 맛이 더 진했다. 류시두 이더블버그 대표(33)는 “주변 직장 여성들이 식사 대용으로 사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파스타나 소면 등 국수 면발에 곤충 분말을 20%가량 첨가해 영양을 보충한다거나 콩 대신 곤충 단백질을 이용해 간장 등 양념장을 만들기도 한다. 곤충 단백질을 이용해 고단백 항암 치료식, 위장질환식 같은 환자식도 만들어지고 있다. CJ와 대상, 농심 등 식용곤충 식품을 연구하는 대기업들도 일단은 분말이 들어가는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곤충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인 이유는 조(粗)단백질(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단백질) 함량이 50∼60% 정도로 소고기(20.8%)와 돼지고기(18.5%)에 비해 높고 섬유소 함량과 철분, 비타민 B 등 무기질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지방은 일반 고기보다 적은 편인데 가공할 때 이마저도 걸러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에서 식용곤충 식품 회사인 ‘엑소’는 귀뚜라미를 원료로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백질바를 만든다.

기능성 연구도 진행 중이다. 농촌진흥청은 1월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에서 추출한 물질은 혈관 속에 피가 굳어 생긴 덩어리인 혈전을 치료하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전통 한방의서에는 굼벵이가 간암, 간경화 등 간에서 비롯된 질병이나 각종 성인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좋다고 기록돼 있다. 또 고소애에는 당뇨, 치매, 류머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한 식품벤처 회사는 쌍별귀뚜라미의 탈모 예방 효과에 주목해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2 단백질 합성으로 만드는 ‘가짜 고기’

미국 ‘임파서블 푸즈’의 ‘가짜 고기(페이크 미트)’로 만든 햄버거. 식물성 원료로 만들었지만 육즙과 질감, 향 등이 진짜 고기와 매우 비슷하다. 임파서블 푸즈 페이스북
“예전에 아동 노예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축산도 마찬가지다. 언젠간 어떻게 그렇게 야만적으로 가축을 기른 뒤 죽여서 먹을 수가 있었느냐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뉴하비스트’의 길론 도리그니 이사의 말이다. 이 단체는 현재 가축 사육 방식이 전혀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보고 기부금 세포 배양으로 고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곤충을 대안 단백질로 삼으려는 시도가 주로 향후 인구 증가세에 비해 식량 증가가 더딜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출발하는 반면 세포 배양 단백질 연구는 현재 인류가 섭취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거나 비윤리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축들이 밖을 보지도 못하고, 교미도 못 하며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호르몬제를 맞는 등 건강하지 못하게 길러지는 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도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들을 괴롭히는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데 이처럼 가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축산업이 인간이 사용하는 물의 양 중 30%를 소비하고,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강조한다. 1갤런(3.78L)의 우유를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이 두 달 내내 샤워할 만큼의 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하비스트는 세포 배양을 통해 젖소 없이 우유를, 닭 없이 계란을, 가축 없이 고기를 만드는 연구를 한다.

국내에서도 콩을 이용해 고기와 비슷한 질감을 내는 ‘콩고기’를 판매하는 곳은 많이 있지만 먹어 보면 실제 고기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포 배양 고기는 이런 수준을 넘어서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흐르는 등 실제 고기의 냄새와 느낌을 거의 구현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도 처음 알려졌을 때는 햄버거 하나를 만들기 위해 32만5000달러(약 3억6400만 원)가 들었지만 이제는 11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뉴하비스트는 구글의 창업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브린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역시 식물성 원료로 ‘가짜 고기’를 만드는 ‘임파서블 푸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江)그룹 창업주, 구글벤처스, 김정주 넥슨 창업주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됐다.

고기가 아니라 특정 단백질에만 초점을 맞춘 곳도 있다. ‘겔젠’이라는 회사는 식물에서 젤라틴을 추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젤라틴은 젤리, 마시멜로, 화장품, 약 등 여러 곳에 쓰이는데 보통 동물의 뼈에서 추출한 것이 많이 쓰인다. 겔젠은 채식주의자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젤라틴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젤라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자는 바이오 3D프린터를 취재하면서 3D프린터로 세포를 쌓아 인공피부를 만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마트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3D프린터로 고기를 만들어 구워 먹는 시대도 오게 될까. 멋진 상상이라기엔 ‘그래도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세포 배양 고기도 식용곤충만큼이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곤충이 미래식량으로 주목받는 이유▼

온실가스 배출, 돼지의 10%… 번식 빨라 경제성 높아


고기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대안 단백질의 후보는 곤충, 크릴새우, 해조류 등이 꼽힌다. 그중 곤충이 1순위로 꼽히는 것은 지금까지 나온 대안 중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현대사회에서 많이 먹고 있지 않을 뿐 곤충은 오랫동안 인류가 먹어온 식재료이기도 하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2013년 보고서에는 ‘2050년에는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고 현재보다 두 배 이상의 식량이 필요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대안으로 곤충을 지목하면서 세계적으로 식용곤충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5년 세계 식용곤충 시장 규모는 3300만 달러(약 371억 원) 이상. 2023년까지 연평균 40% 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곤충은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는 데 들어가는 물과 사료 등의 자원이 일반 가축보다 훨씬 적을 뿐만 아니라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돼지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친환경적이다. 단백질 1kg을 얻는 데 필요한 사육면적도 닭과 돼지는 약 50m², 소는 200m² 안팎인 데 비해 곤충은 20m²면 된다.

또 개체(한 마리)마다 식용 가능하고 소화하기 쉬운 부분이 닭과 돼지는 55% 정도인 데 비해 귀뚜라미는 80%에 이른다. ‘식량화’ 효율이 높다는 뜻이다. 번식률도 어마어마하다. 곤충(고소애)은 6년마다 4.5×10의 119제곱만큼 늘어난다.

하지만 ‘먹거리’를 단순히 효율성 측면에서만 생각할 순 없는 법. 누구나 먹고 싶어 할 정도로 대중화하기까진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류시두 이더블버그 대표는 “곤충의 형태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의외로 많고 영양학적 장점도 알려지면서 아이를 위해 구매하는 젊은 부모도 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유원지나 동네 골목에서 팔던 ‘번데기’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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