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그늘 밝히는 디자인, 시민이 주인공”

노지현 기자

입력 2017-06-14 03:00 수정 2017-06-14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사회문제해결디자인 국제포럼 열려
우범지역에 그림 그리고 가로등 다니 범죄발생률 12% 줄고 사람들로 북적
서울시, 연내 ‘소셜디자인 조례’ 제정


서울 마포구 염리(鹽里)동 소금길은 옛날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소금창고가 많아 소금장수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정감 가는 이름과 달리 2012년 이전에는 서울에서 우범지역으로 꼽혔다. 재개발지구로 선정됐으나 사업 추진이 미뤄지면서 빈집이 많아졌다. 미로처럼 이어진 좁고 어두운 골목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낡은 집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주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2012년 서울시가 염리동을 시민안전디자인 사업지역으로 선정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옥잠화길, 해바라기길, 능소화길, 해당화길 등 골목마다 새 ‘이름표’를 달았다. 좁은 계단에는 계단을 오르는 운동 효과를 그림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어두운 곳에는 가로등을, 사각지대에는 폐쇄회로(CC)TV를 달았다. 그 덕분에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소문을 타기도 하고, 데이트 코스로 알려지면서 사람도 북적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염리동의 범죄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절도는 이전보다 12% 줄었고, 범죄에 대한 주민들의 두려움도 10%가량 감소했다.

이처럼 디자인으로 사회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짚어보는 ‘사회문제해결디자인 국제포럼’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에치오 만치니 밀라노공과대 명예교수, 길리언 잭슨 ‘리비티 청년네트워크’ 디렉터와 디자인컨설팅업체 ‘데이라이트’의 김다니엘 아시아총괄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1시간 동안 디자인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스스로를 ‘소셜디자이너(사회디자이너)’라고 표현하는 박 시장은 “디자인은 아름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런던에서 ‘Somewhereto_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잭슨 디렉터는 이에 동의하면서 “젊은이와 지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효과가 더욱 극대화된다”고 조언했다.

잭슨 디렉터는 영국에서 ‘리비티(Livity)’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도시의 폐허가 된 공간과 빈민가의 빈 상점을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 및 스포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할 일이 없던 아이들이 어떻게 거리를 바꿀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것이 결정적 성공 원인이었다.

만치니 교수는 “‘어른들이 해줘야지’, ‘누군가가 만들어줘야지’라는 태도로 무임승차할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춘 디자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문제 해결의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고, 이것이 지속가능하려면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명하달의 정부 주도 개발에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김다니엘 대표는 “디자인은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주도하기는 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서울특별시 사회문제해결디자인 조례’를 만들기로 했다. 이 조례는 시민교육과 전문가 참여를 규정한다. 이들의 좋은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으로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이 제안하고 개발한 아이디어를 실현해 시정(市政)에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뇌성마비 환자를 위한 의복, 한강공원 야간 자전거 안전운행 유도 디자인을 선보였다. 올해는 사당역 광역버스 정류장의 대기 줄 유도선과 유기동물 발생 방지를 위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