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주전소 터로 이사하는 한국은행의 앞날

동아일보

입력 2017-06-12 03:00:00 수정 2017-06-12 0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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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화폐를 발행하던 주전소 터(서울 중구 태평로)에 들어선 빌딩들. 왼쪽부터 신한은행 본점, 부영태평빌딩, 옛 삼성본관.
안영배 전문기자
서울 태평로(중구 세종대로)의 옛 삼성본관 앞에 ‘한국은행’ 표지석이 최근 세워졌다. 한국은행이 지난 100여 년간의 소공동(중구 남대문로) 시대를 접고 이곳에서 태평로 시대를 연다는 표식이다. 한국은행은 6월 말까지 한은 총재와 금융통화위원을 비롯해 중요 부서들이 옛 삼성본관 건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한은 본관 리모델링 및 별관 재건축 공사에 따라 3년간 이 건물을 임차하게 됐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한국은행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발맞추어 새 터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모양새다. 풍수인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라 할 만하다. 비록 한시적이긴 하지만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격(格)에 어울리는 터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새로 둥지를 튼 자리는 조선시대 때 화폐 발행을 하던 관아(전환국) 터다. 한양도성 내부를 묘사한 고지도에 의하면 전환국은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사)과 옛 삼성본관, 그리고 이웃한 신한은행 본점 일대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세(地勢)로 보면 서울 서쪽 인왕산에서 남쪽 남산으로 이어지는 둔덕길이다. 이곳이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주전소(鑄錢所)임을 알리는 표석도 세워져 있다.


조선 고종 때 13년간 운영된 전환국은 요즘으로 치면 국가의 화폐 발권 기능을 담당하는 한국은행 같은 기관이다. 고종은 나라의 돈줄을 쥔 관아인 만큼 심사숙고해 터를 선정했다. 실제로 그렇다. 이 일대는 풍요와 재물 운이 왕성한 지기형(地氣形) 명당에 해당한다.

이 일대에 들어선 기업들과 관련한 재운(財運) 풍수설도 유난히 많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옛 삼성생명과 삼성본관 터를 무척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이 삼성생명 빌딩을 매입하게 된 것도 ‘돈이 모이는 곳’이라는 풍수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2006년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한 뒤 조흥은행 본점 자리를 통합본점으로 삼으려던 계획을 접고 이 자리에 눌러앉은 것도 풍수설을 따른 결과라고 알려졌다.

반면 일제강점기 일본이 세운 한국은행(당시 조선은행·현재 화폐박물관) 터는 어떠할까. 한국은행이 새 본관(1987년 완공)으로 이주할 때까지 사용한 화폐박물관은 한국 통화정책의 최고사령부 역할을 했다. 화강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유럽풍의 화폐박물관은 일본의 중앙은행인 도쿄의 일본은행 본점과 겉모습이 매우 유사하다. 두 건물 모두 동일한 일본인 건축가(다쓰노 긴코·辰野金吾)가 설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터의 기운도 일치한다. 두 건물은 천기형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천기형 터는 재운보다는 명예와 관운(官運)에 좋은 기운이다.

몇 해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일본은행 본점 터를 보며 관(官) 주도의 금융시스템과 권위적인 조직 문화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을 것으로 풍수적 소감을 밝혔다. 우리의 화폐박물관과 그 바로 뒷자리에 위치한 한국은행 본관 터 역시 일본은행 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잠저였다. 인조가 반정(反正)으로 권력을 쟁취할 만큼 관운(官運)이 왕성한 천기형 터는 금융권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풍수에서는 재물, 즉 돈을 물에 비유한다. 돈은 흐르는 물처럼 유동성(流動性)을 지닐 때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돈(물)의 유동성을 활성화 및 최적화하는 기운이 바로 지기형 터다. 천기형이 강한 공격적 기운이라면, 지기형은 부드러운 타협적 기운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지기형 명당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건물(워싱턴)과 뉴욕연방준비은행 건물(맨해튼)이다. 필자는 뉴욕 맨해튼 현지에서 미국 연방은행은 물론이고 글로벌 규모의 은행들이 모두 지기형 터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터를 본능적으로 짚어내는 서구인들의 입지(立地) 감각이 놀라웠다.

필자는 천기형 터에서 지기형 명당 터로 임시 이전하는 한국은행의 미래를 밝게 본다. 한국은행 임직원들이 지기형 기운을 받으면서 물처럼 유연한 통화정책과 경제비상 사태에 대처하는 순발력을 키워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3년이라는 기간은 새로운 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게 필자의 풍수 경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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