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뉴스룸]‘아트 허브’로 떠오른 후발주자 홍콩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입력 2017-06-08 03:00 수정 2017-06-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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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홍콩 중심가인 센트럴역 D2 출구에서 나와 남서 방향으로 50m 정도 걸으면 1923년 프랑스 보자르 건축양식으로 지은 9층 높이의 페더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에는 벤브라운, 사이먼리, 마시모데카를로(3층) 리먼모핀(4층) 한아트TZ, 펄램(6층) 가고시안(7층) 등 유명 화랑들이 빼곡하게 입주해 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한 층씩 내려오면서 모든 전시를 훑어볼 수 있을 정도다. ‘갤러리 빌딩’이라고도 불린다. 250홍콩달러(약 3만6000원)짜리 ‘페더빌딩 갤러리 투어’라는 관광 가이드 상품도 출시됐다. 3.3m²당 월 임차료가 수백만 원을 웃돌아 금융회사들도 버티기 어려운 이곳에 화상((화,획)商)들이 대거 몰린 이유는 뭘까.

‘상업 도시’ 홍콩은 오랫동안 예술에 소홀했다. 1997년 7월 중국에 반환된 뒤 중국 베이징, 상하이와 경쟁해야만 했다. 결국 사람, 돈을 유입할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해결책 중 하나로 ‘예술’을 선택했다. 1999년 주룽(九龍)반도 서쪽 끝 40만 m² 터에 28억 달러(약 3조13600억 원)를 들여 미술관, 공연장 등 17개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시주룽 문화지구(WKCD)를 짓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1996년 비영리 전시공간 ‘파라 사이트’를 개설해 서로 활동을 독려했다. 화랑 등 미술계 인사들은 2000년 3만4000개 이상의 작품을 정리한 비영리 단체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미술계 인사들이 교류하는 ‘스프링 워크숍’도 세워졌다. 중국 본토와 달리 미술품 거래에서 면세정책을 유지했다.

그러자 홍콩의 중심 금융지구에서 기업 사무실로 쓰이던 페더빌딩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중국의 ‘큰손’들이 대거 홍콩에 몰렸다. 유럽 화랑들은 홍콩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했다. 2009년 영국계 화랑 벤브라운을 시작으로 서구 화랑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건물뿐 아니라 센트럴역 일대에는 미국의 페이스, 영국 화이트큐브, 프랑스 페로탱 등 유명 화랑의 지점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국제미술시장인 스위스의 아트바젤은 2008년 출범한 ‘홍콩 아트페어’를 인수해 2013년부터 ‘아트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켰다. 아트바젤 홍콩은 출범 5년 만에 동서양 미술품을 함께 거래하는 대표적인 미술품 장터로 급성장했다. 올 3월에만 8만 명이 다녀갔다.

세계 미술시장은 지난해 566억 달러(약 63조 원)로 추산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반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지난해 5000억 원 정도로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할 때 작은 편이다. ‘후발주자’ 홍콩은 최근 20년 동안 꾸준히 판을 키우면서 지정학적 위치, 유명 해외 브랜드 유치(아트바젤) 등을 활용해 중국 본토는 물론이고 인도 호주 일본 한국의 고객까지 끌어들였다. ‘국내 작가의 작품도 홍콩에서 팔아야 더 비싸게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술도 경제 성장 엔진 중 하나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 국내 상황은 일부 화랑들을 빼면 대부분 임차료 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영세하다. 문화의 힘은 도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미술은 금융 등 다른 산업에도 파급효과가 큰 콘텐츠 산업이어서다. 이제 우리도 ‘아트마켓’에 대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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