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개국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트럼프 마이웨이에 흔들

이승헌 특파원 , 김창덕 기자 , 이세형 기자

입력 2017-06-02 03:00 수정 2017-06-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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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기후협약 운명의 날]
“석탄산업 부흥시켜 일자리 창출” 트럼프, 다시 탈퇴카드 꺼내들어
주요국 “합의 준수” 약속에도 ‘최대 돈줄’ 美빠지면 연쇄이탈 우려
백악관 내부서도 찬반 엇갈려… 이방카 “협약 유지” 배넌 “탈퇴해야”
국내기업 “규제 완화되나”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합의인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세계는 불과 7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발효된 국제 환경 기준을 다시 쓰거나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는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 모인 195개 협약 당사국이 지구 온난화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며 합의한 결과물이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1997년 교토 의정서와는 달리 파리 협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책임을 분담하기로 한 게 특징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기간 “기후변화는 거짓 주장”이라며 당선 시 파리 협약 탈퇴를 공언했지만 취임 후에는 파리 협약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달라진 입장을 보여 항간에선 협약 유지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력발전소 등 전통적 석탄 산업 부흥을 통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협약 탈퇴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탈퇴는 전 세계적으로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1위 경제 대국이자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거부하면 협약 참여 여부를 재고할 국가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큰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자금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개도국을 지원하는 녹색기후펀드에 30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를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협약을 탈퇴하면 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파리 협약에서 탈퇴할 경우 2030년 세계 탄소 배출량이 69Gt(기가톤)에 달해, 파리 협약이 당초 목표로 했던 56Gt보다 23%나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해 선진국에 연 1000억 달러의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개도국의 배출 절감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정상들이 미국을 빼고라도 협약을 이행하겠다는 단결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도 온난화 대응에 흔들림 없는 자세를 약속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보호청(EPA) 청장을 지낸 지나 매카시 전 청장은 이날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작 공기 물 토지에 대한 기본적 수요를 간과하고 있다. 파리 협약에서 탈퇴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기회와 외교적 지렛대를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탈퇴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협약 유지 쪽에 섰지만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콧 프루잇 환경보호청장은 탈퇴를 주장한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의 협약 탈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탈퇴할 경우 다른 나라들의 연쇄 탈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글로벌 규제가 그만큼 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파리 협약 당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전망치(BAU·Business As Usual) 대비 37%를 줄이는 것으로 잡았다. BAU는 아무런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배출량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특히 많은 발전,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관계자들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방향은 맞지만 가속도를 너무 높이면 산업 경쟁력 추락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해 왔다. 석유화학업체 A사 관계자는 “미국마저 협약에서 빠진다면 우리 정부도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매달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김창덕·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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