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72>제자리를 찾아가는 시간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입력 2017-05-23 03:00 수정 2017-05-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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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델, ‘13세의 폴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의 삶과 예술에 꼭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남동생 폴 클로델과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오귀스트 로댕이지요.

조각가와 두 살 터울 동생은 사이가 각별했습니다. 누나는 훗날 프랑스 대표 시인이자 극작가가 된 동생을 문학 세계로 이끌었어요. 또한 동생은 10대 소년에서 40대 중년이 될 때까지 네 차례나 모델을 서며 누나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지요.

‘13세의 폴 클로델’은 동생을 조각한 첫 작품입니다. 앳된 소년이 누나 손을 거쳐 시선과 표정이 당당한 영웅으로 재탄생될 무렵 두 사람과 가족은 노장쉬르센에 살았습니다. 등기소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이곳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지요. 79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각가에게 프랑스 중북부 마을에서의 3년은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여기서 처음 조각 개인 수업을 받았으니까요. 사춘기 소녀와 첫 스승, 알프레드 부셰의 인연은 길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재능 있는 제자를 친구인 로댕에게 부탁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지요.

사제지간으로 출발한 로댕과 클로델은 공동 작업을 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 제자는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내주지 않는 스승 때문에 마음고생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도 구축해 나갔지요. 주목할 만한 신예로 당대 미술계에 공식 인정을 받기도 했어요. 여성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조각가는 자신 대신 오래된 반려자를 택한 스승과 헤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업과 출품은 계속되었지만 피해망상과 정신분열도 심화되었지요. 스스로를 작업실에 고립시킨 채 세상과 단절되어 갔어요. 누나를 천재로 믿었던 동생은 더 이상 지지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던 누나의 작업도 중단되었지요. 1913년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조각가는 환자로 30년을 더 살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뛰어난 문인 남동생과 위대한 조각가 연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조각가를 기념하는 국립미술관이 노장쉬르센에 개관했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조각가의 후원자이자 애호가였던 외젠 블로의 말이 실현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만 어렵게 조각가의 예술적 위상이 제자리를 찾은 절묘한 시점에 좀 놀랐습니다. 올해는 대규모 전시와 우표 발행으로 타계 100주년을 맞은 로댕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거든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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