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투자 발목 우려 … 자율주행차 등 적극 지원을

이샘물기자 , 신수정기자

입력 2017-05-18 03:00 수정 2017-05-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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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기업정책 어디로]<下> 재벌도 벤처도 국가경제 파트너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공약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4대 재벌개혁’이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17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이런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대기업 역시 국가경제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조건적인 ‘개혁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제력을 강제적으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분산하려는 정책보다는 중소·벤처업계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 체계를 ‘포지티브 방식’(법에 명시한 부분만 허용)에서 ‘네거티브 방식(최소한의 금지 사항 외에 모두 허용)’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해왔다.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배경이다.


○ ‘제로섬’보다는 ‘파이 키우기’로

새 정부가 천명한 재벌 개혁의 주요한 축 중 하나는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다. 불법 경영 승계, 오너가에 돌아가는 부당한 특혜, 황제 경영 등을 근절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크다. 해당 규제가 대주주의 권한 남용을 제어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 위축과 성장잠재력 훼손 등의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발의해 둔 상법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법안이 통과돼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인사가 최소 한 명씩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2월 지분 현황을 기준으로 국내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4곳이 이에 해당한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헤지펀드나 소수 주주들은 단기 시세차익을 올리기 위해 자산 매각, 고용 축소, 연구개발(R&D) 비용 감축 등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요건 강화도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방편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만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최소 20% 이상(상장사 기준)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 기준을 30%로 높이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존 지주사들까지 적용 범위를 넓힐 경우 SK, LG 등은 지분 추가 매입에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한다. 신 실장은 “지주회사 보유 지분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다. 지주사 전환 또는 유지비용이 늘어나면 투자는 위축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1987년 이후 지주회사 제도를 금지했다가 1999년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20년도 안 돼 다시 정책을 뒤엎는 데 대해 재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자유롭고 유연하게 경영활동을 해나가야 하는데, 너무 규제의 틀에 가둬 놓으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중소·벤처 뛰어놀 운동장 서둘러 마련해야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신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관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쳐내고 있다. 중국은 드론, 핀테크 같은 신성장 산업에 대해 선(先)허용, 후(後)보완의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법률이 허용하지 않으면 일단 불법으로 간주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시장을 선점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법과 제도로 규정할 수 없는 신기술, 신사업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은 규제 완화 속도가 너무 더디다. 19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던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지난해 5월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규제프리존 특별법 통과를 전제로 한 고용창출 효과는 2020년까지 약 21만 개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다. 이 밖에도 원격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 국가정보화기본법, 빅데이터 이용 및 산업진흥법도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을 비롯한 각종 신산업은 사업화를 위해서는 실증 테스트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게 대부분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단일 산업을 전제로 설정된 각종 칸막이 규제와 행정이 산업 융합을 가로막고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전 규제를 철폐하고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함과 동시에 사후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업계에서는 문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설치되면 이런 장벽들부터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기업들이 위법성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혁신 제품 및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임시허가제도’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3월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ICT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이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샘물 evey@donga.com·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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