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토속 식재료로 ‘나만의 요리’… 아시아만의 ‘미식 변주곡’ 울리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입력 2017-05-18 03:00 수정 2017-05-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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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시상식 영광의 주인공 셰프 4인 인터뷰 <2>


《올해 2월 방콕에서 열린 ‘2017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는 다양성을 찾고 있는 아시아 미식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이 각 9곳의 레스토랑을 순위에 올리면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 대만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은 그 뒤를 이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클래식과 혁신적인 요리 사이의 균형, 서양요리와 아시아 로컬요리의 혼재와 융합, 서양인 셰프와 아시아인 셰프의 공존 등은 유럽이나 미국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아시아만의 ‘미식 변주곡’을 들려줬다. 이번 회에는 지난번에 이어 2017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만난, 주목할 만한 아시아 셰프 4인을 소개한다.》



돌풍의 주인공 ‘로커보어’의 두 남자, 레이 아드리안시아·엘케 플라메이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예약 없이는 경험하기 힘든 ‘로커보어’가 아시아 미식계에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 49위에서 올해 무려 27계단 상승하며 22위에 자리해 ‘베스트 성장상(Highest Climber Award)’을 수상했다.

인도네시아 가옥을 모던하게 개조한 ‘로커보어’는 발리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하이퍼 로컬(HYPER LOCAL)’을 지향한다. 자카르타 출신의 헤드 셰프 레이 아드리안시아와 네덜란드 출신의 셰프 엘케 플라메이어가 이곳을 맡고 있다. 인도네시안 퀴진과 유러피언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5∼7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재료들은 모두 현지에서 공수한다.

인도네시아인 셰프와 네덜란드인 셰프, 두 사람의 인연은 엘케 셰프가 암스테르담을 뒤로하고 인도네시아로 무작정 떠나오면서 시작됐다. 직업과 새로운 경험을 찾던 그는 자카르타의 한 레스토랑에 취업했고, 마침 뉴질랜드에서 경영을 공부하던 레이가 요리로 전향을 결심하고 자카르타로 오면서 두 사람이 만났고, 철저하게 인도네시아 자연을 먹고 마시는 ‘로커보어’를 열었다.

―‘로커보어’라는 이름에서 콘셉트가 느껴진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매우 자연스럽게 결정했다. 현지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식재료가 있는데 수입된 재료(대부분 냉동이거나 진공 포장된)를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엘케)

“인도네시아인인 나로서는 인도네시아 식재료를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나누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레이)


―로컬 식재료만으로 원하는 요리를 구현하기에 어려움은 없나.


“어떠한 한계도 없다.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로지’ 새로운 재료만 발견하고 그것으로 무얼 해야 할지 알아내면 되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일하기가 실제로 더 쉽다.”(엘케)

“우리는 발리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주변의 많은 섬에서 재료를 수급한다. 우리가 탐사하고 싶은 것들은 아직 많이 있다.”(레이)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노력한다고 들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현지 재료만을 사용함으로써 푸드 마일(Food mile·식재료가 생산된 곳에서 소비지까지의 이동 거리)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엘케)

“고용에서도 지역사회와 협력하고자 한다. 직원의 90%가 주변 지역 출신인데, 상당수는 요리에 대한 배경이 없거나 요리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레이)


―메뉴 창조를 위한 영감은 어디서 받나?


“주로 새로운 재료, 그리고 고대 인도네시아 조리법.”

―인도네시아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독자들을 위해, 그 특징과 대표적 요리를 꼽는다면.

“인도네시아 음식은 지리적,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매우 풍부한 특징이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로컬 푸드가 있다. 특히 각 섬마다 고유한 맛의 특징이 있는데, 예를 들어 수마트라 섬은 많은 양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생선 머리 커리, 염소 커리 등 커리 요리가 특화되어 있다. 자바 섬의 요리는 다른 곳들보다 더 달콤하고, 술라웨시 섬은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다. 발리는 ‘붐부 발리(Bumbu Bali)’라는 그들의 기본 페이스트로 유명하고, 롬복과 파푸아 요리는 생선과 해산물을 많이 사용한다. 발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베벡 베투투(BEBEK BETUTU)’라는 요리를 추천하고 싶다. 천천히 조리된 오리를 플랜틴 바나나 잎에 싸서 왕겨에 훈제한 요리다.”


필리핀을 요리하다, 첼레 곤잘레스



마닐라의 레스토랑 ‘갤러리 바스크(Gallery Vask)’는 필리핀 미식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주역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엔트리에 들었고 올해 35위를 차지했다. 휴가차 필리핀에 왔다가 그만 마음을 뺏겨 정착하게 된 스페인 셰프 첼레 곤잘레스가 2013년 오픈했다. ‘아르작’, ‘엘 불리’ ‘엘 세예르 칸로카’ ‘무가리츠’ 등 스페인에서도 잘나가는 파인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의 첼레 셰프를 직접 만났다.

―35위에 올랐다. 소감은?

“아시아에 얼마나 많은 레스토랑이 있나. 50곳에 포함돼 행복하다. 필리핀에서 파인다이닝으로 성공하기란 정말 힘들다.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필리핀에 정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2008년, 처음 아시아에 휴가차 왔다. 배울 것도 많고 굉장히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그 뒤 2009년, 2010년 휴가에도 왔는데, 인생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친구도 연고도 없는 곳이어서 굉장히 두려웠다.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마닐라에 정착했다.”

―어떤 요리를 선보이나.

“필리핀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하는데, 현지 밀이나 쌀로 시리얼을 만들거나 발효시킨 새우를 요리에 적극적으로 쓴다. 여기에 나의 뿌리인 스페인 조리법을 접목한다.”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인정받고자 하는 젊은 셰프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은?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여행하라. 요리사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어떻게 자라고 또 어떻게 조리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역 농부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시아 로컬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인기가 많아질 것 같다. ‘갤러리 바스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특히 김치 레시피에 다른 테크닉을 접목해 직접 김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래디시(빨간 무)나 해조류를 이용한 발효 음식도 도전 중이다.”


―바쁜 일정에도 놓칠 수 없는 취미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이 있으면 자연을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주로 요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스마트폰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2017년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계획 중이지만, 연구개발(R&D) 파트를 만들고 싶다.”




스리랑카의 해산물로 안내하다, 다샨 무니다사




스리랑카에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주인공은 다샨 무니다사 셰프였다.

일본인 아버지와 스리랑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리랑카 식재료로 일식을 만드는 ‘니혼바시(Nihonbasi)’와 크랩 전문 레스토랑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Ministry of Crab)’을 50선에 올리면서 스리랑카 해산물의 저력을 과시했다. ‘니혼바시’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첫 회부터 순위에 올랐던 레스토랑으로, 다샨 셰프는 현재 콜롬보에서 5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외식기업가로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


―콜롬보에서 수상한 2개의 레스토랑이 모두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소감은?


“‘니혼바시’는 일식 레스토랑이다. 도쿄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들과도 견주는 치열함 속에서 5년 연속으로 순위에 올랐고,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은 3년째 올랐다. 직접 요리하는 레스토랑 2곳이 수상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매우 특별했다. 정말 큰 영광이다.”

―한 곳도 쉽지 않은 일인데, 레스토랑 두 곳이나 선정된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추측해 본다면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은 스리랑카 해역의 라군 크랩을 이용한 독창적인 요리라는 점이 인정받지 않았을까 한다. 크랩은 조리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방을 특별히 디자인하고, 크랩이라는 하나의 재료에 특화된 레스토랑을 만들고자 했다. ‘니혼바시’는 지난 22년 동안 스리랑카에서 최고급의 로컬 해산물을 찾아내 고급 일식을 구현하고자 애써 왔다. 일식에 대한 우리만의 접근을 선보이려고 했는데, 이 점이 돋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크랩 요리만으로 29위에 선정됐다. 크랩 요리에 대한 노하우를 소개해줄 수 있나.

“무엇보다 적당한 함량, 질감, 건강한 육질의 크랩을 구매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 향료는 현지에서 재배한 향신료들로 검은 후추, 칠리와 강황을 주로 사용한다.”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에 요리 재능을 발견했다던데….

“컴퓨터공학과 국제관계학 두 가지를 전공했는데, 당시 기숙사의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직접 요리를 공부했다. 생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대 초반에 일식당 ‘니혼바시’를 열었다. 서두른 이유가 있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스리랑카로 돌아와야 했다. 가족 중 장남으로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일식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정했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스리랑카에 일본 요리가 드물었다는 점도 이유였다.”

―‘니혼바시’는 스리랑카의 어류들만 사용하는가.

“그렇다. 콜롬보는 해안 도시로 인도양에 둘러싸여 있다. 수확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불과 15분에서 1시간이다. 현지에서 잡은 것을 바로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재료 선택에 많은 혜택이 있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머지않아 스리랑카를 벗어나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서 ‘미니스트리 오브 크랩’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풍력 모터보트로 해산물을 잡아 사용하는 탄소중립 해산물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 상업적인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좋은 해산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자연환경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일종의 성명을 내는 행위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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