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발달장애 아이와 처음 비행기 타요”

최혜령기자

입력 2017-05-08 03:00 수정 2017-05-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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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발달장애인-가족 등 180여명, 30일 전세기 타고 제주도 여행… 장애자녀 키우는 세엄마 의기투합
“남 피해줄까봐 엄두 못낸 여행 이젠 마음껏 즐길일만 남았네요”


“그동안의 고생을 다 잊을 만큼 너무 신나요.”

조미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55·여)는 30일로 예정된 제주 여행을 떠나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23)을 키우면서 집 밖을 나서는 일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별러서 나선 나들이에도 아들이 길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가면 ‘애를 버릇없이 키웠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매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조 부대표처럼 가벼운 나들이도 힘들었던 발달장애인 75명과 가족들, 여행을 도와줄 관계자 등 180여 명이 전세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길에 나선다. ‘효니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이 여행을 주도한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55·여)과 조미영 부대표, 김수정 종로지회장(50·여)을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모두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다. 지적장애나 자폐증세가 있는 사람을 발달장애인으로 부른다. 효니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아를 둔 김미수 씨(44·여)의 ‘작은 소원’을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는 의자를 흔들거나 어디론가 막 달려가는 딸 지현이(16)를 데리고 비행기를 탈 생각조차 못 했다. 우연히 ‘딸과 비행기를 타 보고 싶다’는 김 씨의 바람을 알게 된 김 지회장 등 3인이 팔을 걷어붙였다. 프로젝트 이름도 지현 양의 이름을 따서 정해졌다.

일반인에게 여행은 소박한 일상이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에게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발달장애인은 비행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힘겨워하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다. 공항까지 이동하거나 공항에서 다시 목적지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1시간 남짓의 제주도 비행길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휠체어 사용도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뇌병변 장애나 지적장애가 동반된 이들이 사용하는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보다 크다. 그래서 비행기 탑승구를 통과할 수가 없다. 결국 이들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공항에서 자신들이 타는 휠체어를 화물로 부치고, 작은 휠체어에 옮겨 타거나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에게 업혀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효니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끼리 마음 편하게 비행기를 타 보자는 게 목적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고 여행 날짜도 일부러 날씨 좋은 5월 말로 잡았다. 전세기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비용 일부를 할인해 제공하기로 했다. 여행 경비는 한 가족당 33만 원의 자비 부담 외에 일부 후원을 받기로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프로젝트에 동참하길 원한다는 사연들이 쇄도했다. 그중에는 ‘15년 동안 한 번도 비행기를 못 타 봤다’거나 ‘아이 낳고 여행 한 번 못 가 봤다’는 이들이 적잖았다. ‘여행 경비가 부담돼 가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행이 20일 정도 남았지만 세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제주도행 비행기에 있다. “제주도에서 소리 지르고 몸을 흔드는 아이들을 보면 ‘왜 돌아다니냐’고 나무라지 말고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여러분의 작은 이해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이들은 올해 여행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 내년에는 더 큰 여행을 추진할 계획이다. 새로운 계획을 말하면서 이들의 얼굴에 유채꽃보다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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