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승호]이제 진도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입력 2017-04-13 03:00 수정 2017-04-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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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세월호 참사 3주년을 닷새 앞둔 11일 찾아간 팽목항은 적막했다. 거센 바닷바람 탓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날려 황량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와 지원시설이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건 지난달 31일. 그 자리에는 분향소와 문이 잠긴 가족 휴게소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세간의 시선이 목포신항에 쏠려 추모 발길도 크게 줄었다. 295명의 영정이 놓인 분향소 방명록에 글을 남긴 이는 주말 이후 손으로 꼽을 정도다.

170m 길이의 방파제 난간에는 수만 개의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4656장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 ‘기다림의 의자’로 불리는 나무 벤치, 빨간색의 ‘하늘나라 우체통’은 세월의 무게 탓에 색이 바랬다. 방파제에 있는 수많은 현수막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진도군민 여러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참사 1080일 만에 팽목항을 떠나며 군민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미수습자 가족에게 진도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허다윤 양(단원고)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다윤이가 드디어 육지로 간다. 꼭 만나서 집에 가고 싶다. 지금은 경황없이 떠나지만 아이를 찾아 꼭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국내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길 가는 사람 누구라도 육자배기 한 자락을 구성지게 뽑아낼 정도로 흥이 넘치던 곳이다. 땅은 한 해 농사로 삼 년 먹고살 만큼 기름지다. 청정 해역에서 잡히는 꽃게와 김 미역 다시마 등 수산물은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 대접을 받았다. 진도는 이름 그대로 ‘보배로운 섬’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과 함께 진도도 가라앉았다. 진도 주민 모두는 죄인의 심정이자 상주(喪主)의 마음이었다. 팽목항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가 됐고 주민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면민체육대회나 모임을 자제하고 지역의 유일한 체육시설인 실내체육관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7개월 동안 내줬다. 당시 군 전체 인구(약 3만2000명)의 절반가량인 1만4655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아픔을 나눴다. 진도군은 사고 직후 세월호수습지원과를 만들었다. 직원 7명이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을 챙겼다. 이동진 진도군수는 노란색 점퍼만 입고 다녀 ‘세월호 군수’로 불릴 정도였다.

그사이 지역경제는 끝 모를 수렁에 빠졌다.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붐볐던 거리는 텅 비었고 수산물 거래도 끊겼다. 읍내에서 만난 한 상인의 넋두리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회한이 느껴졌다 “2년 전 ○○에서 열린 음식축제에 꽃게를 가져갔다. 관람객들이 어디 꽃게냐고 물어 진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꽃게를 다 버리고 왔다.”

진도군이 과세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지역경제 손실액이 2014년 한 해에만 898억 원에 달했다. 또 세월호 인양 때 기름이 유출돼 주변 조도면 주민의 양식장 피해는 1601ha에 55억여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세월호 침몰 후 인양까지 조용히 기다렸던 진도군은 최근 피해보상 차원에서 6건의 국비사업을 정부에 건의했다. 기름 피해를 입은 조도면 일대 해조류 양식 기반사업 60억 원, 위축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활선어 회센터 건립 50억 원 등 총 250억 원 규모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때문에 말도 못 하고 가슴속으로 울어야 했던 진도군민의 눈물은 이제 누가 닦아줄 것인가.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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