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 알바생에서 프랜차이즈 제왕이 된 남자

이유종기자

입력 2017-04-12 13:58 수정 2017-04-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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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를 마련하려고 세운 자그마한 동네 샌드위치 가게를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키운 ‘서브웨이’의 공동창업자 프레드 드루카가 2015년 9월 14일 지병(백혈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1965년 설립된 서브웨이는 드루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반세기 동안 매장을 4만4000개 넘게 늘리며 ‘프랜차이즈의 대명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 상대인 맥도널드(3만6000곳), KFC(1만8000곳)의 매장 수를 크게 웃돈다. 가난한 이탈리아계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세할 당시 자산이 35억 달러(약 4조 원)로 추산됐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07년 드루카를 400대 미국 부호(富豪) 가운데 242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브웨이 창업주 프레드 드루카(왼쪽)와 어머니 , 출처 : 서브웨이, 1985년 촬영


● 학비 벌기위해 시작한 동네 샌드위치 가게

1947년 10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드루카는 고교를 졸업할 무렵인 1965년 걱정이 앞섰다.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집안이 가난해 선뜻 학비 마련이 어려웠다. 당시 그는 시간당 1달러 25센트를 받으며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드루카는 돈을 빌리기 위해 가족과 가까운 삼촌뻘 나이의 피터 벅(87)를 찾아갔다. 벅은 드루카에게 “샌드위치 가게를 열어 학비를 마련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창업 자금으로 1000달러까지 빌려줬다. 드루카는 처음에 반신반의 했지만 결국 벅과 공동으로 가게를 열기로 했다. 벅은 컬럼비아대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서브웨이의 공동 창업자다. 벅은 1966년 드루카와 함께 법인까지 세웠으나 전업으로 합류하지 않고 여러 기업에서 핵물리학자로 일했다. 그는 1978년 100호 점을 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브웨이에 합류해 가파른 성장을 도왔다.
서브웨이 첫 매장, 출처 : 서브웨이 웹사이트

드루카는 1965년 8월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에 월세 165달러를 주고 작은 가게를 빌렸다. 그는 다른 패스트푸드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살이 덜 찌며 건강에도 유익한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잠수함 모형의 둥그렇고 긴 빵을 가로로 길게 자르고 속에 야채, 고기 등을 넣어 서브마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가게 이름은 ‘피트의 수퍼 서브마린’(Pete‘s super submarine)으로 정했다. 샌드위치 가격은 평균 49~69센트로 책정했다.

드루카의 첫 가게는 신통치 않았다. 장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드루카는 훗날 “나는 식품산업은 물론 샌드위치 만드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육성을 직접 담아 지역 라디오를 통해 광고를 내보냈는데, 브루클린 사투리가 심해 브리지포트 청취자들은 가게 이름을 오해할 정도였다. ’Pete‘s super submarine’라는 가게 이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Pizza Marines’로 들었다. 이듬해 두 번째 가게를 낸 뒤에야 마케팅, 가게 위치 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겨우 배웠다.
브웨이 초창기 매장, 출처 : 서브웨이 웹사이트

드루카는 두 번이나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샌드위치 가게를 이어갔다. 세 번째 가게는 입지를 매우 좋은 곳에 세웠다. 이 가게는 현재까지도 운영될 정도로 장사가 매우 잘 됐다. 사실 서브웨이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다른 패스트푸드와는 달리 고객이 매장에서 직접 자신의 입맛대로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다. ‘고객의 건강’을 겨냥해 신선한 재료, 저칼로리·저염 음식을 표방하자 서브웨이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1968년 가게 이름을 서브웨이로 짧게 줄였고 다양한 메뉴도 내놓았다.




● 프랜차이즈 진출 폭발적 성장

드루카와 벅은 창업 10년 동안 32개의 매장을 개설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창업 9년째인 1974년 코네티컷 주에서만 1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상당한 성공이었으나 이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매장을 늘릴 방법으로 프랜차이즈를 선택했다. 드루카는 친구 브라이언 딕슨을 설득해 코네티컷 주 월링포드에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다. 프랜차이즈 진출은 대박이었다. 1978년 서브웨이의 매장은 100곳으로 늘었고 서부 지역에도 진출했다. 1984년 중동 바레인에 해외 첫 매장도 오픈했다. 1985년에는 전체 매장수가 500개에 달했다. 캐나다, 하와이에도 진출하며 1987년 1000호까지 열었다.

1990년대 초반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등 대형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들도 서브웨이의 주력 상품인 서브마린 샌드위치를 자신들의 메뉴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서브웨이는 다급해졌다. 매장을 더 늘리며 외형을 키우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드루카는 대학, 편의점, 병원, 버스터미널, 기차역, 컨벤션센터 등 이전에는 매장을 개설하지 않았던 곳을 주목했다. 또 주 고객층인 젊고 싱글 남성에서 벗어나 어린이에도 주목했다. 서브웨이는 어린이들을 위한 메뉴를 만들어 학교 매점에도 진출했다.

신(新)시장 전략으로 서브웨이는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다. 무슬림, 힌두교도, 유대인 등의 식습관을 고려해 소, 돼지고기 등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 매장도 개설했다. 이런 노력으로 1992년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매장을 열었고 1996년 콜롬비아, 덴마크, 과테말라, 쿠웨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까지 진출했다. 2004년 대형할인점인 월마트에 매장을 개설했으며 매장수가 맥도날드를 웃돌기 시작했다. 2016년 현재 미국에서만 2만7058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11개 국가에서 4만4672개의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프레드 드루카 서브웨이 창업주, 출처 : 서브웨이


● “작게 시작해 크게 성공하라!”

드루카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위해 창업했지만 주경야독으로 1971년 브리지포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이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나 회사 규모가 커지자 ‘의사의 꿈’을 접고 샌드위치 매장에 남았다. 드루카는 천성적으로 매우 사교성이 좋은 인물이었다.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에도 낡은 차에 몸을 싣고 여러 매장을 찾았다. 가명으로 음식을 주문한 뒤 직접 샌드위치의 품질을 점검했다. 매장 주인, 고객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하며 자신들이 보완해야 할 사안을 챙겼다.

드루카의 경영 철학은 ‘작게 시작해 크게 성공하라’는 것. 그는 2000년 현장에서 배운 경험을 정리한 저서 ‘Start Small, Finish Big’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 되려면 먼저 ‘푼돈 버는 법’부터 배우고 야심가처럼 사고하며 끊임없이 개선하고 직원들을 무한 신뢰하라”고 조언했다. 젊은 창업인에 대한 관심도 많아 1996년에는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비영리 투자법인 마일(MILE, the Micro Investment Lending Enterprise)을 설립했다. 드루카는 2013년 7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는 열정을 보이다 병세가 크게 악화된 2015년 6월 여동생인 수전 그레코에게 CEO 자리를 넘겼다. 드루카의 성공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유종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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