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과목 전자교재 강의… 책 볼일 없네

최예나기자

입력 2017-04-11 03:00 수정 2017-04-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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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융복합 수업’ 현장 가보니

6일 대구 달성군 DGIST의 ‘응용미적분학과 미분방정식’ 수업에서 한 학생이 태블릿PC로 전자교재를 보고 있다. 전자교재에 수업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고 판서 내용도 나중에 내려받을 수 있어 따로 필기할 필요가 없다. DGIST 제공

교수와 학생 그 누구의 책상 위에도 교재는 없었다. 그 대신 아이패드나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다. 교수가 아이패드에 판서해 스크린에 띄운 건 수업이 끝나면 내려받을 수 있다. 이따금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전자펜으로 아이패드 화면에 메모하는 학생도 있었다. 전자교재 내용을 출력해온 일부 학생은 손에 볼펜과 전자펜을 모두 쥐고 있었다.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모든 학생은 국내 최초로 전자교재로 공부하고 있다.

공교육 현장에서는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처음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다. 하지만 기존 교과서는 그대로 사용하고, 디지털교과서를 원하는 교사나 학생이 알아서 내려받아 쓰는 수준이다.

6일 DGIST ‘응용미적분학과 미분방정식’ 수업. 교수가 “(전자교재) 강의록에 있는 걸 구현해 볼게요”라고 말하자 스크린에서 자동으로 그래프가 그려졌다. 다른 방식으로 그린 학생이 있다면 교수는 해당 학생의 아이패드 작업 내용을 스크린에 띄울 수도 있다.

DGIST는 2014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無)학과 단일학부 제도를 시작하며 전자교재를 도입했다. 지난해까지 전자교재 42종을 개발했다. 기술 개발 담당자인 김현호 선임행정원은 “기초교육을 강화했는데 같은 과목을 배워도 교수에 따라 다루는 내용이 달라지는 걸 막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모두 들어간 전자교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전자교재 집필에는 기초학부 교수 40명이 전부 참여했다. 사진이나 영상, 그래프는 교수가 최상이라고 판단한 내용을 엄선했다. 다른 이가 쓴 교재를 일부 활용하는 건 교내 수업 목적이라 저작권상 문제가 없다. ‘악기연주’ 교재를 만들 때는 교수가 바이올린 잡는 법, 정확하게 치면 나는 소리 등을 촬영하고 녹음했다.

여러 교과, 과거와 현재 지식을 융·복합하는 것 역시 전자교재의 특징이다. 물리학 교재에서 미적분학 개념을 클릭하면 수학과 교수가 등장해 설명한다. ‘동서양 철학의 통시적 이해’ 교재에는 개념을 추가 설명해주는 링크가 1000개 달렸다.

DGIST는 학생들에게 1년에 네 번씩 설문조사하면서 전자교재의 기능을 계속 고쳤다. 도입 초기엔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학생들이 종일 스마트폰을 쓰니 전자교재가 종이교재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건 오산이었다.

이에 DGIST는 전자교재 내용을 출력해 볼 수 있도록 PDF 파일을 제공했다. 손으로 직접 쓰며 공부하는 게 효과적인 물리, 수학 교재 일부와 영어와 실험 과목 전부는 전자교재 내용을 축약해 종이로 워크북도 만들었다. 학생들 요구에 따라 전자교재에 직접 메모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가독성 높은 서체로 바꿨다. 학생 일부를 ‘교재원정대’로 구성해 오탈자를 잡거나 기능적 제안을 끊임없이 하게 했다.

이제 학생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연재 씨(21·여)는 “아이패드 하나면 한 과목 안에서도 여러 교재를 모두 공부한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기초학부 전담 교수제도 전자교재 성공에 기여했다. 배영찬 교학부총장은 “기초학부 교수는 재임용이나 승진을 심사할 때 논문 실적을 평가하지 않으므로 수업에만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손상혁 총장은 “상반기에 전자교재를 외부에 공개하고 다른 대학도 전자교재를 활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달성=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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