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의 가혹한 희생, 극의 힘 되레 저하

손효림기자

입력 2017-04-07 03:00 수정 2017-04-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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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흥보씨’

창극 ‘흥보씨’에서 흥보(왼쪽)와 외계인이 만나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 국립극장 제공
재기발랄한 또 한 편의 창극이 탄생했다. 국립창극단이 처음 선보인 창극 ‘흥보씨’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흥보는 착하고 놀보는 심술궂다는 점 외에는 사실상 새로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가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고 씨는 2014년 ‘변강쇠 점찍고 옹녀’ 극본과 연출로 창극에 처음 도전해 대히트를 쳤다. 소리꾼 이자람은 ‘흥보씨’의 소리를 짜는 작창(作唱)과 작곡, 음악감독을 맡아 판소리의 맛을 살리면서도 젊음과 경쾌함을 더했다.

흥보(김준수)는 자식이 없던 연생원(김학용)이 양자로 들인 장남이고, 동생 놀보(최호성)는 연생원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통정해 낳은 차남이다. 흥보가 도와준 제비(유태평양)는 외로운 아녀자들을 위로(?)해주는 춤꾼이다. 외계인도 등장한다. 기존 요소를 살짝살짝 비틀거나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잘 알려진 이야기에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극을 관통하는 철학은 ‘비움’이다. 가난을 텅 빈 충만으로 받아들이는 흥보는 구도자를 연상시킨다. 그리스도, 석가모니의 이미지도 덧입혔다. 다만 후반부에 흥보가 놀보를 위해 가혹한 희생을 자처한 설정은 선함을 지나치게 증폭시켜 극의 힘을 떨어뜨리는 느낌을 준다. 기둥 줄거리 자체가 ‘권선징악’을 충분히 웅변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맞게 절묘하게 캐스팅된 단원들은 배역을 120% 소화하며 웃음과 흥을 끌어낸다. 창극의 변신은 현재 진행 중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무대다. 16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02-2280-4114

★★★(★5개 만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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