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우영]한국의 ‘실리콘앨리’를 만들자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입력 2017-03-28 03:00 수정 2017-03-28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한계에 부닥칠 일자리 정책, 새로운 해법 절실해
美 스탠퍼드대 졸업생들 기업 4만, 일자리 540만 창출… 우리 대학 한 곳의 창업자 수는 1.1명에 불과
우수 인재가 창업 선택하도록 제도와 분위기 뒷받침해야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지난 20년과 앞으로 10년의 차이를 정의하라면 무엇일까. 국민 모두가 바라는 건 행복한 일자리가 넘쳐나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이 아닐까.

얼마 전 설립 50주년을 맞은 한 중견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기업은 절삭공구를 전문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연 매출액이 수천억 원 규모다. 필자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1985년 당시와 비교하여 매출액은 70배로 성장하였으나 근로자 수는 4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앞으론 경제가 살아나고 수출이 증가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에서는 예전의 호황기만큼 일자리는 늘지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이 일하는 대규모 작업장은 스마트공장, 즉 첨단 로봇과 디지털 정보의 결합으로 고용 증가 없는 매출 성장을 이룰 것이고, 마른 수건 짜내듯 일자리 나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여러 정책적 수단을 통한 고용 창출도 시간이 지나며 한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익숙함으로 인해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낯설고 새롭게 보는 자세’와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에서 일자리 문제를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청년층 스타트업 마인드 확산과 기존 도심을 재생하여 벤처창업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있다.

몇 년 전 국내 모 명문 사립대와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스탠퍼드대의 학교 소개 프레젠테이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 대학은 수능 상위 1%의 최상위 학생이 입학하고, 사법시험 ○○명, 행정고시 ○○명, 역대 총리 및 장관, 국회의원이 많이 배출된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이에 반해 “1930년 이후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 세운 기업의 수는 4만 개,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 만든 일자리 540만 개, 이 회사들의 총 매출액이 연 2조7000억 달러로 구글, 야후, 테슬라, HP, 나이키 등이 졸업생들이 만든 브랜드입니다. 그 덕분에 9조 원대에 육박하는 기부금으로 8년 연속 전 세계 대학 중 기부금 1위를 차지하고….”

한미 두 명문 대학이 보여주는 인재상의 차이는 전통적인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국가의 경제 수준도 큰 요인이라 생각된다. 글로벌 창업연구기관 GEM의 발표에 따르면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5000달러 정도가 되면 취업과 창업 간의 인식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고, 다시 3만 달러 이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 창업 활동이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학알리미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한 대학의 평균 학생 창업자가 1.1명으로, 2014년 기준 전국 대학에서 학생이 창업한 기업 수는 278개, 창업자 수는 297명 그리고 창업 기업의 고용 인원은 326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실험실 창업이 전혀 없는 대학도 전체 대학의 77.1%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인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졸업생 20% 정도가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것과는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룬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인턴은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젊은 최고경영자(CEO)와 70세의 나이에 인턴으로 채용된 노신사가 서로의 갈등을 극복하고 따뜻한 행복을 주위에 선사하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무실은 흥미롭다. 이 공간은 뉴욕 브루클린의 한 낡은 인쇄공장을 개조한 것으로 천장이 높고 탁 트인 공간에서 즐거운 일이 있을 땐 골든벨을 울려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고 축하해준다. 관객으로 하여금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과거 브루클린 하면 뉴욕의 빈민가, 범죄가 많은 지역으로 연상되었다. 이제는 맨해튼과 함께 동부의 실리콘앨리(Silicon Alley)라 불리며 스타트업 기업들이 버섯처럼 번지는 디지털 도시로 변신해 전 세계 청년 벤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공유와 연결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시 곳곳을 영국 맨체스터의 팹랩이나 실리콘밸리의 테크숍처럼 지식과 정보의 플랫폼,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디지털 제조 공간으로 변화시켜 청년 벤처들을 불러 모으자. 주거와 교육, 놀이, 일터가 연결된 도심에 스마트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실패를 통해 꿈은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공유하며 아름다운 실패가 커다란 일자리를 만드는 도전과 성취의 장을 만들자.

도산 안창호는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했다. 청년의 가치를 새로운 스타트업 정신으로 일깨우자.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