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경유차는 무조건 죄인? 무분별 폐차가 더 문제”

이원주기자

입력 2017-03-27 03:00 수정 2017-03-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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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자동차 10년타기 운동’ 벌이는 임기상 대표

2000년식 베르나를 타고 다니는 임기상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연합’ 대표. 그는 “자동차는 100만 km까지 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니 차를 너무 빨리 교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미세먼지 주범으로 무조건 노후 경유차를 꼽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측정 시스템을 도입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를 골라내는 겁니다. 연식이 오래됐다고 무조건 폐차를 유도하면 오히려 더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어요.”

공기가 탁한 날이 늘어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후 경유차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도 강조한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에서 만난 임기상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연합’ 대표(59)는 ‘노후 경유차 책임론’에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임 대표는 “노후 자동차가 내뿜는 미세먼지나 오염물질의 양보다 새 차를 만들 때 배출되는 양이 훨씬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새 차 한 대를 만들 때 배출되는 공기 오염물질의 양이 차를 약 6년 반 동안 운행할 때 나오는 양보다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임 대표는 “노후차 환경 대책이 성과를 보려면 폐차 지원금을 주고 새 차를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검사 때 시행하는 배기가스 측정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양을 ‘적합’과 ‘부적합’으로만 구분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 등급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차량에 대해 교체를 유도합니다. 이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요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보통 100만 km까지 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제작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비만 잘 받는다면 오래 타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 그가 지금 타고 있는 차량도 2000년에 만들어진 소형 ‘베르나’ 차량이다. 옛 차주가 폐차하려던 차량을 냉큼 인수한 뒤 3년째 타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새 차를 사 본 적이 없다는 임 대표는 자동차 검사 결과지까지 내보이며 “연식이 17년이나 됐지만 문제도 불편도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임 대표가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을 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1998년 서울 문래동에서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하던 임 대표는 정비소 고객들이 차를 고치는 비용을 아까워하면서 새 차 구입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전체 차량 중 10년이 넘은 차량 비율은 3%밖에 안 되더군요. 제 수명을 반도 못 쓰고 버려지는 차들이 아까워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년간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당시 3% 수준이던 ‘10년 차’ 비율은 지금은 30%를 넘겼다. 차를 오래 탈수록 자동차세를 최대 50%까지 감면해주는 정책도 임 대표가 주도해 이끌어냈다. 지속적으로 동일한 결함이 발견되는 차량이 있으면 앞장서서 리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전국 자동차 정비업체에 노후 차를 저렴한 가격에 정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는 임 대표는 “환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준법 운전을 하겠다는 운전자의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에서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시동 꺼 반칙운전’ 캠페인을 응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환경도 사람이 지키고 새로운 자동차 문화도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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