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 City]벽화속 고구려인의 생활상 그대로

남경현기자

입력 2017-03-27 03:00:00 수정 2017-03-27 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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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임당…’속 고구려대장간마을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중 사임당이 양류공동체마을 대장간에서 유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위쪽 사진). 대형 물레방아와 그 뒤편에 높이 솟은 건물이 고구려 대장간마을의 대장간이다. SBS 제공·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아씨 어서 오세요. 그림 많이 그리셨어요?” “그래, 자네들도 별일 없었는가.”

사임당(이영애)이 이틀간 산에 올라 산수화를 그린 뒤 마을로 들어서자 주민들이 모두 나와 반겨준다. 사임당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민(流民)들과 함께 종이를 만들며 생계를 꾸리는 양류공동체마을 풍경이다. ‘양류지소(楊柳紙所)’라는 현판의 사임당 종이공방과 대장간 양류학당도 등장한다. 2년 전 당대 최고의 종이로 평가받던 고려지(高麗紙) 제조 경합에서 경쟁자 이조참의 민치영(최철호)과 부인 휘음당 최씨(오윤아)를 이긴 뒤 정착한 곳이다. 현재 TV에서 방송 중인 ‘사임당 빛의 일기’는 신사임당의 삶을 재해석해 그의 예술혼과 왕실 종친 의성군 이겸(송승헌)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지물전과 종이공방으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곳은 경기 구리시 아천동 ‘고구려대장간마을’이다. 아차산 아래로 바로 옆에 워커힐호텔(서울 광진구)이 있다. 구리시가 조성해 2008년 문을 열었고 면적은 3300m²(1000평) 규모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드러난 집 구조를 바탕으로 상상을 동원해 지붕은 너와집 형태로 만들었다. 국내 유일의 고구려 재현 마을인 셈이다. 사임당의 조선시대 마을이 고구려 마을로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왜 고구려 마을이 구리시에 있는 걸까.


아차산에서 고구려 장수왕 이후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보루(堡壘·군 초소)가 대규모로 발견된 덕이 크다. 보루는 고구려가 한성백제의 위례성을 함락한 장수왕 63년(475년)에서 신라와 백제 동맹군에 다시 빼앗기는 551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과 이어진 용마산 망우산 등지에서 모두 17개의 보루가 발견됐다. 1997년 가장 먼저 발굴된 아차산 4보루(성곽둘레 249m)는 남한의 고구려 유적지 1호다. 그전까지는 남하정책을 편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는 삼국사기 기록만 있었고 유적지로 확인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보루군(群)에서 발굴된 유물만 3000여 점. 부러진 철제무기나 농기구를 보수했을 간이 대장간 터도 있었다. 구리시가 고구려 마을을 조성하면서 대장간을 짓고 대장간마을이라 이름 지었다. 대장간마을 입구에는 투구 창 낫 쟁기 도끼 쇠스랑 같은 철기와 여러 토기 같은 고구려 유물 60여 점을 전시한 실내전시실이 있다.

고구려 마을은 그동안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를 비롯해 ‘선덕여왕’ ‘바람의 나라’ ‘자명고’ 등 드라마와 영화 수십 편에 등장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지름 7m 물레방아와 2층 건물 높이의 화덕이다. 촬영은 끝났지만 양류지소 현판은 그대로 걸려 있다.

10월에는 아차산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고구려 온달장군 추모제향도 열린다. 주말에는 고구려 와당문양 찍어보기, 활쏘기, 삼족오 문양 탁본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연중 무휴(오전 9시∼오후 6시) 무료 입장.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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