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의 글로벌 이슈&]‘어쩌다 대통령’ 테메르 변호사가 박수 받는 이유

신석호 국제부장

입력 2017-03-20 03:00 수정 2017-04-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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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남미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76)은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별로 없다. 매일 관저와 집무실을 오가는 동안 고가도로를 도배한 “테메르는 꺼져라!” 구호를 봐야 한다. 현지 여론조사업체 MDA가 지난달 발표한 국정운영 평가에서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10.3%로 겨우 두 자릿수에 턱걸이했다. ‘부정적’은 무려 44.1%였다.

이유는 다층적이다. 일부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연정 파트너인 지우마 호세프 전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부통령에서 승진한 ‘어쩌다 대통령’이다. 지난해 5월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절차가 시작되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8월 대법원의 탄핵 결정과 함께 잔여 임기(2019년 초까지)를 맡게 됐다.

그 역시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된 정경유착 부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측근 여러 명이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 자신도 2014년 선거에서 호세프 후보와 함께 부정적인 선거자금 기부를 받았다는 혐의로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이다. 그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향후 20년 동안 정부 재정지출을 동결했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조절 정책이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빈곤층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수도 브라질리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테메르의 연금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열렸다. 노동자와 농민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는 ‘테메르는 꺼져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당사자인 테메르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이다. 이달 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민주주의가 생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오히려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높이 평가했다. 역사가 자신을 변호해 줄 것이라면서 후임자에게 “정상 궤도로 돌아온”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헌법 전문 변호사인 그는 노동법과 정당 개혁에도 착수했다. 청년층 일자리 확보와 외국인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고 노동법 조항보다 회사와 노동자의 자율 협약의 여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28개의 정당이 난립하는 다당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영국식 ‘최다득표자당선제도’나 정당명부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재정 건전화에서 더 나아가 경직된 노동시장과 정치 비효율까지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그의 비전에 국제사회는 일단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배신당한 좌파 진영과 그 지지자들은 당분간 거리로 나서겠지만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는 것이 브라질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도 되살아나고 있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8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브라질 경제는 올 1분기(1∼3월) 1% 성장을 하며 바닥을 쳤다.

이코노미스트는 ‘비리 혐의가 확인되지 않고 정책을 계속 추진해 성과를 낸다’는 전제로 테메르 대통령이 “우연한(accidental) 대통령으로 시작했다가 중요한(consequential)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대처럼 된다면 브라질은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를 만난 셈이 된다. 좌파 노동자당(PT)의 호세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아 테메르 대통령의 중도 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과 연정을 한 뒤 불의의 탄핵을 당해 자리를 내어준 결과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딱 50일 뒤 한국에서도 새 대통령이 나온다. 유력 주자들은 듣기 거북하겠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조금 다른 의미의 ‘어쩌다 대통령’일 것이다. 예정보다 6개월 앞당겨진 갑작스러운 선거에서 ‘역대급’으로 평가되는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반사이익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쩌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지는 그야말로 하기 나름이다. 잠정적이긴 하지만 테메르 대통령의 행보를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 당면한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 늘리기를 시작으로 성장잠재력 확보와 고령사회 대비, 무너진 교육 시스템 되살리기와 북한 핵·미사일 위협 저지, 중국과 미국 주요 2개국(G2) 갈등 및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내는 일 등이다. 하나도 쉬운 것이 없지만 테메르 대통령이 처한 진퇴양난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은가.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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