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가파른 산등성 신비한 죽림이…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입력 2017-03-04 03:00 수정 2017-03-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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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올레길 18, 19번째 코스를 걷다

길은 선(線)이고 선은 점(點)의 집합이다. 점은 선을 잉태하고 선은 점을 품으니 둘은 같아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럴까. 아니다. 둘은 대치관계다. 선이 점의 이동궤적이어서다. 정지된 점에 운동에너지를 가해보자. 점의 정지는 파괴된다. 점이 움직이기 시작해서다. 선은 그게 끝나는 위치까지의 흔적. 따라서 선은 정적인 점과 달리 동적이다. 거기에 방향까지 갖는다. 선이라는 한자를 보자. 샘 ‘천’(泉)과 실 ‘사’(絲) 두 글자의 합성. 샘에서 솟은 물이 점이라면 실처럼 이어진 그 흐름이 ‘선’이다.

세상의 모든 길도 이렇게 태어났다. 애초 그 기원은 동물. 먹이활동의 흔적(발자국)이 그 시작이다. 그 발자국은 그 동물을 쫓던 인간에 의해 명료해졌다. 길은 그렇게 생겨났고 그 길은 강과 마을까지 이어지고 어떤 경우는 고속도로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동물과 사람의 원초적 본능은 영원하다. 노출 않고 은닉하는 습성이다. 좁고 인적 드문 길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것은 매일반. 제주 올레길에 각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게 이젠 일본에까지 수출됐다. 규슈 올레길이 그것이다.

규슈 올레길은 무려 열아홉 개로 늘었다. 불과 5년 만인데 그중 2개가 지난달 중순 개통됐다. 열여덟 번째 이즈미 코스(가고시마 현)와 열아홉 번째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후쿠오카 현)다.


대나무숲 따라 걷는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만나기 힘든 대나무 숲속의 풍광은 이렇듯 아름답고 청초했다. 미야마 기요미즈야마 코스(후쿠오카 현)의 초입으로 이 숲길은 고대국가 시절의 산성 흔적이 남아 있는 조야마의 전망대로 이어진다. 미야마 시(일본 후쿠오카 현)=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도로를 등지고 들어선 조야마(女山)의 침침한 숲 속. 탄성이 절로 났다. 거대한 왕대나무로만 이뤄진 죽림의 비경에 취해서다. 평지의 대숲은 우리 담양에도 있다. 그러나 여긴 가파른 산등성의 대숲. 굵은 대나무로 온통 뒤덮인 이런 형국은 난생 처음이다. 거기엔 신비로움까지 깃들어 있다. 햇빛을 받아 파르스름하게 빛을 발하는 대나무 상부의 특별한 풍광이다.

죽림의 녹음은 활엽수의 그것과 차별된다. 고공을 드리운 무성한 댓잎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한 파란 하늘. 그 하늘을 대나무의 매끈한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시킨다. 그래서 신비로운 느낌의 파란 빛이 숲에 띠를 두른다. 그 특별한 빛의 조화. 네 시간 코스를 걷는 내내 이것만으로도 찾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대숲만 보고 되돌아나가면 후회한다. 조야마 하산 후 다시 오를 기요미즈야마의 산중 고찰 ‘기요미즈데라(淸水寺)’를 오르는 숲길도 그 풍광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인상적이어서다. 그건 숲 속에서 서서히 경사가 시작되는 초입부터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첫 번째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인 계곡. 좀 더 오르면 신선세상을 옮겨 놓은 듯한 혼보(本坊) 정원이 그것이다. 그 정원의 풍치는 대청마루에 앉아 감상하는데 자연을 구겨 넣은 일본식이 아니라 원경을 빌려오는 중국식이다. 운 좋게도 그날은 피리 연주까지 들었으니 그 호사는 극치로 치달았다.

거기서 더 오르면 개울은 실개천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물가 바위는 온통 이끼로 뒤덮여 초록일색. 그런데 그곳의 크고 작은 돌무더기를 보니 모두가 부처 형상이다. 이름하여 오백나한(羅漢·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이). 그런데 훼불(毁佛)로 머리가 없는 나한도 많다. 알고 보니 몽땅 머리가 잘려나간 뒤 최근 다시 회복 중인 모습이란다. 여길 지나면 드디어 일주문. 그 문을 넘어서면 가파른 돌계단이고 기요미즈데라의 당우는 그 위에 조성됐다. 일본에서 이런 심산의 사찰, 그것도 일주문을 갖춘 곳은 보지 못했던 터라 더더욱 특별했다.

그런데 절에서 인기 있는 불상은 절 마당의 ‘나데’라는 검은 좌상이었다. 사람들이 만져 광채가 날 정도로 반짝였다. 그건 자신의 환부를 만지면 낫는다는 속설 덕분. 사람들은 불상에서 자기가 낫기를 원하는 부분을 만진다. 이후 길은 내리막, 하산 후엔 4km를 보리가 파릇파릇 싹틔운 평야를 지난다. 종착점은 일본 전국에 있는 미치노에키(道の驛). 이곳은 지역특산물 매장이다. 코스 안내장을 보여주자 매장 안 스낵코너에서 커피를 무료로 주었다.


코스 안내: ▽총연장: 11.5km ▽소요시간: 4시간 ▽난이도: 중·상급 ▽최고 고도: 200m(조야마) ▽특징: 녹음 짙은 숲길 ▽자랑거리: 대나무 숲, 고대 산성 흔적, 일대 조망 전망대(2곳), 산중 고찰과 불교건축(목조삼층탑) ▽소재지: 후쿠오카 현 미야마 시(후쿠오카 남단으로 구마모토 현 경계)


흑두루미의 쉼터가 있는 이즈미 코스

이즈미 코스는 상당 구간이 이 고메노쓰 강을 따른다.
이즈미는 바닷가 고장(시라누이 해)인데 19세기말 간척사업으로 평지를 얻어 벼농사를 지으며 겨우 가난을 면한 곳이다. 그런데 그게 행운을 선사했다. 1970년대에 시베리아에 서식하는 두루미 떼가 2000km를 날아 월동하러 온 것이다. 배경은 너른 개펄과 추수한 들녘의 풍성한 낙곡(落穀). 두루미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머무르는데 그것도 희귀한 흑두루미가 대부분. 우리 철원평야에 도래하는 재두루미도 최종목적지는 여기 이즈미라고 한다. 가장 많을 때는 1만7000마리(7종)나 되는데 이 중 흑두루미는 1만4000마리.

이즈미 시는 두루미 특별보호구역까지 설정해 보호해 오고 있다. 평야 한가운데는 두루미공원(생태관)이, 잠을 자는 습지엔 관찰전망대가 따로 있다. 습지는 발을 물에 담근 채 잠을 자는 두루미에게 절대로 필요한 공간. 시에선 개인농토를 겨우내 임차해 물을 대어 습지로 조성한 뒤 매일 먹이(하루 2.7t·한 마리당 겨우내 9만 원 소요)까지 주고 있다.

하지만 이즈미의 두루미 관찰 여행은 일본에서 인구 감소가 시작된 이래 관광객이 줄면서 시들한 상황. 올레코스는 그걸 만회하려는 시도다. 이즈미 시민의 환대가 타지역보다 더 적극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 자체는 미야마에 비해 경관이나 아기자기함이 떨어진다.

출발점은 한적한 도로변의 이쓰쿠시마 신사. 동네를 벗어나면 야산의 고개를 넘어 가미오카와(上大川) 강변으로 이어진다. 그런 뒤엔 고카와(高川) 강 댐의 호반 길로, 댐을 내려서면 고메노스 강 계곡으로 들어선다. 그런 뒤엔 이 코스에서 가장 험난한 ‘산악산책로’에 다다른다. 협곡의 가파른 산기슭에 어렵사리 낸 위험천만의 등산로니 여기선 각별히 주의한다. 하지만 거기에서만 천국의 길로 들어서니 참을 만하다. 고메노쓰 강의 청징한 계곡을 따르는 평탄한 길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다.

이후 도로를 가로질러 가파른 언덕의 마을로 접어든다. 종착점인 무사(武士)가옥 마을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에도시대에 무사계급은 이렇게 일정한 형태의 집을 짓고 집단 거주했다. 그런데 그간 보아온 무사가옥 중에서도 이즈미 것은 특별했다. 1km나 되는 가도에 대규모로 조성된 데다 빈집을 보존하는 타 지역과 달리 주민이 살아서다. 이 중 미술관으로 이용중인 곳은 이 지역 사쓰마 번의 다이묘(영주)였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여행 중 묵던 곳이다.


코스 안내: ▽총연장: 13.8km ▽소요시간: 4∼5시간 ▽난이도: 중·상급 ▽최고 고도: 180m ▽특징: 두루미공원과 전망대에서 생태학습 및 관찰(10월∼이듬해 3월) ▽자랑거리: 고메노쓰 강변의 논과 청징한 계류 ▽소재지: 가고시마 현 이즈미 시(가고시마 현 북단으로 구마모토 현 경계) ▽출발점 및 마을에 한글안내문 비치
 

버스 승차 패스 ‘산큐패스’ 3종
나 홀로 여행자의 규슈 올레길 걷기엔 ‘산큐패스(Sun-Q Pass)’가 유용하다. 저렴한 비용으로 규슈(7개 현) 지역의 거의 모든 버스(특급 및 심야특급 포함)와 페리(일부 구간)를 무제한 이용하는 시간한정 승차패스다. 북부 3일권(6000엔)과 전규슈 3일(1만 엔) 및 4일권(1만4000엔)이 있다. 미야마, 이즈미 코스를 이어서 섭렵하자면 전규슈 3·4일권이 필요.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후쿠오카공항 터미널(국제선)에서 세타카(JR가고시마혼센 철도역)행 탑승(40분 소요). 여기서 출발점(히치라쿠카이 종교교단)까지는 택시로 10분. 택시비(650엔)는 미야마 시에서 지원(e메일로 사전예약 경우에만·shoukou@city.miyama.lg.jp). 이 코스만 걷겠다면 북부 3일권으로 충분.

이즈미 코스:
미야마 시에서 갈 수 있지만 버스를 네 번 갈아타는 등 불편(탑승만 네 시간 반)하니 가고시마공항에서 이즈미 직행(3시간 소요)을 권함. 이즈미 버스센터에선 이즈미 후레아이(出水ふれあい)버스(200엔 지불)로 가미오카와우치(上大川內)정류장(올레코스 초입)에서 내린다. 여기서 출발점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 정류장 자체가 초입이니 여기서부터 걸어도 좋다.

미야마에서 이즈미로 가려면 세타카에서 구마모토로 간다. 구마모토 버스센터에서 마쓰바세(松橋)로 이동 후 야쓰시로(八代)로, 야쓰시로에서 다시 미나마타로, 미나마타에서 최종목적지인 이즈미혼마치(本町)행 버스로 갈아탄다.

아쿠네 역 앞 다로스시의 부채새우 정식.
이즈미 시와 남쪽으로 이웃한 아쿠네(阿久根) 시는 신선한 생선으로 이름난 곳. 태안의 꽃지 해변을 연상시키는 한적한 모래사장엔 기암으로 이뤄진 절경이 숨어 있다. 우에노 신타로 씨가 44년째 음식을 내고 있는 역전 상가의 향토식당 다로스시의 스시 정식(1890엔·사진)을 강추.

상세정보: 규슈타비(www.kyushutabi.net)에는 산큐패스로 규슈 여행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과 상세한 여행지 정보가 소개돼 있다. 규슈투어(www.kyushutour.co.kr) 여행박사(www.tourbaksa.co.kr)에선 산큐패스를 할인가에 판매한다.

가고시마 후쿠오카 현(일본)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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