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빚을땐 ‘한가루’… 다이어트엔 ‘눈큰흑찰’ 좋아요

최혜령기자

입력 2017-02-28 03:00 수정 2017-02-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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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기능성 쌀품종 개발 성과

밥맛이 좋고 병충해에 강한 고급 쌀뿐만 아니라 가공용 쌀의 개발도 활발하다. 다이어트용 쌀 고아미, 전통 술을 빚을 때 쓰는 설갱, 맥주 제조용 한가루까지 품종도 다양하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농촌진흥청 제공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한 공기. 집에서도 음식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밥 한 공기는 겉보기에는 다 같은 쌀 같지만 속을 알고 보면 다르다. 밥맛이 좋고 병충해에 강한 고급 쌀부터 국수를 만드는 데 쓰는 쌀, 술 빚는 데 쓰는 쌀이 모두 다르다.

탄수화물이 마치 건강의 적처럼 돼 버렸지만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고 비만을 예방하는 기능성 쌀도 개발됐다. 최근에는 갱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쌀까지 나왔다. 밥맛 좋은 쌀부터 건강에 좋은 쌀까지, 매년 쌀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려는 쌀의 변신이 계속되고 있다.


○ 밥맛 좋은 쌀, 항산화 쌀 등 개발

27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밥맛이 좋으면서도 병충해에 강한 ‘최고 품질품종’으로 선정된 쌀은 ‘삼광’ ‘운광’ ‘고품’ 등 15종에 이른다. 농진청은 국내에서 쌀 품종 개량과 기능성 쌀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2003년부터 최고 품질품종의 쌀을 선정하고 있다. 최고 품질품종으로 인정받으려면 쌀알이 투명한 백색이고 밥맛이 좋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삼광은 발아현미나 쌀빵에 많이 쓰인다. 발아현미는 현미를 0.5∼2mm가량 발아시켜 말린 것이다. 일반 현미보다 부드러워 소화가 잘되고 식감이 좋다. 백미와 섞어 먹을 수도 있다. 씨눈이 큰 ‘큰눈벼’는 일반 쌀보다 감마아미노산이 3배가량 많은 데다 발아 과정에서 3∼4배 더해져 일반 쌀보다 감마아미노산이 10배나 많다. 항산화물질 함유량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진청이 농가와 농협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밥맛을 조사한 결과 고품과 삼광, 호품 등의 고급 품종은 일본산 고시히카리보다 밥맛이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오산에서 생산된 고품은 응답자 110명 중 43%가 밥맛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삼광과 호품이 그 뒤를 이었고 고시히카리는 호품과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전남 해남에서 재배된 호품은 일본에서 재배된 히토메보레보다 밥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히토메보레는 일본어로 ‘첫눈에 반한’이라는 뜻으로 1982년 개발된 품종이다. 다른 쌀보다 일찍 심고 일찍 수확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 최근 국내에서 재배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 다이어트용부터 맥주 제조용까지 기능성 쌀

가공용 쌀로 개발된 품종도 있다. 고아미 쌀은 체내 흡수가 덜 돼 체지방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다이어트용 빵, 피자 도 등에 활용된다. 밥으로 먹기보다는 쌀국수를 만들 때 많이 쓰인다.

전통 술을 빚는 품종은 ‘설갱’이다. 멥쌀인 데도 색깔이 뽀얘 찹쌀처럼 보인다. 전분 내부에 공간이 많아서 발효가 잘되기 때문에 양조용으로 쓰인다. 쌀막걸리를 만드는 국순당에서 양조용으로 계약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중독 치료용으로 개발된 쌀도 있다. ‘눈큰흑찰’은 농진청이 건국대, 아주대병원과 공동으로 자체 개발한 쌀로 일반 벼보다 쌀눈이 3배 정도 큰 검은색 쌀이다. 동물 임상시험결과 이 쌀을 섭취하면 알코올 흡수량이 20%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판매 중인 알코올중독 치료약인 아캄프로세이트의 90%에 가까운 효과를 보인다. 또 혈압을 조절하는 물질도 일반 쌀의 8배가량 많이 들어 있다.

눈큰흑찰은 비만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3개월간 고혈압 등 대사증후군이 있는 환자 21명에게 눈큰흑찰 쌀을 먹게 한 결과 체중이 평균 1.5kg 감소했다.

쌀로 맥주도 만든다. ‘한가루’ 품종은 쌀알을 부드럽게 개량해 일반 쌀보다 전분 입자가 둥글고 조직이 치밀하지 않다. 맥주를 만들 때 전분이 뭉치지 않고 발효가 잘되는 장점이 있다.

한가루 품종은 농진청이 지난해 개발한 쌀가루 전용 품종이다. 크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 ‘한’에 분말을 뜻하는 ‘가루’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농진청이 개발한 쌀맥주 가공기술은 한가루 품종 현미와 국산 엿기름을 4 대 6으로 섞어 만든다.

쌀 소비를 늘리려는 유통업계의 노력도 활발하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슈퍼마켓은 흰쌀과 현미, 찹쌀을 섞은 ‘블렌딩 쌀’을 판매한다. 흰쌀과 현미, 쌀을 70 대 25 대 5 비율로 섞어 건강과 맛을 모두 잡는다는 전략이다.

롯데마트는 370∼900g짜리 페트병에 쌀을 담아 파는 ‘보틀라이스’도 내놨다. 추청과 오대쌀뿐만 아니라 블루베리미, 클로렐라미 등의 기능성 쌀까지 내놨다.


○ 초밥에 적합한 신동진 쌀

지역별로는 경기도에서 재배되는 쌀의 59%가량은 추청(秋晴)이라는 품종이다. 1955년 일본 아이치 현에서 개발된 ‘아키바레’ 품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최근에는 고시히카리 품종의 재배도 늘고 있다. 일본 쌀의 대표 품종인 고시히카리는 1956년 니가타 현에서 개발됐다. 60년 넘게 일본 최고 품종 자리를 지켜온 고시히카리는 단맛이 강해 초밥에 많이 쓰인다.

일본 품종이 주류인 것은 아니다. 전북 지역에서 나는 쌀의 절반은 ‘신동진’이라는 품종의 벼다. 동진벼 품종을 개량해 새로 만들었다고 해서 신동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동진 벼는 쌀알이 1.5배가량 굵은 대신 찰기가 적고 단단하다. 단백질 함량이 다른 품종(약 6%)보다 조금 높은 7.6%가량 된다. 찰기가 적어 볶음밥이나 덮밥에 잘 어울린다. 중식당이나 마트에서 파는 냉동 볶음밥 중에도 신동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시히카리 품종을 주로 썼던 초밥집에서도 최근에는 신동진 품종을 쓰는 곳이 많아졌다.

초밥 조리 전문가에 따르면 밥 알갱이가 커 모양이 잘 만들어지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다고 한다. 신동진은 고시히카리보다 쌀 수확량도 10%가량 많아 농가 수익도 높아진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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