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인 기자의 작품 속 그 곳]파도, 석회암 언덕, 장밋빛 모래섬 자유인 ‘조르바’를 꼭 닮은 원시美

손가인기자

입력 2017-02-23 03:00:00 수정 2017-02-2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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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의 크레타 섬

손가인 기자
항공권을 구매하듯 책을 사고, 열차표를 끊듯 영화 표를 예매합니다. 작품을 통해 떠나는 여행은 시공간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현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품에 안고 ‘작품 속 그곳’으로 직접 떠나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기자가 만난 ‘작품 속 그곳’을 격주로 소개합니다.

여행은 본능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완벽한 여행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번뇌에 파묻혀 살아가던 젊은 지식인인 ‘나’는 크레타 섬으로 가려고 잠시 머물던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우연히 만납니다. 매 순간에 충실하고 자신의 오감을 오롯이 믿을 줄 아는 야생마 같은 조르바와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에게 해 건너 크레타 섬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곳입니다. 소설 속 ‘나’는 카잔차키스의 청년 시절 모습이며 초인(超人) 조르바도 실존 인물입니다. 카잔차키스는 1917년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에서 광산사업을 합니다. 이런 사실은 소설에 그대로 나옵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리스의 크레타 섬.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동아일보DB

“언덕 위로 올라 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의 풍경이 펼쳐졌다. 거뭇한 캐러브콩 나무, 은빛 올리브 나무, 무화과와 포도 넝쿨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곡으로는 오렌지 나무 숲, 레몬 나무와 모과 나무가 보였으며, 해변 가까이로는 채소밭도 보였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

이 구절을 읽노라면 푸른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진 듯합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마다 크레타 섬의 언덕과 해변을 찾습니다. 그의 뒤를 한 발짝 떨어져 따라가는 독자 역시 1900년대 초의 크레타 섬을 함께 거닐게 되는 것입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크레타 섬은 삶의 소중함을 아는 조르바와 닮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조르바의 말은 존재 깊숙이에서 나와 온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음’을, 손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 행복이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했음을 깨닫습니다. 갈탄광 사업은 망해버리지만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도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춤을 춥니다. 잃을 것이 없어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무덤은 크레타 섬의 바다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습니다. 소박한 십자가가 꽂힌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늘 행복을 바라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영원이란 바로 지금 흐르는 순간순간임을” 아는 조르바와 그가 행복해했던 크레타 섬에서 우리 역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그리스인 조르바’(1946년),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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