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세돈]경제위기는 과연 오는가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7-02-16 03:00 수정 2017-02-16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정국만큼이나 뜨겁게 거론되는 단어는 아마도 ‘경제위기’일 것이다. 굳이 ‘4월 위기설’이 아니더라도 정치권을 비롯해 너나없이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해법을 쏟아낸다. ‘미증유의 위기 봉착’이라는 경총이나 ‘1997년 혹은 2008년 위기보다 더 심각하다’는 전경련은 물론 국책 연구기관조차 동조하는 느낌이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대체로 ①막대한 가계부채 위에 국제금리는 올라가면서 외환 및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②경제성장률은 2%대로 떨어졌으며 ③수출 부진 속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이 강화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 급격한 고령화나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한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도 중장기 위기 요인으로 지적된다. 과연 이런 이유로 한국 경제에 위기는 올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 달러가 강세로 반전하자 국내 외환보유액이 60억 달러가량 줄면서 위기 분위기가 고조된 적이 있었다. 2년 이상 지속된 수출 감소세와 미국의 고금리 정책과 맞물려 외환시장이 출렁거렸다.

달러 가치나 금리가 오르면 외환보유액은 구조적으로 줄게 되어 있다. 외환보유액 절반가량이 유로화나 엔화 표시 자산인데 달러 가치가 오르면 유로화 엔화 가치는 떨어지므로 자연히 외환보유액은 줄어든다. 또 보유 외화 자산의 대부분이 채권 형태여서 금리가 올라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외환보유액도 자동으로 감소한다. 달러 가치와 금리 변동으로 발생하는 평가상의 외환보유액 변동은 과도하게 걱정할 것이 없다.

또 다른 우려는 과도한 자본 유출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매년 1000억 달러 가까이 유지되는 한 급격한 자본 유출로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만에 하나 수천억 달러의 자본 유출이 일어나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현재 3800억 달러)과 통화스와프 계약(현재 1220억 달러), 민간 부문 보유 외환(대외채권 약 2000억 달러)과 금융 부문 보유 외환(대외채권 약 1820억 달러)으로 메워주기 충분하다고 본다. 단기간의 환율 불안, 주가 변동은 피할 수 없겠지만 1997년, 2008년 같은 외환위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음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7%(속보치)로 발표되면서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2000년대 4.8%씩 성장하던 나라가 2011년 이후 2%대 성장(2011∼2016 연평균 2.9%)으로 추락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과연 2%대 성장은 위기의 저성장인가.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1970년 이후 미국 영국 독일의 성장률은 2%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1970년대 3.2%, 80년대 2.8%, 90년대 3.2%, 2000년대 1.7%, 그리고 2010년 이후 2.1%의 성장률을 보였다. 영국 독일도 거의 마찬가지다. 2% 성장은 정상적 상태, 즉 ‘창타이(常態·normal)’라는 말이다. 성장률만 가지고 경제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일본이다. 1970, 80년대 4%를 넘나들던 일본의 성장률은 1990년대 1.6%대로 하락한 뒤 2000년대 0.6%대로 주저앉았다. ‘잃어버린 20년’의 문제는 2%대 성장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1%대 이하의 성장률에 있다. 1991년부터 2015년까지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쳤던 해가 19년이나 됐다. 지난 5년만 해도 2013년만(2.0%) 빼곤 매년 1%대 성장이었다.

한국이 걱정해야 할 것은 일본 같은 1%대 또는 그 이하 성장률의 고착화다. 1%대 이하 성장하에서는 일자리도 안보도 복지도 보장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투자가 정체되고 소비증가세가 2%대 아래에 머물고 수출이 증가하지 못한다면 1%대 혹은 그 아래 성장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몇 년 인위적 추경 집행이 없었더라면 1%대 성장률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택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은 집값 버블과 가계부채라는 부작용만 드러낸 채 정답이 아닌 것이 드러났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구호만 무성했지 별 뾰족한 대책도 성과도 없어 보인다. 초저금리 상태가 지속됐음에도 투자는 뒷걸음질만 쳤고 수출(국제수지 기준)은 28개월 연속 감소했다.

규제 완화든 소득 보전이든 체질 개혁이든 간에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파격적 대책’이 나오지 않고서는 1%대 성장률의 족쇄를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밋밋하거나 시시콜콜하거나 정도를 빗나간 대선 주자들의 경제 처방이 전혀 믿음직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