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미국인이 찍은 경희궁 회상전의 마지막 모습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2-15 03:00 수정 2017-0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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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기증자료집 발간
회상전 포함 희귀 자료 648점 담아… 미국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가 기증
구한말-광복 직후의 모습 생생


대한제국 시절 촬영한 걸로 추정되는 경희궁 회상전. 한동안 관리가 안 된 듯 전각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짜리 대형 전각(殿閣)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다. 1661년 숙종이 태어났고 한때 왕과 왕비의 침소였던 곳이지만, 거의 무릎까지 자란 잡초들로 둘러싸였다. 이 전각에 연결된 행각 기둥으로는 덩굴이 타고 올라가 지붕까지 이어져 있다. 조선말기 왕실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듯하다. 전각 안에선 궁궐 나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갑자기 사진기를 들이댄 서양인을 잔뜩 경계했으리라.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80)의 기증자료집에는 대한제국 시절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을 찍은 희귀 사진이 실렸다. 1930년대에 화재로 소실된 회상전의 구한말 사진은 이것이 유일하다. 일제는 한일 강제병합 직후인 1911년 경희궁에 경성중학교를 세우면서 회상전을 임시소학교의 교원 기숙사로 사용했다. 회상전은 1930년대 일본 사찰 사무실로 전용되기도 했다. 고종이 경복궁과 경운궁에 주로 기거함에 따라 경희궁은 상대적으로 방치됐다. 1865∼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부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희궁의 일부 전각을 해체하기도 했다. 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사진 속 회상전 주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건 이런 연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기증자 에비 여사의 할머니이자 구한말 선교사로 활동한 새디 웰본 여사가 생전 소유했다. 고인은 마찬가지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아서 웰본과 결혼해 후에 미군정청 통역관으로 근무하게 되는 헨리 웰본을 낳는다. 민속박물관은 에비 여사로부터 대한제국 시기 사진과 헨리 웰본이 수집한 자료 등 총 648점을 기증받았다. 한반도와 깊은 인연을 맺은 미국인 3대가 바라본 구한말과 광복 직후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역사적인 자료인 셈이다.

경운궁 대안문을 통과하는 ‘고종 어가 행렬’ 사진.1898∼1906년 찍은 걸로 추정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 중 1946년 7월 경상남도 미군정청 정보과장 및 공보부장으로 임명된 헨리 웰본의 자료가 눈길을 끈다. 당시 그의 주된 업무는 한국인들의 여론을 수집하고 미군정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가 작성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 쌀’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한국에서 추수한 쌀은 오직 한국인의 밥상에 오를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된 쌀을 군정이 해외로 반출하지 않고 있으며, 쌀을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유통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된 ‘10월 항쟁’ 이후 민심을 서둘러 수습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박물관은 자료집에서 “당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곡 수매가가 암시장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며 “일방적으로 농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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