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 부인 김혜경

여성동아

입력 2017-01-31 15:40 수정 2017-01-3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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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나흘 앞둔 지난해 12월 28일 본지와 여성지 최초 단독 인터뷰를 가진 김씨는 007 미팅으로 시작된 러브 스토리부터 최근 이 시장을 곤혹스럽게 만든 욕설 파문의 진실, 안타까운 심경까지 ‘속 시원하게’ 얘기했다.


“불의를 참지 못해
논란도 자주 빚는 남편,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약한 사람이에요”


이재명(53) 성남시장은 박근혜 정부가 벌인 국정 농단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다른 정치인들이 박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할 때 곧바로 ‘탄핵’을 외쳐 국민들의 속을 뻥 뚫어준 ‘사이다’ 정치인으로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전에도 그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남시 공단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6급 장애 판정을 받은 ‘흙수저 노동자’였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개천 용’이었으며,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인권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성남시장에 당선돼 ‘부채 없는 지자체’를 일궈낸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 탄핵 표결을 앞둔 지난해 12월 초순, 18%까지 치솟았던 그의 지지율은 1월 21일 현재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형수 욕설 녹음 파일’ 사건 등 악재가 겹쳐서다. 그럼에도 그가 우왕좌왕하지 않고 대중 속으로 계속 ‘직진’할 수 있는 것은 부인 김혜경(50) 씨의 내조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 태생인 김씨는 숙명여대 피아노과 85학번으로, 1990년 이 시장과 연애를 시작해 1991년 결혼식을 올리고 1992년과 1993년 연년생인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와 이 시장이 실제 태어난 연도는 각각 1966년, 1963년이지만 둘 다 출생신고를 늦게 해 법적 나이는 한 살씩 어리다. 생김새는 서로 다르지만 살면서 성격이 닮아간 걸까. 김씨를 인터뷰하면서 ‘부창부수’라는 말이 떠올랐다. 단아한 옷차림과 여성스러운 외모의 그녀는 어떤 물음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부인도 이재명 시장처럼 사이다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남편에게 전수받은 ‘인터뷰 필살기’를 공개했다. “여성지 인터뷰도, 혼자 인터뷰하는 것도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더니 오늘 아침 남편이 조언을 해줬어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얘기하라’고요(웃음).”



▼ 이재명 시장은 어떤 생각으로 혼자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신 건가요.

처음에는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정도로만 얘기했는데 국정 농단의 일원인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대통령이 시켰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탄핵 주장도 그때부터 했거든요. 그 일로 당 안팎에서 공격을 받아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남편 혼자 대통령 탄핵을 주장해서 너무 불안했거든요. 남편이 촛불 시위에서 처음 탄핵 얘기를 한 날에는 당에서 다른 몇 분이 나오시기로 했다가 취소하기도 했고요.



▼ 다른 야권 후보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처음엔 속상했죠. 같은 당에서 저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서운했는데 몇 주 지난 뒤에는 검증을 위한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하니 담담해졌죠. 이번 국정 농단 사태로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을 강도 높게 할 것 같아요. 겉만 보고 뽑았다가 뒤통수 맞았잖아요. 이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따져보고 온전한 인물을 뽑아야죠.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하면 표를 못 받을 거예요.



▼ 남편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는 사이가 어떤가요.

괜찮아요. 〈여성동아〉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지난 대선 때 선거운동을 다니던 문재인 후보와 김정숙 여사를 찍어놓은 게 있더라고요. 당원으로 함께하면서 선거운동을 정말 열심히 도왔거든요.



▼ 김정숙 씨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인가요.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어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뵀는데 그분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 앞으로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다른 사람이 승자가 되더라도 선거운동을 도울 건가요.

같이 다녀야죠. 서로 도와야죠. 문재인 전 대표도, 남편도 누가 되든 결과에 승복하고 선거운동을 적극 도울 거예요. 남편은 항상 팀플레이를 강조해요. 누가 MVP가 되든 각자의 영역을 키워서 전체 파이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어요(웃음).



▼ 촛불 집회에 참석하신 적이 있나요.

친구들과 몇 번 갔는데 분위기가 무척 따뜻해서 감동받았어요. 행진 인파가 너무 많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치지 않게 균형을 잡고 있어서 사고가 안 났어요. 1987년 6월 항쟁 때 저는 언저리에서 보던 구경꾼에 가까웠는데 촛불 집회는 그때 시위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 이 시장은 사이다 같은 성격 덕분에 지지율이 급등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중앙정부와 충돌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 면이 대선 후보로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뜨지 못했겠죠. 품위가 없는 것 같고 말도 막 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밖에서나 집에서나 앞뒤가 똑같은 사람이에요. 대중도 남편의 솔직하고 담백한 면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행동이 앞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해서 그래요. 시골에서 여러 형제들과 함께 자라서 정도 많고 모질지 못해요. 강자에게는 강하지만 약자에겐 한없이 약하죠.



▼ 지난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이 시장의 재산을 23억여 원으로 발표해 좀 놀랐어요.

저희 재산이 그 정도인 줄은 저도 몰랐어요(웃음). 변호사 시절 월세로 시작했는데, 시민운동 할 때 제가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바깥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거면 집이라도 한 채 사 놓고 하라고요. 그래서 외환 위기 때 집을 샀어요. 제일 쌀 때였죠. 그 집값이 많이 올랐어요. 재산의 절반 이상이 집값일 거예요.



▼ 두 분이 결혼한 지 27년째죠.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의 셋째 형수님과 친정어머니가 같은 교회에 다니셨어요. 두 분이 얘기를 하시다가 장가 안 간 시동생과 피아노 레슨을 하는 딸을 만나게 해주기로 한 거예요. 대학 졸업한 이듬해인 1990년 8월 ‘007 미팅(소개시켜주는 사람 없이 둘이 알아서 만나는 것)’으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남편이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자기는 검정고시 출신이라며 살아온 이야기와 집안 분위기를 솔직히 털어놨어요. 친정이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살 만은 했는데, 양쪽 집안이 경제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런데도 자신의 처지를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어요. 그날 같이 차도 마시고 저녁도 먹었죠.



▼ 이 시장이 바로 데이트 신청을 했나요.

첫 만남 다음 날 남편이 집 앞에 와서 나오라고 전화를 했어요. “바다 보러 갑시다” 하며 자동차 핸들을 딱 꺾는데 입매가 선명해서 웃음 띤 얼굴이 무척 스마트해 보였어요. “어디 갈래? 뭐 먹을래?” 하는 것보다 “어디 갑시다” 하니까 카리스마 있어 보이더라고요. 법대생을 만나긴 처음이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솔직해서 편했어요. 꾸미지 않고 있어도 편안한 사람이랄까요.



▼ 연애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거의 매일 만났어요. 남편 집이 법원 앞에 있어서 송파 우리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거든요. 퇴근 후 남편이 저를 데리러 와서 남한산성도 가고, 강릉도 가고 그랬어요. 당일치기로 갔다가 늦게 귀가해서 엄마한테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나요. 한번은 남편과 당일치기로 강원도 설악산으로 오색약수를 보러 갔어요. 8월 초 남편을 처음 만나고 나서 얼마 후였죠. 큰 방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같이 살자고 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결혼할 마음을 먹었다면서요. 대답은 안 하고 가만있었어요. 좀 더 지켜보자는 마음이었죠. 반지도 없이 분위기도 잡지 않고 프러포즈를 해서 나중에 그게 프러포즈였냐고 물어보니까, 가만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더래요. 집에 바래다주면 엄청 깨질 것 같아서 그냥 결혼하자고 했대요.



▼ 결혼 생각을 굳힌 건 언제인가요.

남편이 양가 부모님께 허락받고 사귀자며 1990년 8월 저희 집에 먼저 인사하러 왔어요. 그해 9월엔 제가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고요. 그 부담감에 진지하게 만나다 보니 그해 10~11월엔 평생을 같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과는 포장마차를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 이 시장이 어릴 적 왼팔 장애 판정을 받은 것 때문에 연애할 때 반팔 옷을 안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이유가 있는지 몰랐어요. 법조계가 보수적이라서 긴팔 옷만 입나 했어요. 그런데 친정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고 나서 술 마시고 고백할 게 있다며 한참 뜸을 들이더라고요. ‘무슨 일이지? 숨겨놓은 아들이라도 있나?’ 했는데 너무 진지하고 어렵게 왼팔 다친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본인에겐 콤플렉스였으니까요. 사춘기 때는 그것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요. 당시 남편은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에 있는 여러 공장을 다녔는데 공장 프레스 기계에 왼팔이 낀 거예요. 그 사고로 성장판을 다쳐서 팔이 곧게 안 펴져요. 차렷 자세가 안 돼요. 그래서 서 있으면 껄렁껄렁해 보여요. 팔이 뒤틀려 있으니까 반팔 옷이나 통이 좁은 옷을 싫어해요. 그냥 봐서는 티가 나지 않는데 뒤로 팔을 들 때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하고 제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됐던 모양이에요. 결혼할 때 크게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금방 넘을 수 있었는데(웃음).



▼ 왼팔 장애 때문에 군 면제 판정을 받은 건가요.


맞아요. 1986년 대학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기 전에요. 그런데 대선 후보가 되니까 군대를 안 갔다 온 걸로 남편의 상처를 후벼 파서 공격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게 너무 가슴 아파요.



▼ 불행한 가족사 노출한 형수 욕설 녹음 파일, 억울하고 안타깝다

최근 이 시장의 지지율 상승세를 꺾은 직격탄은 지난해 12월 인터넷에 유포된 ‘형수 욕설 녹음 파일’ 사건이다. 이 파일에는 이 시장이 형수에게 폭언을 하는 음성이 담겨 있어 충격을 던졌다. 이에 이 시장은 지난해 12월 13일 자신의 SNS에 장문의 해명 글을 올린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5남 2녀 가운데 넷째인 이 시장은 2010년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후 그의 셋째 형인 이모 씨가 ‘시장 친형’을 내세우며 시정에 개입하고 이권을 요구해, 시청 공무원들에게 셋째 형과의 ‘접촉 금지’를 지시했다. 이후 형 부부는 어머니 집에 가 살해 협박을 하며 이 시장과 통화 연결을 시도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고, 급기야 어머니까지 폭행해 참을 수 없었던 이 시장이 형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화 도중 형 부부는 이를 녹음해 앞뒤를 빼고 “이재명이 형수에게 욕설했다”며 카톡 망에 불법 유포시켰다는 것이 이 시장의 주장이다. 그의 형은 욕설 파일이 퍼진 지난해 12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성남지부장으로 임명됐다.

폭행 사건 당일 시어머니 집에 갔었다는 이 시장의 부인 김씨는 “셋째 형 내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어머님은 맞아서 쓰러져 있고, 시누이는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시동생은 심하게 구타를 당한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형 내외가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남편이 형수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형이 어머니에게 한 폭언을 재현했다. ‘당신이 아들에게, 당신 오빠가 친정어머니에게’ 이런 폭언을 들으면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앞뒤 내용을 잘라 사실을 왜곡했다”고 덧붙였다.

1 교복을 입고 싶은 꿈을 이룬 중앙대학교 입학식 날, 어머니와 사진 찍은 아들 이재명. 2 이재명 시장이 어머니, 부인 김혜경 씨와 어버이날을 기념해 찍은 사진. 3 이 시장과 부인의 행복한 웨딩 현장. 4 처음 장만한 ‘내 집’에서 두 아들과 목욕 중인 변호사 이재명. 5 유치원생인 두 아들과 분당 탄천으로 소풍 나온 아빠 이재명.


▼ 이 시장이 욕설 파문으로 곤혹을 치렀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요.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팠어요. 한 자락 들춰보면 집안 문제나 형제들 사이에 분란이 없는 집이 없는데, 남편이 공직에 있어서 다른 형제자매들과 조카들까지 ‘콩가루’라는 얘기를 듣게 한 것도 너무 죄송했고요. 다른 형제자매들은 효자, 효녀예요. 시집 식구들이 힘들게 사시지만 우애가 좋아서 자주 모여요. 남편이 정치를 안 했으면 아주버님이 저렇게 망가지도록 두지 않았을 텐데, 공직자는 친인척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마음은 아파도 어쩌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여자 형제가 없어서 시누이와 친했어요. 남편과 여동생도 사이가 각별했고요. 그 시누이가 원래 배달 일을 했는데 힘들어서 그만두고 청소업체에 취직했어요. 그런데 2년 전 새벽에 건물 청소를 하다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남편이 시장이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이 “친오빠가 시장이니까 너도 좋은 자리 달라고 하라”고 부추길 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다닌 동생이에요. (김혜경 씨는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았다. 모처럼 곱게 화장한 얼굴이 얼룩져 다시 고쳐야 했다.) 시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남편도 여동생을 떠나보낸 후 힘들어했어요. “시장 안 하고 정치 안 했으면 누굴 통해서라도 좋은 자리 구해줄 수 있었는데, 이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 다른 형제들은 어떤가요.

시집 식구들이 모일 때 셋째 형님네는 안와요. 어머님도 그 집엔 안 가세요.



▼ 어머님은 현재 누가 모시나요.

막내네 집에 사세요. 남편도 어머님 사진을 품고 시험공부를 했을 정도로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요. 그래서 결혼 전에도 어머님 모시며 살고 싶다고 했는데 어머님이 혼자 사시길 고집하셨어요. 그러다 최근 막내네로 가셨어요. 막내가 편하신가 봐요.



▼ 2010년 배우 김부선 씨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성남 청년’이 이재명 시장이라는 소문이 있었어요. 당시 그 일로 논란이 커지자 김씨는 방송을 통해 “이재명 시장과 전혀 상관이 없다. 시장님께 죄송하다”고 밝혀 해프닝으로 끝났는데, 부인으로서는 몹시 불쾌했을 것 같아요.

남편이 일본 출장 중일 때 그 사건이 터졌어요. 기사 밑에 달린 글을 보니 누가 봐도 이재명인 거예요. 성남 사는 변호사, 지방선거에 당선된 사람. 그날 일본 공항에서 남편이 전화해 “지금 집에 돌아가는데 화장품 뭐 사면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기 스캔들 떴어” 했더니 남편이 그건 신경도 안 쓰고 “빨리 말해. 뭐 사다 줘?” 하는 거예요. 세상은 난리였지만 저는 솔직히 남의 일 같았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남편은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요. 결혼반지도 돈 아까워서 못 찾는 사람이 그분 방세를 대줬다는 게 말이 되나 싶더라고요. 근데 요즘은 제가 남편과 이혼했다는 소문도 있대요(웃음).



▼ 평소 두 분이 대화를 자주 하시나요.

전화 통화는 거의 못 해요. 할 얘기가 있으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요. 요즘은 하도 바빠서 귀가도 늦어요. 강연도 많고 시정도 봐야 하고 지방도 왔다 갔다 하니까요.



▼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이렇게 기자님 만나서 인터뷰 할 때 아닐까요. 이재명 만났으니까 이런 인터뷰도 해보죠(웃음).



▼ 이 시장에게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몇 점을 주고 싶으세요.


남편으로서는 평균 ‘A-’고, 아빠로서는 80점쯤 돼요. 요새 가족에게 시간을 많이 못 내서 20점 깎았어요. 남편은 요즘 아빠들과 달리 자녀 교육이나 진로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좋게 보면 자립심을 키워주려고 그런다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만점은 아닌 것 같아요.



▼ 기념일도 잘 챙기나요.

지난해 3월 30일이 결혼 25주년이었는데 저희가 지금껏 결혼반지가 없어요. 결혼식은 했는데, 결혼 예물로 예약금만 주고 반지를 맞췄다가 돈이 없어서 못 찾았어요. 남편이 그런 데 돈 쓰는 걸 되게 싫어해요. 자기 손으로는 반지를 못 살 것 같다면서 대신 현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완불이 안 됐어요. 기사에 꼭 써주세요. 하하.



▼ 이재명 시장은 SNS를 정말 열심히 하시는데, 식탁이나 잠자리에서 하시진 않죠.

저희는 침대에 누워서 SNS를 함께해요. 졸다가 휴대전화 떨어뜨려 얼굴에 맞고 그러죠. 남편은 글을 올리고 저는 주로 댓글을 살펴요. 중요한 사항이나 전할 만한 내용은 남편에게 우회적으로 알려줘요. 남편이 기분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번은 강연을 했는데, 시장님 바지폭이 ‘너무 아재스럽다’는 댓글이 올라왔어요. 바로 수선 맡겼죠. 하하.



▼ 이 시장은 집에서도 ‘사이다‘ 같으신가요.

집에서는 달라요.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자상해요. 남편이 바쁘니까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은 제가 알아서 해요. 대신 큰 정리 정돈과 쓰레기 분리수거는 남편 담당이에요. 남편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요. 대신 집안에서 꼭 써야 할 돈은 써요. 저희 부부는 사교육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갈등이 있었어요. 남편은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자기처럼 혼자 공부하길 원했거든요. 저는 학원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려 했고요. 결국 제가 하자는 대로 했어요(웃음). 겨우 영어와 수학 학원만 보냈어요. 분당은 학원가가 잘 형성돼 있고, 엄마들끼리 커뮤니티도 활발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 두 사내아이를 키우며 고충은 없었나요.

사고 친 적은 없지만, 아들 둘 키우기 힘들죠. 사춘기에는 아무리 얌전한 아이라도 엄마를 좀 힘들게 하잖아요. 말을 툭툭 뱉고 엄마를 무시하는 것처럼 행동하고요. 그래서 큰아이가 사춘기였을 땐 힘들었어요. 좀 성숙한 엄마였으면 보듬었을 텐데 저도 아이를 처음 키우다 보니 그때는 괘씸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 첫째는 공군 제대 후 지금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고려대 정경학부에 재학 중이에요. 아들 둘을 모두 명문대에 보낸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아빠가 책을 항상 들고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저희 집에는 책이 침대, 식탁, 화장실에 있어요. 밥 먹을 때도 항상 책의 주제나 사회 이슈를 놓고 부자간에 토론이나 논쟁을 벌여요. 오죽하면 제가 “밥 좀 먹자”고 할까요. 어릴 때부터 그런 게 몸에 배서 학교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그냥 안 넘어가더라고요. 큰아이가 좀 반항적이에요. 두 아이 다 재수해서 ‘수시’로 대학에 갔는데, 둘째가 재수할 때 내일모레가 수시 면접시험인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겠다는 거예요. 다문화 가정 이야기를 다룬 〈완득이〉였죠. 저는 얼른 들어가서 공부했으면 했는데 남편이 그냥 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둘이 영화를 봤는데, 끝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그런데 아빠랑 토론한 게 수시 면접시험에서 도움이 많이 됐대요. 다문화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대요. 아들이 평소 아빠와 책 읽고 토론하기, 사회현상에 대해 신문 보고 논쟁하기, 영화 보고 이야기하기를 즐겨요.



▼ 그럼 아빠로서 80점이 아니라 90점 이상 줘야죠.

좋게 이야기해서 그런 거죠. 남편이 ‘청년배당(성남에서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로 25만원 상당의 성남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정책)’을 비롯해 젊은이들을 위한 3대 무상복지를 실시해서 자기 자식들 진로에도 관심이 많은 줄 알아요. 제 친구들도요. 그런데 자기 아들 진로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요. 스스로 선택하게 두라고 하죠.

▼ 이 시장이 변호사로 일하다 정치권에 발을 들였을 때 밀어주셨나요.

처음엔 말렸죠. 2006년 처음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땐 정말 이혼하려고 했어요. 첫 선거였고 가장 힘들었죠.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 말려요. 본인이 정치를 하고 싶다는데요. 그때는 정말 정치인의 아내는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 ‘변호사 사모님’은 할 만했습니까.

그때도 풍요롭진 않았지만 하나씩 살림 장만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전세를 오래 살다 1999년 집을 처음 샀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아이들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놀러 와서 변호사도 전세 사냐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신혼 3개월 때 더워서 선풍기를 샀는데, 나중에 에어컨 샀을 때보다 좋았어요. 그때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제가 선풍기 샀다고 자랑을 하더래요(웃음).



▼ 평소 어떤 내조를 하시나요.

남편은 어디를 가든 튀는 뉴스 메이커고 혼자서도 뭐든 잘해요. 그래서 저는 남편을 방해만 안 하면 그게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요. 친구나 친인척은 뭘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잖아요. 같이 나타나기만 해도 ‘저 사람이 누구래?’ 할 수 있으니까요. 남편이 그걸 병적으로 경계해요. 행사장에 친척들이 나타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지역 행사 때는 저와 같이 가요. 자주는 아니고 종종요. 남편은 본인이 못 가면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에는 저를 보내고 싶어해요.



▼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팽목항에 가서 소리 없이 자원봉사한 일이 지금도 기억되고 있습니다(그녀의 재킷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리본 모양의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늘 착용하는 브로치다).

남편 모르게 갔어요. 그때는 정치인들이 팽목항에 가서 기념사진 찍어 한창 욕먹을 때였거든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더라고요. 일단 혼자 가서 성남에서 봉사하러 온 분들과 합류했는데, 그분들 가운데 누가 사진을 찍었나 봐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티를 내려고 간 게 아닌데….



▼ 이 시장의 선거운동을 여러 번 도우며 노하우가 생겼나요.

처음 선거 때는 경로당에 가서 남편 사진을 일일이 보여주며 이 사람이 누구라고 한참 설명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편하죠. 성남에서든, 분당에서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니까요. 성남시의 그 많던 빚도 다 갚아서 시민들이 남편을 많이 홍보해주시더라고요. 성남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대단하세요.



▼ 만일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건 너무 앞선 얘기고, 앞으로 영부인이 되실 분에게 바람이 있다면 애 키우면서 일하기가 정말 힘드니까 직장맘들의 고충을 세심하게 살펴주시면 좋겠어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손을 빌리지 않고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요.

그녀는 “혼란스러운 시국이 빨리 안정되고, 새 지도자를 얼른 뽑아서 국민들이 각자 생활에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올해 소망을 밝혔다. 또 “남편이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이재명처럼 일할 사람을 국민들이 뽑을 것”이라며 “국민은 이제 겉만 우아한 대통령보다, 머슴처럼 일해주실 분을 원한다.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박경옥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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