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인턴’ 맴돌다 ‘부장인턴’… 끊어진 정규직 징검다리

정지영기자

입력 2017-01-24 03:00 수정 2017-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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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청춘 ‘호모인턴스’]


《 인턴 경력 5회, 인턴 기간 2년 3개월. 인턴 신분증을 목에 걸고 정규직처럼 일했다. 최저임금을 못 받아도,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았다. 한 중견 기업에서는 ‘우수 인턴상’도 받았다. 상금과 상패는 없었지만 뿌듯했다. 정규직 채용이라는 더 큰 상을 기대했다. 인턴이 끝났을 때, 그는 정규직 신분증을 받지 못했다.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는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회사를 등지고 돌아서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모 씨(31). 그는 이제 취업을 포기하고 지난해부터 아버지 가게 일을 돕고 있다. “인턴으로 낭비한 내 20대가 아깝다.”


○ ‘호모인턴스’ 시대

 취업은 하지 못한 채 인턴만 반복하는 ‘호모인턴스(Homo Interns)’, 인턴 경력을 계산하면 기업체 간부급이라는 ‘부장인턴’…. 취업 포털 잡코리아 설문조사(2016년)에 따르면 인턴 경험자의 42.1%가 자신을 ‘부장인턴’이라고 답했다. 인턴 경력과 기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면서 마치 직업같이 느껴진다는 것.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인턴 활동으로 ‘직무 적합성’을 증명하려는 대학생이 많아지면서 호모인턴스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희대를 졸업한 김모 씨(28·여)는 지난해 말 네 번째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취업 때까지 생길 공백 걱정 탓이다. 김 씨는 “원하지 않는 자리라도 인턴 기회가 있으면 다 지원했다”며 “솔직히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인턴 지원 연령도 계속 어려지고 있다. 성신여대 심모 씨(22·여)는 “1학년 때부터 해외 서포터스 등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했다. 심 씨는 현재 대기업에서 세 번째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취업을 꿈꾸는 유학생도 호모인턴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김모 씨(26)는 금융권이나 컨설팅업체 취업을 꿈꿨다. 그 역시 국내 제약회사 등 네 곳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김 씨는 “제약회사는 업무 연관성이 낮지만 외국계 기업이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 ‘인턴 낭인’과 ‘인턴 삼수생’까지 등장

 하지만 호모인턴스를 부러워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모 씨(27)는 같은 회사에 세 차례나 지원한 ‘인턴 삼수생’이다. 그는 “심하게 말하면 서울대 합격처럼 힘든 과정을 거쳐 겨우 대기업 인턴십을 따냈다”며 “동기들은 모두 인턴 경력이 많은 ‘실력자’들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고시 낭인(浪人)’처럼 ‘인턴 낭인’도 있다. 삼수는커녕 네 번, 다섯 번을 도전해도 번번이 인턴 채용에 떨어진 것이다. 지방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모 씨(28)는 “대기업과 금융권의 인턴십에 지원했다가 10번이나 떨어졌다”며 “취업은 못 할지언정 인턴십 경력이 화려한 대학생들이 차라리 부러울 뿐”이라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국내 주요 기업의 인턴십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대학생도 많다. 해외 인턴 프로그램은 항공료와 체재비를 포함해 500만 원이 넘게 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비로 충당한다. 월급이 없는 무급 인턴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대학가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인턴 준비를 위한 스터디 모임을 쉽게 볼 수 있다.


○ 취업난에 과외시장도 유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상위권대 학생 중심의 과외시장도 유탄을 맞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과외비가 심한 경우 반 토막 났다. 연세대 졸업생 박모 씨(28·여)는 “3년 전에는 서울 강남에서 중학생 한 명을 한 달에 16시간 가르치고 60만 원을 받았다”며 “현재는 절반 수준인 35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학부모 정모 씨(45)는 “명문대 과외선생을 찾는 일이 이제 그리 어렵지 않다”며 “성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줬는데 새로 과외를 시작하면서 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방 과외시장으로 진출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원격화상시스템을 이용해 지방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하는 것이다. 과외비는 한 달 20만 원 안팎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청년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며 “기업과 정부는 인턴십에서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면서 대학생들이 다양한 직무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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