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해수탕 짜장면… 와∼ 대한민국 1호 여기 다 있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7-01-14 03:00 수정 2017-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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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아이들 손잡고 떠나는 인천 역사기행

《등잔 밑은 정말로 어둡다. 등잔대에 가리니 당연하다. 여행도 비슷하다. 주변, 가까이에도 찾을 곳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 곳부터 떠올린다. 가본 적 없고 잘 몰라서 그럴 텐데 가깝다고 다 가봤을까? 그렇지는 않다. 인천이 그렇다. 영호남엔 해당되지 않겠지만 수도권 주민에게 결코 여행지로 다가오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 주민에겐 한동네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천만큼 매력이 넘치는 여행지도 없다. 바다와 섬에 항구와 등대가 있고 유람선까지 탈 수 있는 국제항이다. 또 이국적인 분위기의 차이나타운에다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초현대식 고층빌딩의 송도국제도시까지 있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면 한 시간 만에 호젓한 섬에서 산책도 하고, 수인선철도로 찾는 오이도와 소래포구에선 신선한 해물도 맛본다.》
 

차이나타운의 이 계단을 올라 저 위 선린문을 통과하면 응봉산 정상에 조성된 자유공원에 닿는다.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그뿐이 아니다. 인천은 수많은 대한민국 ‘최초(最初)’와 ‘최고(最古)’를 탄생시킨 격동의 근대화 현장이다. 축구(1882년) 야구(1899년)가 처음으로 소개된 곳도, 철도(1899년·경인철도)와 호텔(1888년·대불호텔), 항만(1918년·수문식 독)과 등대(팔미도)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도 인천이다. 배경은 1883년에 이뤄진 개항. 최초의 외국인 기업(1883∼1884년·영국 이화양행·독일 세한양행·미국 타운센트상회), 식민지열강 국민의 치외법권지대 조계(租界·1883년)와 서양공원(1888년·만국공원), 기상관측소(1905년), 지방우체국(1884년), 해수탕(1918년·월미도조탕)과 해수풀을 갖춘 임해유원지(1918년·월미도), 공립박물관(인천시립)은 그때 인천에서 선보인 대한민국 1호다. 짜장면(개항 직후)과 최초 하와이이민자(1902년)와 더불어. 인하대의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에서 왔다. 

 그 최초와 최고의 1번지 인천으로 안내한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아이들과 한나절 걷고 이야기하며 나들이삼아 다녀오기에 딱 좋은 코스다.

 금요일 오전 9시 경인선철도 인천역. 역사는 한산했다. 승객 대다수가 한 정거장 전 동인천역에서 내린 때문이다. 인천의 상업중심은 인천역 부근이 아니다. 신포동을 낀 동인천역 주변이다. 플랫폼에선 ‘수인선(수원역∼인천역·40.2km)’으로 갈아타는 곳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직은 오이도역(전철 안산선 종점)을 지나 한대앞역까지만 연결됐다. 최종 수원역(19.9km)까지는 내년 말에나 연결될 전망이다.

 인천역은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의 종착이자 시발점. ‘한국철도 탄생역’이란 역 광장의 조형물이 그걸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당시 이름은 인천역이 아니다. ‘제물포역’이다. 그런데 경인선철도엔 제물포역이 따로 있다. 뭔가 어긋난 느낌이다. 역을 나오면 광장인데 오전인데도 짜장 볶는 냄새가 났다. 발원지는 길 건너 언덕배기, 바다를 향해 잦아드는 응봉산 중턱 자락의 차이나타운이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이 있는 그 산이다. 

 인천시립박물관에 가면 1883년 개항 당시 인천 지형을 보여주는 대형 모형이 있다. 그걸 보면 격세지감이 쓰나미급으로 밀려든다. 현재와 너무도 달라서다. 상전벽해의 그 변화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당시 인천에 평지라고는 이 인천역과 철도 터 외에 거의 없었다고. 그러면 현재의 평지는? 지난 한 세기간 쉼 없이 매립한 결과다. 거대한 송도신도시 터마저도. 그렇다면 퍼부은 흙의 출처는 또 어딜까. 야구장이 있는 문학산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된 인천 최초의 인류거주지다.

 개항기 제물포는 한국의 관문이었다. 수도와 가장 가까이 자리 잡은 수운(水運)의 요충항구여서다. 당시 제물포에서 서울까지는 걸어서 열두 시간, 뱃길로는 마포나루까지 여덟 시간. 그게 경인선철도 개통 후엔 노량진까지 1시간 40분으로 좁혀졌다. 그러니 유럽과 미국의 무역회사가 탐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문물은 이들의 상선으로 나가사키(일본)와 상하이(중국)를 경유해 인천에 수송됐고 인천과 서울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런 인천은 그때부터 국제비즈니스허브였다. 그리고 중심은 한국법의 저촉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배타적인 권리행사가 보장되는 외국인 조계(租界). 차이나타운과 중구청이 있는 응봉산 남쪽(관동 중앙동)에 조성됐다. 조계의 흔적은 분명하다. 한중문화관 부근 청국(중국)과 일본 조계 경계선의 비석이다. 산중턱까지 곧장 뻗은 언덕길 중턱의 계단에 있다. 비석 서쪽은 청국 조계, 동쪽은 일본 조계다. 영국 독일 러시아 미국 등 서구열강은 ‘각국 조계’를 청일 조계 주변 응봉산 지역에서 설정했다. 개항기 인천항을 드나들던 외국선원 사이에 제물포의 랜드마크로 인식됐던 존스턴 별장과 세한양행 기숙사(유럽 스타일의 대형주택)가 응봉산 정상에 지어진 건 그 때문이다. 모두 인천상륙작전 때 파괴돼 아쉽기만 하다.

 발걸음을 옮겨 일본 조계지역으로 들어섰다. 그중 신포로 23번 길은 개항기 무역의 중추였던 일본은행이 몰려 있던 금융가. 화강암으로 고급스레 지은 건물 몇 채는 여전히 건재하다. 경복궁 앞 옛 조선총독부건물과 모양새가 비슷해 금방 알아본다. 그중 르네상스식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1899년 준공)은 ‘인천개항박물관’, 제18은행 인천지점(1903년 준공)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 양식의 제58은행은 중구외식업지부가 사용 중. 응봉산 정상 아래 제물포구락부와 시내의 인천우체국, 인천 부청사, 대한성공회 내동교회와 한국천주교 답동성당도 개화기 근대건축물이다.  

 그 응봉산 정상의 자유공원에 오르면 인천내항과 월미도가 조망된다. 개항기에 월미도는 인기 만점의 국내 최고 유원지였다. 애초엔 배로 드나들던 섬. 하지만 일제가 1918년에 수탈물자를 원활히 부리기 위해 늘 배가 정박할 수 있게 수위를 유지하는 수문식 독(Dock)을 만들 당시 연륙도가 됐다. 제물포에서부터 쌓아간 2차로 둑길(1km)로 연결되면서다. 일제는 이 섬을 풍치지구로 고시하고 둘레 4km 섬에 벚꽃나무를 심었다. 이후 끓인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조탕(潮湯)과 해수풀(야외)이 들어서며 유원지가 됐고 1935년엔 빈(濱)호텔(1935년)도 개업했다. 벚꽃이 화사하게 섬을 장식하는 봄이면 꽃놀이열차까지 경인선철도로 운행됐다. 그때 인기는 명사십리 원산(송도원)과 부산(해운대)을 능가했을 정도. 지금 인천에 성업 중인 해수탕, 월미도의 유원지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천역을 출발한 시티투어버스는 인천내항을 관통한 뒤 송도국제도시로 향한다. 이곳은 송도 앞바다를 메워 조성한 인공 섬. 국제도시를 지향하며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해 만들어가는 중이라 여전히 빈 공간이 많고 공사 중인 건물이 많다.

 그럼에도 도시는 대략 모양새를 갖춘 형국이다. 신도시에서 첫 정거장은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든 G타워 앞. 29층 야외전망대(무료)에 오르니 일대가 훤하다. 그 중심은 1.8km길이 운하(해수)를 테마로 꾸민 센트럴파크 공원. 전망대를 내려와서는 그 운하갓길을 따라 끝까지 산책했다. 갈대도 심어졌고 트라이볼 같은 조형물도 있어 산책코스론 그만이었다.

 다음 정거장은 바닷가에 조성된 널찍한 휴식 공간 솔찬공원. 인천대교 공사 당시 상판 등을 만들던 장소다. 쌍둥이 꼬마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새우깡을 던지자 바다에선 갈매기가, 육지에선 비둘기가 몰려든다. 탁 트인 바다 뒤편으로 등대섬 팔미도, 그 오른편으로 무의도와 왼편으로 제부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송도국제신도시는 인천투어 중에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특별한 곳이다.  

인천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1912년 당시의 우체부와 우체통 조형물. 개항장 거리에 있다.
 교통편: 인천 원도심 투어의 중심은 인천역(경인선·수인선철도 종착점). 전철로 찾기 좋다. 인천지역 하루여행이라면 시티투어버스(어른 5000원·월요일 쉼)를 권한다. 인천역 앞에 부스가 있고 거기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정거장(총 11개)엔 버스 도착 시간이 쓰여 있으니 그걸 따른다. ‘송도∼월미·개항장 순환형’ 코스는 인천역∼하버파크호텔∼G타워∼솔찬공원∼송도테크노파크∼송도컨벤시아∼센트럴파크∼인천상륙작전기념관∼개항장거리∼월미공원∼월미문화거리∼인천역. 원도심과 송도신도시, 월미도를 두루 아우른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인천내항도 본다. www.travelicn.or.kr 032-772-4000


 박물관: ▽통합입장권 아래 5개 박물관(연중무휴) 관람. △인천개항박물관: 032-760-7508 www.icjgss.or.kr/open_port/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및 기획전시실: 032-760-7549 www.icjgss.or.kr/architecture △한중문화관: 화교역사 전시. △짜장면박물관: 032-773-9812 www.icjgss.or.kr/jajangmyeon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월요일 쉼. 입장 무료. 연수구 옥련동 525. 032-832-0915 인천시립박물관(무료) 바로 옆.


 인천관광: ▽안내소 △송도: 032-882-3031 △월미도: 032-765-4169 △인천역: 032-777-1330 ▽홈페이지: https://itour.incheon.go.kr/
 


▼기름에 튀기듯 구워 바삭한 삼치구이 일품▼
 
6·25때부터 먹던 그 맛 ‘삼치거리’

 
 소성주는 인천 막걸리의 대표 선수. 그걸 맛보자면 삼치거리가 제격이다. 인천 중구 우현로 67번길(전동) 인천학생문화회관 앞에 줄지은 식당 17곳의 먹자골목이다. 그중 ‘인하의 집’에 들렀다. 상호는 삼치구이 원조 식당의 것. 6·25전쟁 중 양조장 부근에서 밥장사를 하던 이 집 부부가 끼니때면 막걸리를 사들고 와 안주도 없이 들이켜던 날품 일꾼을 위해 어부들이 버리다시피 했던 뉴질랜드산 바라쿠다(농어목 꼬치고깃과 생선)를 기름에 튀겨 냈고 그게 오늘날 이 골목의 유래가 됐다. 부부는 작고한 지 오래. 삼치(6000원)는 기름을 충분히 두른 프라이팬에서 튀기듯 구워내 바삭한 것이 특징(사진). 개중엔 ‘몽둥이 삼치’라고 불리는 바라쿠다를 내는 곳도 있다. 반만 양념을 뿌린 ‘반반참치’도 인기. 영업은 오후 2시∼오전 2시, 032-779-8384. 옆 ‘양산박 삼치’는 혼술 손님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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