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는 병 걸려도 학교 가는 한국… 獨선 등교시킨 부모 벌금

김호경 기자 , 서영아 특파원 , 동정민 특파원

입력 2016-12-26 03:00 수정 2016-1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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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불감증]학교-어린이집, 감염 온상으로

 서울 강남지역 A초등학교에 1학년 딸을 보내는 이모 씨(39)는 최근 아이가 A형 인플루엔자(독감) 확진 판정을 받아 분통을 터뜨렸다. 이달 중순 이 씨 딸의 옆 반 아이들 26명 중 20여 명이 감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에 학교에 우려를 전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학교 측은 “독감이 유행하니 개인 청결과 손 씻기를 철저히 해 달라”는 알림장을 보냈을 뿐이다.

 최근 독감이 퍼지면서 25일까지 서울에서만 초등학교 8곳이 조기 방학에 들어갔다. 감염병은 확산하고 있지만 관련 교육을 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 당국의 대응 매뉴얼은 부실하고, 공공장소 위생수칙 준수 수준도 많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공공을 위한 개인 위생관리

 미국 초중고교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면 필요한 예방접종을 완료했다는 병원 기록을 정해진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교하지 못한다. 방과 후 스포츠 활동을 할 때도 별도의 건강검진 기록을 사전에 내야 한다.

 버지니아 주의 한 공립 중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P 양(14)은 “학교 식당에서 먹은 점심식사가 체했는지 속이 메스꺼워 조금 구토를 했는데 선생님이 간호실로 연락하더니 나를 바로 귀가 조치시켰다”고 말했다. P 양은 “속이 괜찮아졌고 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규정상 학교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만 반복해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뉴욕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한 소아과 전문의 Y 씨(재미동포)는 “학생이 고열이 있는 등 전염병 증세가 의심될 경우엔 ‘다른 학생에게 추가 피해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완치됐다’는 전문의의 소견서가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학교 등 집단시설에서 독감 환자가 발생하면 그 규모에 따라 일시적인 학급폐쇄, 학년폐쇄, 휴교가 단행된다. 일례로 11월 말 독감 주의보를 내린 오카야마(岡山) 현은 11월 30일까지 2곳이 휴교하고 7곳이 학년폐쇄, 3곳이 학급폐쇄를 단행했다. 야마나시(山梨) 현에서는 187개의 학교나 보육원, 유치원이 폐쇄 조치됐다.

 고령자 입소시설에서는 독감 유행기에는 독방을 마련해둘 것을 권고한다. 환자가 발생하면 가능한 한 독방에서 요양시킨다. 방이 모자랄 경우 환자끼리 같은 방을 쓰게 하더라도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환자 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 감염병 자녀 등교시키면 벌금 3100만 원

 영국은 학교마다 구체적인 감염병 관리 지침을 내려보낸다. 영국에서는 △피부 감염병 15개 △설사 구토 감염병 3개 △호흡기 감염병 3개 △기타 13개 감염병에 대해 격리 기간과 치료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관리하고 있다.

 긴급하게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유럽은 유럽연합(EU) 질병관리통제센터(ECDC) 차원의 관리에 들어간다. 2014년 ECDC에 따르면 전체 감염병 사례 110만 건 중 성병인 클라미디아와 임질, 설사를 동반하는 캄필로박터와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 결핵 등 5개 감염균이 85만 건으로 77%를 차지했다.

 자녀가 감염병에 걸린 것을 알고도 등교시킨 ‘양심 불량’ 학부모에게 벌금 2만5000유로(약 3150만 원)를 부과하도록 한 독일의 규정도 눈에 띈다. 호주는 학교 내에 감염병 의심 학생을 위한 별도의 격리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고, 싱가포르는 교사와 교직원이 정기적으로 감염병 연수를 받도록 한다.


○ “아파도 학교에 가라”

 하지만 한국에선 어떤 상황에서든 자녀의 등교를 강요하는 학부모의 인식도 문제로 꼽힌다. 의심 증상이 발생하면 자발적으로 등교를 중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석 기록이 대학 입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나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지키지 않는 사례가 잦기 때문이다. 한 가정과의원 원장은 “아이가 독감으로 의심돼 검사를 권해도 부모가 ‘약만 처방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인천의 한 중학교에선 학생 1명이 결핵 감염 사실을 4개월이나 모른 채 등교를 계속했다가 같은 학교 학생 167명에게 결핵균을 옮기는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이후 일선 학교에선 일시적으로 감염병 예방 교육을 늘렸지만 이 같은 ‘반짝’ 학습은 학생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식사 전 손 씻기’를 실천하는 중고교생은 2009년 56.5%에서 지난해 47.4%로 오히려 줄었다.

 감염병 매뉴얼이 불명확하고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당시 제작된 ‘감염병 위기대응 매뉴얼’은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내용으로만 구성돼 학교의 특성이나 여건이 반영돼 있지 않고, 평상시 활용되는 ‘예방관리 매뉴얼’은 감염병의 특성과 예방 수칙만 나열돼 있어 수학여행, 대학수학능력시험, 방학 등 상황에 따라 적용하기가 어렵다. 교육부는 2월 ‘학생 감염병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학생들의 등교중지 기준을 세분해 9월부터 조기경보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으로 연기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조기경보 체계를 도입하려면 지역별, 학교별 감염병 환자를 신속히 파악해야 하는데 자료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 도쿄=서영아 / 파리=동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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