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48>실타래를 감고 푸는 시간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입력 2016-12-06 03:00 수정 2016-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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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였습니다. 평생토록 여성을 그렸지요. 특히 고전과 문학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즐겨 다루었습니다. 여성을 정숙과 타락 두 개의 범주로 나눠 예술적 소재로 취했던 앞선 시대 미술 전통을 계승했어요.

 화가는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신화와 전설을 배웠고, 고대와 중세에 푹 빠져 지냈어요. 당시 미술관과 박물관은 미술가 지망생들에게 미술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미술의 고전들을 보며 예술 형식과 주제를 익혔으니까요. 화가는 유독 모험과 사랑, 마법과 변신 이야기를 낭만적이고, 신비롭게 표현한 소장품에 이끌렸습니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은 화가 말년 그림입니다. 색상이 강렬한 의상과 붉은 뺨이 조화로운 특유의 여성 이미지가 정착된 시기였지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등장인물이 그림의 주인공입니다. 여인 주위로 구혼자들이 가득하군요. 향기로운 꽃을 건네는 이도 있고,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소란에 익숙한 듯 여인은 바느질에 몰두 중입니다.

 난처한 일입니다. 이미 결혼한 여인에게 청혼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트로이 전쟁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오디세우스에게 있었거든요. 배우자 없이 지낸 지 10년째가 되자 청혼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구혼자들의 시달림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졌습니다. 곧 남편감을 정하겠다고 선언했지요. 단, 여인은 시아버지 수의 만들기가 끝난 다음이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옷 짓기는 시간을 벌 핑계였어요. 그림은 20년 만에 부부가 극적 상봉을 하기 이전 상황을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림 속 여인처럼 실타래를 감았다 풀었다 하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이들이 떳떳한 명분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쩨쩨한 수단을 강구하고자 실 뭉치를 만지작거리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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