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허허벌판을 황금의 땅으로… 도시를 바꾸는 ‘미다스의 손’

김재영 기자 , 손가인 기자 , 천호성기자

입력 2016-12-03 03:00:00 수정 2016-12-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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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사업자 ‘디벨로퍼’의 세계

엠디엠이 시행해 2010년 준공한 주상복합아파트 대우월드마크센텀(왼쪽 빌딩들) 주변 전경. 부산 센텀시티 안의 이 아파트 단지는 당시 부산지역 시세의 두 배에 가까운 분양가에도 ‘완판’에 성공했다. 디벨로퍼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발 사업의 하나로 꼽힌다. 엠디엠 제공
 또 한번 ‘대박 프로젝트’를 따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을 비롯해 세계 20여 개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빌딩을 짓더니 이번엔 성조기에 이름을 새겨 넣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얘기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의 막말과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성공한 ‘부동산 디벨로퍼’로 꽤 알려진 인물이다.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 기획부터 자금 조달, 설계, 시공, 마케팅, 분양,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휘자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직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경험이 정치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근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동산 디벨로퍼를 바라보는 국내의 인식은 여전히 ‘집 장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산 엘시티 사업 비리로 구속된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처럼 ‘사기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도 많다. 디벨로퍼라는 직종의 연륜이 길지 않은 데서 비롯된 오해도 있지만 그동안 숱하게 많은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원죄도 작용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장인이 될 수 있다면 디벨로퍼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문주현 엠디엠·한국자산신탁 회장,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박진순 한림건축 대표 등 3인을 만나 대한민국에서 디벨로퍼가 가야 할 길을 들어 봤다.


“디벨로퍼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이영복, 디벨로퍼 아냐”

 문 회장은 부동산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1998년 자본금 5000만 원만 가지고 33m²짜리 원룸에서 분양 대행 사업을 시작해 디벨로퍼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이 됐다. 2007년 분양한 부산 센텀시티 주상복합아파트 ‘월드마크센텀’은 업계의 성공 신화다.

 문 회장은 디벨로퍼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했다. 기획부터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과정을 조율한다는 의미에서다. “시공이 하드웨어라면 디벨로퍼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땅의 가치를 높이는 소프트웨어에 가깝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대표는 대기업 출신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다양한 유형의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시행에 머물지 않고 개발 컨설팅이나 사업 관리(PM)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고속철도(KTX) 오송역세권 개발처럼 건물을 만드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지역 개발로 영역을 확대하는 중이다.

 그는 디벨로퍼를 일종의 벤처 사업가로 본다. 미래 유망 분야를 미리 예견하고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적어도 3∼5년 정도의 미래를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런 과정에는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건축사 출신인 박 대표는 10여 년간 수십 개의 부동산 개발 사업 설계를 맡아 오다가 시행으로 발을 넓힌 케이스다. 그는 디벨로퍼를 ‘랜드 마케터’로 정의한다. 정적(靜的)인 땅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사업 환경과 시대적 상황과 경제·사회적 변화를 파악한 뒤 남들보다 반 발 앞서 공간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인·허가를 쉽게 받기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하는 사람은 디벨로퍼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문 회장은 “디벨로퍼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개발이 잘못되면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가서다. 박 대표도 “디벨로퍼들 스스로 불법이나 한탕주의의 유혹에 선을 그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주목… 도심 재생, 역세권 유망”

 디벨로퍼의 최고 덕목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동산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황무지를 황금의 땅으로 바꿔 내는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문 회장은 이를 위해 “절대 땅을 비싸게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해 저평가된 유휴지나 미분양된 땅을 사들인다고도 말했다. 과거 몇 차례 사업이 무산된 경기 수원시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남쪽의 일반상업용지를 매입한 게 그의 주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 땅이 호수를 끼고 있는 데다 생활환경이 좋고 복합 개발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문 회장은 “남들이 보지 못한 미래 가치를 읽기 위해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동선 등을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에스컬레이터를 외부에서 상가 3층까지 바로 연결해 접근성(위례신도시 중앙타워)을 높였고, 주부나 1, 2인 가구의 수요가 높은 호텔식 식사 제공 서비스(광교 더샵 레이크파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반영했다.

 김 대표도 입주 시점의 미래 가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강조했다. 그는 “소득이 올라갈수록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도심 역세권이나 광역 교통망을 갖춘 곳의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라며 “수도권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을 눈여겨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전철역까지 10분 이내에, 도심까지 40분 이내에 진입할 수 있는 곳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며 교통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재정비 촉진 지구에서 해제돼 소규모 블록으로 할 수 있는 토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디벨로퍼들은 앞으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줄어들면 낙후된 기존 도심을 되살리는 도시 재생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 회장은 “싱가포르나 홍콩, 일본 등은 도시 재생을 통해 도시 자체를 관광 자원으로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디벨로퍼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도시를 대표하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용적률, 층수 제한 등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김 대표도 “도시 재생을 통해 부동산의 활용 가치를 높이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라며 “부동산 개발은 일종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괴짜’ 아닌 ‘디벨로퍼’로 봐야

 이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디벨로퍼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괴짜, 기행 등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이미지만 보고 접근하면 그의 진면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문 회장은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의 모든 과정에 개입해 균형 감각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는 전략가”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는 정치적 쇼맨십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두고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 논리로 흥정하는 모습을 취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박 대표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트럼프의 사업이 2000여 개에 이른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국제관계에서 오히려 개방적인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1990년대 후반 대우건설에서 ‘트럼프월드’ 프로젝트 팀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트럼프 일가를 매우 치밀한 사업가로 기억했다. 그는 “계약서만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꼼꼼했고 마케팅, 가격 결정, 사업 콘셉트 잡기 등에서 교과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디벨로퍼에겐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가, 축구 감독 같은 팀 빌더(Team Builder), 미래 위험을 예측하는 리스크 관리자로서의 특성이 모두 있다”라며 “이런 면이 트럼프 당선인의 국정 운영에도 반영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손가인·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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