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쪽지예산’ 없앤다더니… 올해도 증액 심사 비공개

이상훈기자 , 홍수영기자

입력 2016-11-26 03:00 수정 2016-1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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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D-6]
10월 “청탁금지법 따라 투명심사”… 간사 협의서 번복 ‘밀실심사’ 재연
상임위별 증액 요청 총 40조 달해 지역구 선심예산 나눠먹기 조짐


 
내년도 예산안 법정시한(12월 2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쟁점 사안을 두고 제대로 된 협상 한 번 갖지 않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이 방치되는 등 국정 공백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조 원 단위 자금이 투입될 누리과정(3∼5세 무상교육) 예산이나 법인세 인상안처럼 국가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을 정부 여당과 야당이 ‘주고받기식’ 흥정거리로 삼는 구태마저 보이고 있다. 탄핵 정국과 맞물려 예산안 및 세법 개정안이 졸속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누리과정-법인세 인상’ 맞교환하자는 야당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예상되는 핵심적 쟁점 사항은 야권이 요구하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소득세 및 법인세의 인상 여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5일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대해 심의했지만 법인·소득세 인상 논의는 뒤로 미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여야 견해차가 크지 않은 법안 위주로 심사를 진행하느라 법인세 및 소득세에 대해서는 의견만 공유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여야 3당 정책위의장이 별도 회동을 통해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견 차이가 커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예산안 법정시한을 6일 남겨둔 현재까지 누리과정에 대해 이렇다 할 접점도 찾지 못했다.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해야 예산 갈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당은 내년에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여야 간 타협안도 흘러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100% 부담하면 법인세, 소득세 인상을 보류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윤 의장은 또 “예산 갈등이 최소한 수년간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중재안을 찾아보겠다”고 언급하며 정부와 여당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야당이 예산안을 놓고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법인세 인상안을 국회 본회의에 바로 상정하는 예산부수법안 지정권한(국회의장 고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누리과정 증액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인세 인상안을 관철시키면 그만이고, 누리과정 증액을 받아낸다면 “복지예산을 늘렸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 예산안에 손놓은 정부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줄다리기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무기력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세율을 올릴 때가 아니다”라는 기존 견해만 되풀이했을 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두고 내홍에 빠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원내지도부에 일임해 주면 그때그때 대응하겠다”(김광림 정책위의장)며 예산안 의총 논의를 사실상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누리과정 예산을 여야 3당 정책위의장단과 경제·사회부총리가 참여하는 ‘여야정 5자 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지금까지 가동조차 안 되고 있다.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 부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등에 휘말려 내부 분위기 추스르기에도 벅찬 모습이다. 기재부는 현직 차관이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면세점 선정 특혜 의혹으로 압수수색까지 당해 충격에 휩싸였다.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오류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부처 내부에서 누리과정에 힘을 쏟을 여력이 부족하다는 탄식마저 나온다.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가 불투명하고 논의마저 안갯속에 빠지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구 의원들이 제기한 4000여 건, 40조 원 규모의 예산 증액 요구안은 올해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비공개 심사에서 ‘나눠 먹기식’으로 슬그머니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법정시한이 정해진 예산안 처리조차 제때 될지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규제프리존법 등 경제 활성화 법안과 4대 구조개혁 법안 등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경제 상황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내년까지 2%대 성장에 머물러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2%대 저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데, 한국만 법인세를 올려 기업 부담을 늘리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분석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기업 채산성과 국가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 인상이 변변한 토론도 없이 졸속 처리돼선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여야가 책임감 있는 자세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 /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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