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여지

황광해 음식평론가

입력 2016-11-23 03:00 수정 2016-11-23 16:3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황광해 음식평론가
 선조 40년(1607년) 4월, 비변사의 보고에 여지(4枝)가 등장한다. ‘여지가 당나라를 기울게 하였으니 미미한 물건 하나가 때로는 나라를 기울게 한다. 사소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으니 백성이 병든다. 세금이 증가하면 백성이 흩어지고 도적이 된다. 풀 한 포기가 나라를 망친다는 것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여지는 중국 남방에서 생산되는 과일 리치다.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가 리치를 좋아했다. 리치를 운반하기 위하여 현종은 운하를 뚫었고 무리한 운하 건설이 국가 재정 파탄으로 이어졌다고 알려졌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도 여지를 좋아했다. 여지는 류큐(琉球·오키나와) 등 남방의 공물로 조선 조정에 공급됐다. 양이 적으니 그저 맛을 볼 정도였다. 연산군의 ‘여지 사랑’은 적극적이었다. 연산군 3년(1497년) 2월, 명나라로 가는 사신에게 “여지를 사 오라”라고 명령을 내린다. 공식 사절단에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연산군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풀 한 포기’에 불과한 과일 여지는 연산군 2년(1496년) 9월에 이미 큰 문제를 일으켰다. 대간(臺諫)들이 몇몇 정치적인 문제와 더불어 ‘여지 수입 금지’를 상소한다. 연산군은 듣지 않는다. 대간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오늘날의 검찰, 감사원, 민정수석비서관실을 합친 기관이다. 대간들은 “명나라에 갈 때마다 여지를 사 옵니다. 여지는 기호품에 불과하니 수입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장한다. 연산군은 요지부동이다. “여지는 기호품이라고 하나 대단히 진귀한 새나 짐승이 아니니 무방하다.” 대간들이 물러서지 않으니 연산군의 대답이 옹색하다. “그럼 여지는 사들이지 말라. 대신 다른 상소는 들어주지 않겠다.” 군주가 엉뚱한 고집을 피우면 신하는 사직할 수밖에 없다. 대간들은 사직한다.

 연산군 3년, 일개 지방 수령인 성천부사 민효증이 ‘임금이 실천해야 할 10가지 일’이라는 제목으로 상소를 올린다. 그중 일곱 번째에 여지가 등장한다. “재물은 낭비하면 결국 백성을 해롭게 합니다. 예전의 밝은 임금은 여지가 생각나도 백성에게 미칠 화를 생각해서 사들이지 않았습니다. 전하도 조금도 소홀함이 없게 하소서.” 연산군은 신하들의 말을 귀에 담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연산군 4년(1498년) 8월에는 승정원에 여지 한 덩어리를 내리고 승지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한다.

 연산군 5년(1499년) 1월, 사간원의 정언(정6품) 윤은보가 원로대신 유자광을 탄핵한다. “당나라 현종이 무리하게 여지를 구했을 때, 정승 이임보가 방관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여 그의 살을 씹고자 했으며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의 죄를 묻습니다. 지금 유자광은 임금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민간에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유자광의 죄가 이임보의 죄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그를 국문해야 합니다.”

 국왕의 사치 물품, 특히 여지의 수입은 국가 체면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연산군 8년(1502년) 7월, 파평부원군 윤필상, 영의정 한치형 등이 간언한다. “지금 명나라에서 여지 등을 사 옵니다. 임금이 드시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공작 깃, 큰 산호, 백옥 등은 그야말로 사치품입니다. 통사가 이런 물품을 중국에서 사들이면 명나라 조정에서 보고 듣게 되는데 과연 그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신하들이 국가 품위를 걱정하지만 연산군은 요지부동이다.

 연산군 10년(1504년) 윤 4월, “지난번 사온 여지 등이 좋지 못하니 성절사 편에 좋은 것으로 사 오라”라고 명한다. 연산군 12년(1506년) 4월에는, “맛이 단 여지는 연경에서 사들이고 후추는 왜인들에게서 사들이라”라고 명한다. 그해 9월 2일, 혼군(昏君) 연산은 폐위된다. 그의 ‘여지 사랑’은 강화 교동도로 쫓겨난 후에야 끝난다.

 중종 1년(1506년), 우부승지 이우가 아뢴다. “여지는 폐주(연산군)가 좋아해서 지금까지 사 왔으나 앞으로 이같이 먼 지방의 색다른 물품은 사들이지 않겠습니다.” 중종은 “그리하라”고 답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