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권순활]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최순실 계기로 기업서 돈 뜯는 ‘대통령 관심사항’ 준조세 없애야”

권순활논설위원

입력 2016-11-21 03:00 수정 2016-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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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노태우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청와대 비서실과 행정부에서 두루 일한 ‘국제통’이다. 말이 빠른 만큼 머리 회전도 빠른 편. 패러글라이딩과 스킨스쿠버를 즐기면서 하늘과 바닷속에서도 한국경제를 꿰뚫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다음 날인 10일 ‘미국 대선과 한국경제·외교안보에 대한 시사점’을 주제로 발 빠르게 정책좌담회를 마련한 사람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67)이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 우리 입장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춘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방위비 부담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왔다. 2014년 3월 한경연 원장에 취임한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재정경제부 2차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이명박 정부 때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현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 네 명의 대통령 재임 시절 모두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경연 원장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권 원장은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미래, ‘최순실 사태’에 대해 심각한 위기감을 토로했다. 》
 
권순활 논설위원

  ―대기업들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出捐)과 관련해 정경유착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대통령이 기업에서 정치자금을 받아 챙기는 전통적 의미의 정경유착이라고 보진 않는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각종 준조세가 없어지지 않는 잘못된 풍토가 문제다. 솔직히 기업이 돈 내고 싶어 냈겠는가. 지금 정부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관심사항이라는데 기업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통부담금이나 환경부담금 같은 법적 부담금 외의 준조세는 없애야 한다. 그래야 기업 경쟁력도 높아진다.”


 ―최순실 사태 같은 일이 왜 벌어졌다고 보는가.


 “기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불행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부모가 모두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8년간의 은둔생활 동안 사람도 안 만났다. 그때 도와준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너무 기대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는 문제가 없었나.

 “박 대통령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5년간 퍼스트레이디로 국정에 관여했는데 그때 사고방식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든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만 해도 두세 달에 한 번씩 기자회견도 하고 참모들과 자주 토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부분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서만 나오고 국무회의에서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애국심이나 안보의식, 국가에 대해 헌신할 각오 같은 것은 박 대통령의 큰 강점이라고 본다. 다만 어떻게 정부를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국민과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 같은 부분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것 같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문제점은 뭔가.


 “후배 공직자 중에 현 정부 국무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은데 어떠냐고 물으면 ‘말을 못 하고 독대를 못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수석비서관, 비서관이나 비서실장, 장관들을 토론시키고 거기서 골라야 하는데 여자분이라서 그런지 저녁 이후에 아무도 안 만나고 독대를 싫어하고 전화나 문서만 갖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문제를 키운 것 같다.”

 권 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기획비서관 및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소개했다.

 “2004년 7월 노 대통령에게 ‘아일랜드가 영국과 철천지원수인데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면서 유럽의 변방에서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우리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건의했다가 ‘과거가 바로 서야 한다’며 박살이 날 정도로 야단맞았다.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노 대통령은 코드와 생각이 다르지만 토론을 해서 아랫사람 이야기를 일단 들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어떤 리더도 전체를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참모를 뽑아야 하고 참모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게 한 뒤 선택하는 것이 리더의 의무다.”


임종룡 경제부총리 인준 서두르라


 ―미국 트럼프 시대가 열린다.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전 세계가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출에 의존해 빠르게 성장했고 대외무역 의존도가 80%나 되는 한국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 여건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올리거나 철수하겠다고 하면 외교 국방의 불안은 물론이고 자금 부담도 많아진다. 물론 트럼프의 기본 마인드가 비즈니스맨이니까 법인세율 대폭 인하나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해 미국 경제는 좋아질 수 있다. 실제로 헤리티지 재단을 만든 에드윈 퓰너는 ‘트럼프가 대선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 같은 이야기를 했지 실제 대통령이 되면 많이 다를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노믹스는 양면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한국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클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세계경제는 좋았다. 위기가 터진 뒤 은행 구조조정에 150조 원의 공적 자금을 넣을 정도로 국가 재정도 건전했다. 반면 지금은 금융위기 이후 8년이나 세계경제가 헤매고 있다. 외국 사람을 만나도 보호주의나 고립주의를 걱정한다. 기업 실적은 추락하고 청년 실업률은 최고치다. 재정 여건도 악화됐는데 최순실 사건으로 통치 컨트롤 시스템이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라는 점도 불안을 키운다.”


 ―최순실 사태에 따른 구체적 악영향은….


 “국정 컨트롤타워 공백 상태에서 북한이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도 있다. 헌법상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바로 내려간다. 총리가 역할을 못 한다. 경제적으로도 내년 업무계획이나 수출계획을 세우고 트럼프 시대 대책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런 건 아무것도 못하고 기업인들은 검찰에 불려 다니고 있다. 경제나 외교 안보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난국을 풀거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는….


 “적어도 경제는 마비시키지 말아야 한다. 야당도 경제가 망한 뒤에 집권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제일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정치 이슈는 시간이 걸리니까 좀 더 토의하더라도 일단 경제부총리 인준을 빨리 해서 경제정책에 관한 한 확실하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야당에서 임종룡 경제부총리 후보자 대신 자신들이 추천하는 총리에 맞춰 다른 사람을 내세울 수도 있는데….

 “집권 후반 마무리하는 단계, 특히 지금처럼 위기관리 단계에는 전문가가 와야 한다. 행정을 모르는 교수 같은 외부인이 오면 장관이 뭘 해야 하는지, 관계부처 협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것 트레이닝 하는데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 임 부총리 후보자는 경험도 많고 실력과 추진력을 갖췄다. (전남 보성 출신이어서) 지역적 균형도 맞다. 지금 그만한 적임자를 찾긴 어렵다. 사람을 새로 고르고 하면 혼선만 커진다.”


 ―위기 상황에서 행정을 모르는 사람을 앉히면 위험성이 그만큼 큰가.

 “그렇다. 현 정부가 실패한 일 중에 하나가 사람을 제대로 못 쓴 것이다. 대통령이 전부 수첩 안에 있는 사람만 쓰셨는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저 사람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요직에 기용한 사례가 많다. 결국은 그 사람들이 나가서 배반하고 아니면 실패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나.”


나눠먹기로 망한 南美처럼 갈 건가


 ―한국은 의회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간 데다 대통령 리더십 공백까지 겹쳤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바람이 더 거세질 것 같다.

 “정치는 민주화해야 하지만 경제는 효율화, 국제 경쟁력 강화 쪽으로 가야 한다. 남미 국가들이 경제민주화식 나눠먹기 하다가 결국 망했다. 자본주의를 처음 시작한 영국 같은 나라에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포이즌필 같은 제도가 다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경영권 방어 장치도 없다.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는 흐름에 역행해 법인세를 올리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노동개혁 법안이 표류하고 있다.

 “세계 어떤 나라도 한 단계 발전할 때 노동개혁을 안 한 나라가 없다. GM코리아 사장을 만났더니 30여 개국에 GM 공장이 있는데 한국이 임금이 가장 비싸고 노조가 제일 강하고 노동시장이 가장 경직적이라고 했다. 이런 상태를 계속 놔두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600만 명이 자영업자고 100만 명이 실업자고 1900만 명이 근로자다. 2600만 명 중에서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의 고임금 부자 노조 소속이 140만 명인데 이 사람들이 전혀 합의하지 않기 때문에 18년 동안 노동개혁이 한 발짝도 못 나갔다. 노조가 파업하면 사측은 대체근로나 파견근로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허하는 것이 현행 노동법이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반(反)기업적 노동법은 바꿔야 한다.”


 ―격차 해소에 대한 견해는….

 “객관적으로 보면 격차 문제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서양보다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최순실 사건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이 최 씨의 딸인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아니었을까.”


정치인들은 헌법 안에서 행동해야


 ―한경연은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이어서 대기업의 이해만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저희 연구원의 모토는 자유경쟁, 자유시장, 자유기업이다. 국민들이 잘살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시장경제가 확립돼야 한다. 시장경제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기업만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 전체와 국민, 대한민국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이 빌딩이 없고 로켓이 없고 컴퓨터가 없어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서 10년 이상 헤매고 선진국으로 도약 못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 사람들의 행동 이런 건데 그중 핵심이 법치주의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핵심이 헌법이고 법률인데 지금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을 계속하고 있으니 더 혼란스럽지 않은가. 한 번 법을 무시하면 다음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부를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이라면 많은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는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헌법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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