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폭력 피해 상처를 공개합니다”… SNS서 ‘#폭로’ 확산

권기범기자 , 홍정수기자

입력 2016-11-02 03:00 수정 2016-11-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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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오타쿠 내 성폭력’ 글 계기
문단-대학가-운동권-공연계 등 피해 여성들 집단적 고발로 이어져
반론 무시돼… ‘일방적 목소리’ 우려


 “스무 살 때였습니다. 40대인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성관계를 해봤냐’ ‘네가 성인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널 건드리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하철역으로 갈 때는 계속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았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지난달 26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사진가 J를 고발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이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 가해를 하는 끔찍한 일이 멎길 바란다”는 내용도 남겼다. 마지막에 ‘#사진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게시물에 특정 주제로 된 꼬리표를 달 때 쓰는 기호·글과 사진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특정 주제를 묶어서 볼 수 있는 일종의 검색어 기능을 함)를 덧붙인 이 글은 인터넷에서 329번 공유됐다.

 특정 집단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을 SNS에 공개하고 이를 공유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나무숲’(일종의 익명 게시판) 같은 익명 공간에서 은밀히 피해를 알려온 피해자들이 최근 들어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1일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올라온 글을 검색한 결과 특정 공간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주변에 사는 여배우나 스태프를 불러내 술시중을 들게 했다(#공연계_내_성폭력)’ ‘운동권 내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인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운동권_내_성폭력)’는 글도 있었다.

 피해자들이 ‘#○○○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것은 해당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해시태그는 사용자들이 직접 특정 주제를 제시하고 서로 모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를 활용하면 다른 사용자들도 특정 주제의 글을 더 쉽게 찾고 공유할 수 있다. 지난해 일어난 네팔 대지진 당시 세계의 누리꾼들이 SNS에서 ‘#prayfornepal’(네팔을 위해 기도하자)이라는 해시태그로 슬픔을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달 중순 한 누리꾼이 ‘국내의 오타쿠(마니아)들과 어울리던 중 한 남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이 사용자는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글을 올렸다. 이 글에 용기를 얻은 여성들은 해시태그 앞부분만 바꿔 ‘#공연계_내_성폭력’ ‘#대학_내_성폭력’ ‘#문단_내_성폭력’ 등이 달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최근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박범신 씨 등의 이름도 이 과정에서 오르내렸다.

 다만 SNS의 특성상 이런 문제 제기가 일방적 폭로로 이뤄진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한 소셜네트워크 분석업체 관계자는 “SNS는 첫 글의 확산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론은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며 “또 실명을 명시한 글은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홍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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