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대주주 견제법안 낸 6월에… 엘리엇, 삼성전자 지분 본격 매입”

김창덕기자 , 서동일기자

입력 2016-10-08 03:00 수정 2016-1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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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바람 탄 투기자본]엘리엇 주주제안서 의도 논란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주주제안서를 보낸 숨겨진 목적은 이사회 진입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보낸 ‘주주가치 증대 제안서’를 두고 재계 전문가들이 7일 내린 결론이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제안은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당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올해 6월은 야당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등의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였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된 것까지 엘리엇이 염두에 뒀을 거란 해석도 있다.

○ 이사회 진입을 목표로 한 위장전술

 “저들의 최종 목표는 삼성물산이 아닐 겁니다. 삼성물산이 노루라면 저들이 노리는 건 그 뒤편의 거대한 하마, 즉 삼성전자겠죠.”

 지난해 6월 엘리엇이 옛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 사실을 공식화한 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발언은 1년 4개월 후 현실이 됐다.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간 합병을 반대하다 ‘백기(白旗)’를 들었던 엘리엇이 이번에는 삼성전자를 정조준하며 나타난 것이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 0.62%를 확보해 주주제안권을 갖는 지분 기준(0.5%)을 넘겼다. 주총 안건은 소집 6주 전까지 제안해야 한다는 상법 조항 때문에 엘리엇이 당장 27일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이사 선임을 추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상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은 얘기가 다르다.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위협적이진 않겠지만 엘리엇이 반대할 마음만 먹는다면 동조 세력을 규합해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엘리엇은 또 삼성전자가 자신들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이를 빌미로 전면 공격 태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지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18.15%에 불과하다.

 영국 3대 투자운용사 헨더슨글로벌인베스터스(지분 0.12%)가 이미 지지 선언을 한 가운데 엘리엇이 50%가 넘는 외국인 지분 중 상당수를 우호 세력으로 확보할 경우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부터는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도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투기자본에 날개 달아줄 상법 개정안

 이런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력 약화’와 직접 연결될 수 있어서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각 기업 이사회가 여러 명의 사외이사 중 한 명을 감사위원으로 위촉하던 것을 아예 주주 동의를 받아 따로 뽑자는 것이다. 특히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까지만 제한을 둬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인물이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엘리엇을 포함한 해외 투기자본이 이 틈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집중투표제는 주당 의결권 한 표가 아니라 뽑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는다면 주당 3표를 한 후보에게 행사할 수 있게 돼 헤지펀드들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몰표를 줄 수 있다. 실제로 2006년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컨은 KT&G 정관상의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적이 있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모든 기업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엘리엇으로서는 삼성전자 이사회 진입을 위한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셈이다.

○ 재계 전반으로 위기 확산 우려도

 전문가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비단 엘리엇과 삼성그룹 사이에서만 생길 일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재벌 개혁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사회에 해외 투기자본이 추천한 인사가 들어온다고 해서 곧바로 경영권을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거수기’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던 이사회에 다양한 인사가 들어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각종 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사건건 투기자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특히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져야 하는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투기자본이 경영권 공격에 나설 경우 막대한 방어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을 개혁할 부분이 있다면 개혁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국회에 상정된 상법 개정안은 국가적 손실을 자초할 뿐 재벌 개혁의 방안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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