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범죄의 배경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매혹적인 독일 뮌헨

여성동아

입력 2016-10-06 15:05 수정 2016-11-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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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독일 최고의 범죄 소설’로도 선정된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소설 속 배경이 된 뮌헨은 연쇄살인범의 잔혹한 범죄가 일어난 곳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눈이 어질어질 할 만큼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뮌헨 신시청사. 구시가 최고 명소로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죽어가는 여자들
간호사 카르멘은 퇴근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세로 2m, 폭 60cm의 시멘트 덩어리에 갇힌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그 ‘누군가’가 카르멘을 납치한 뒤 그녀를 시멘트 거푸집에 넣은 채 그대로 굳혀버린 것이다. 암흑 속에서 목소리만으로 존재를 드러낸 이 엽기적인 납치범은 카르멘에게 자신의 정체와 관련된 힌트를 건네며 그녀를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2개월 후, 뮌헨 경찰서 소속의 형사 자비네는 아버지로부터 엄마 한나의 납치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범인은 아버지에게 연락해 48시간 안에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낼 것과 경찰에 신고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고, 뒤늦게 딸 자비네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한나는 뮌헨 최대의 성당이자 도시의 상징으로 통하는 프라우엔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근처에서 다량의 검정 잉크가 강제로 폐에 주입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의도치 않게 자비네의 아버지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그녀는 수사에서 배제된다. 범인을 찾고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몰래 탐문을 벌이던 자비네는 독일 범죄수사국 소속 천재 프로파일러인 슈나이더와 팀을 이뤄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자비네와 슈나이더가 이 사건의 범인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이 1844년에 쓴 고전 동화 〈더벅머리 페터〉에 등장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슈나이더의 천재성과 자비네의 번득이는 추리력에 용의자는 점점 더 실체를 드러내고 이 둘은 좁혀진 용의자를 마주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다.


잘 짜인 범죄 소설을 읽는 즐거움

◀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동안 뮌헨 곳곳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385년에 지어진 후 5백 년 동안 꾸준히 주변 건물들을 아우르고 넓혀 지금처럼 거대한 규모를 완성한 레지덴츠. 비텔스바흐 왕조가 1918년까지 저택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출간되어 국내 독자들에게 독일 스릴러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제약 회사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썼던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이 작품으로 독일 최고의 스릴러 작가가 되었다. 출간 이후 이 작품은 독일 아마존에서 43주 동안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013 독일 최고의 범죄 소설’로 선정되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그의 열혈 독자였던 제약 회사 사장이 은연중에 건넨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독일의 고전과 시들을 모티프로 삼고 있어 독일 독자들에게는 더욱 친근하게 읽혔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 등을 무대로 어린 시절 학대에 시달렸던 독일 출신의 한 남성이 벌이는 엽기적인 범죄를 쫓고 있다. 살인 방식은 말썽쟁이 아이들이 벌을 받는 내용이 담긴 고전 동화에서 빌려 왔으며,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여성이며 범인의 성장기와 관련된 이들이다.

45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한번 잡은 이상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이는 전혀 무관해 보이던 인물들이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면서 몇 개의 접점으로 연결되고, 마침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도록 치밀하게 구성한 작가의 노련한 솜씨 덕분이다.


미적인 감수성이 넘쳐나는 도시, 뮌헨
사건 해결의 중심축에 서 있는 자비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소설 전반에서 거점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시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주도인 뮌헨이다. 물론 소설 속 상황을 애써 떠올리며 뮌헨을 연결할 필요는 없다. 납치범의 음산한 기운이 서린 도시이기는커녕, 유럽의 그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고풍스러우며 예술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뮌헨을 찾은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구시가를 둘러보는 일정을 잡게 된다. 구시가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사방으로 나 있다. 하지만 17, 18세기의 멋스러운 건축물 사이를 사람들과 뒤엉켜 거닐면서 뮌헨의 여러 명소들을 둘러보려면 카를광장(Karlsplatz)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광장 가운데 시원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분수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의 문이었던 카를스토어(Karlstor)를 지나면 노이하우저(Neuhauser) 슈트라세(街)를 따라 본격적인 구시가 여행이 시작된다. 뮌헨의 주요 관광 명소로 통하는 중심 도로이자 쇼핑몰과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수시로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할 정도로 붐비는 거리다. 이 거리에서 카우핑거(Kaufinger) 슈트라세로 접어들면 저만치서 뮌헨을 상징하는 건물이자 소설 속에서 자비네의 어머니인 한나가 살해되어 발견된 인상적인 외관의 프라우엔 대성당(Frauenkirche)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딕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여느 고딕 교회에서는 보기 힘든, 둥근 지붕을 얹은 쌍둥이 종탑이 인상적이어서 ‘쌍둥이 성당’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구시가 어디에서든 프라우엔 대성당의 ‘양파 두 덩어리’를 볼 수 있기에 배낭여행자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어준다. 1468년부터 짓기 시작해 20년이나 걸려 완성한, 독일 남부지역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다시 카우핑거 슈트라세로 나와 조금만 내려가면 역시나 구시가 최고 명소로 많은 여행자들이 꼭 들르곤 하는 신시청사(Neues Rathaus)에 이른다. 쳐다보고 있자면 눈이 어질어질 할 만큼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을 올린 신시청사 앞에서라면 누구나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말을 잊게 된다. 그 조각과 장식을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하루가 다 걸려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종소리와 함께 시계탑에서 태엽 장치로 움직이는 청동 인형들이 펼치는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온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기사들의 결투, 흑사병이 지난 뒤 이를 축하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시계탑 인형극은‘ 누가 안에서 조종하고 있을 거야!’ 라고 믿고 싶을 만큼 섬세하다.

여정은 뮌헨 최고의 명품 쇼핑 거리인 막시밀리안(Maximilian) 슈트라세로 이어진다.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뮌헨의 청담동’이라 불리곤 하는 이 거리에 레지덴츠(Residenz)가 있다. 1385년에 지어진 후 5백 년 동안 꾸준히 주변 건물들을 아우르고 넓혀 지금처럼 거대한 규모를 완성한 레지덴츠는 비텔스바흐(Wittelsbach) 왕조가 1918년까지 저택으로 사용했다. 건물 곳곳에서 화려한 벽화와 천장화, 조각과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금장을 더한 연회장과 로코코 양식의 극장, 왕관과 눈부신 보석 장신구 등 왕족의 유품이 전시된 박물관도 있다. 미로 같은 레지덴츠를 한참 둘러본 뒤 건물 외벽을 따라 북쪽으로 더 가면 오데온 광장(Odeonsplatz)에 이른다. 뮌헨 구시가의 진정한 중심점으로 대접받는 이 광장은 펠트헤른할레(Feldherrnhalle)라 불리는 장엄한 건물인 장군의 전당과, 노란 외벽이 인상적인 테아티너 교회(Theatinerkirche)에 둘러싸여 있다.

그 장군의 전당 앞 계단과 광장 주변 노천 카페에서는 여유롭게 맥주와 커피를 즐기는 이들의 풍경이 어우러진다. 이렇게 구시가를 거니는 동안 이름도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보물’들을 만나게 되지만, 뮌헨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잔잔히 흐르는 이자르(Isar) 강을 옆에 끼고 있는 영국식 정원인 엥글리셔 가르텐(Englischer Garten)은 하이드 파크나 센트럴 파크와는 또 다른 아늑한 정경 속에서 뮌헨 시민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독일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BMW 본사와 전시관은 값비싼 ‘놀잇감’을 동경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죽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평가가 분분한 작가 전혜린이 독일에 거주할 당시 그토록 사랑했던 슈바빙 거리와 뮌헨 대학가 그리고 현재 독일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궁전으로 ‘님프의 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뉨펜부르크 슐로스(Nymphen burg Schloss) 등도 뮌헨을 찾은 여행자와 시민들 모두가 아끼는 공간이다.


구나 잠깐 미쳐도 좋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흡사 일부러 만들어 놓은 테마파크가 아닌가 싶을 만큼 고풍스러운 건축물들로 가득한 뮌헨.

만약 뮌헨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를 권한다. 이즈음 뮌헨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의 하나로 유명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 흠뻑 취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뮌헨 거리 어디서나 맥주 향이 날 것 같은 그런 때이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10월 17일 루트비히 1세의 결혼을 기념해 열린 경마 대회에서 사람들에게 맥주와 고기를 공짜로 나눠준 데서 유래했다.

축제가 열리는 테레지엔 비제(Theresien Wiese) 광장에 들어서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와 먹거리 가득한 노점이 펼쳐지고 이곳을 지나면 진짜 ‘맥주 축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뮌헨의 유명 맥주 제조사들이 자기네 맥주를 사람들에게 파는 ‘텐트’들이다. 맥주 맛도 다르지만 안주의 종류와 맛, 밴드의 실력 등 저마다 특징이 있어 옥토버페스트를 즐겨 찾는 이들은 취향에 따라 텐트를 골라 다닌다고 한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필자는 해 질 녘 도착한 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꽤나 유명한 맥주 텐트로 드디어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어지간한 실내 운동 경기장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넓이도 그렇지만 개미떼처럼 이 공간을 메운 사람들의 들썩거리는 몸짓이 장관이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홀 전면에서는 밴드가 노래와 연주로 흥을 돋우고, 많은 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의자에 올라 춤을 추고 있었다.

매년 8백만 명이 찾아와 6백만 리터가 넘는 맥주를 마셔대며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1조원 가까이 쓰는 거대한 축제임을 증명하듯 사람들은 1000cc짜리 맥주잔을 들고 거침없이 마셔대고 있었다. 이 맥주와 함께 바비큐 닭고기와 돼지고기, 소시지 등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그런데 의자는 여럿이 한꺼번에 앉는 좁고 긴, 등받이가 없는 나무의자이다. 이 덩치 큰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았다. 이 의자는 ‘잠깐 엉덩이 붙이는’ 용도일 뿐이라는 것을.

밤이 깊어지고 비워내는 맥주잔이 늘어나면서 텐트 안은 더욱 소란스러워진다. 리듬이 유난히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의자에 올라서는 사람들도 많아져 수천 명의 들썩거림은 마치 일렁이는 파도 같다.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들은 대부분 귀에 익숙한 유명 록이거나 1980~90년대 미국 팝, 영화 음악이다.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싶을 즈음 밴드는 갑자기 박자를 늦추고 짧지만 중독성 있는, 맥주 권하는 노래를 연주한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은 약속처럼 잔을 순식간에 비워낸다. 당연히 웨이터들의 움직임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옥토버페스트의 매력을 두고 누군가는 “텐트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음악에 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물론 술이 있는 축제다 보니 간혹 싸움도 벌어지고 해괴한 해프닝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 봤자 1년에 단 몇주 아닌가?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세계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독일인들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세계 3대 축제의 하나인 ‘옥토버페스트’에 흠뻑 취해 있는 사람들.




Travel Information


뮌헨 여행 정보 사이트 www.muenchen.de

항공 예약하기 독일의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는 인천에서 뮌헨까지 직항
노선을 매일 한 차례 운항한다. 비행 소요 시간은 약 11시간 30분이며, 뮌헨까지 직항 노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과
루프트한자 등을 이용해 프랑크푸르트를 경유, 뮌헨으로 갈 수도 있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남기환 디자인 박경옥

editor 남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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