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 노트]물결치듯 마음을 적시는 전설의 목소리는…

임희윤기자

입력 2016-10-05 03:00:00 수정 2016-11-24 10: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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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4일 화요일 맑음. 만년설. #223 Caetano Veloso ‘Luz Do Sol’(1986년)

3일 밤 경기 가평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 노래하는 브라질 팝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만년설처럼 내려앉은 백발은 어쩌면 억겁의 비밀을 간직한 빙하인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 아래로 갈매기나 파도처럼 물결치는 겹겹의 이마 주름을 따라 먼 옛날의 이야기를 노장의 입으로 흘려보내는 듯했기 때문이다. 중력이 노장에게 한 일은 노화가 아니라 그토록 유장한 곡선과 흐름을 선물한 것이 아닐지.

 개천절 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 선, 아니 앉은 남미의 팝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74)는 기타 한 대, 목소리 하나만으로 붓질한 성화(聖畵)같았다.

 친한 음악가 H는 몇 년 전 어느 날 벼락 같이 삼바에 빠진 뒤,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브라질에 매료돼 무작정 포르투갈어 사전을 사 언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그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는 90분이었다. 미묘한 화성 운영과 꿈결 같은 멜로디만으로도 노래의 얘기는 구구절절하게 들렸으니. 가사가 궁금해질 수밖에.

 무대 바로 앞쪽에는 50여 명의 주한 브라질 교민들이 자리해 대형 브라질 국기를 흔들고 벨로주의 노래를 제창했다. 1960년대 데뷔한 벨로주는 반 백 년간 뛰어난 노래만 만든 게 아니라 열대주의(Tropicalismo)를 주창하고 독재정권에 대항하다 망명 생활까지 겪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밴드 편성 대신 기타 한 대와 노래만으로 일관한 무대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사이키델릭 록부터 전자음악까지 망라한 그의 괴팍한 음악적 꼭짓점들까지 맛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 대신 그 고즈넉함은 가을이 태어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이를 잊은 미성, 자연의 섭리처럼 정교한 가창과 연주는 경이로웠다.

  ‘Um ´indio’로 문을 연 공연은 ‘Meu Bem, Meu Mal’ ‘O Le~aozinho’ ‘Menino Do Rio’ 같은 그의 대표곡들로 이어졌다. ‘햇살이여/나뭇잎에 새로운 녹음을 드리우라…’(‘Luz do Sol’ 중) ‘Cucurrucuc´u Paloma’에서 치통을 앓듯 ‘아이야이야이야∼’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끝내 눈시울을 훔쳤다. 간절한 기도, 아니면 슬픔에 찬 명령과 같은 노래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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