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가지 않는 길 가는 과학자… 지원 아끼지 않는 日정부

서영아 특파원 , 송준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6-10-05 03:00 수정 2016-11-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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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년 연속 노벨상]日, 노벨상에 왜 강한가

‘노벨상 호외’ 들고 기뻐하는 제자들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에 그의 제자들이 3일 밤 학교 실험실에 모여 기뻐하고 있다. 한 학생이 스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대서특필된 아사히신문 호외를 펼쳐 보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3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71)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40년간 효모 연구 외길을 걸었다.

 노벨상 수상으로 큰 결실을 거뒀지만 그의 연구 인생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조교수가 된 것은 만 43세이고, 교수가 된 것은 만 51세였다. 다른 연구자에 비하면 아주 늦은 편이었다. 그래도 연구비를 얻기 쉬운 분야나 논문을 쓰기 쉬운 쪽으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남들과 경쟁하는 걸 싫어한다. 아무도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는 편이 즐겁다”고 즐겨 말해왔다.


 그의 이런 태도가 이번 노벨상 수상 분야인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 연구에서 일본을 독보적인 지위로 올려놓았다. 세포 내 불필요하거나 퇴화한 단백질, 소기관을 재활용하는 오토파지 현상은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제였다. 1988년 6월 도쿄대 조교수가 된 그는 연구실에서 액포(液胞)라는 세포 내 소기관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수많은 작은 알갱이가 춤추듯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오토파지 현상을 세계 최초로 관찰한 순간이었다. 오토파지는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암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스미 교수는 수상 확정 후 “젊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전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과학이 정말로 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100년 뒤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를 내다보며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해주는 사회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벨상 상금으로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는 “이 나이에 호화 저택에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외제차를 타고 싶은 생각도 없다. 후진 양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오스미 교수의 인간적인 면모도 관심을 끈다. 도쿄대 대학원 시절 연구실 2년 후배였던 부인 마리코(万里子·69) 씨는 “남편은 상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효모 연구자라 술을 좋아한다”고 농담하곤 하는 그는 밤새워 마시며 토론하는 자리를 가끔 가진다. 술을 좋아하는 연구자 6명과 함께 ‘7인의 사무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젊은 연구자를 격려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열고 있다.

 일본이 2001년 이후 과학 분야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16명으로 미국(55명) 다음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아낌없는 지원,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는 특유의 장인정신, 기업의 첨단 기술력이 어우러져 일군 결과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정부는 기초과학 육성에 발 벗고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과학에 승부를 걸겠다’는 신념을 갖고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졌다. 일본은 2001년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24조 엔을 투자해 앞으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미 절반을 달성했다. 일본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2013년 기준 약 368억 달러로 한국의 3배 가까이 된다.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많다.

 좋아하는 일에 빠져 한 우물을 파는 일본인 특유의 ‘오타쿠(마니아)’ 문화도 우수한 과학자를 배출하는 거름이 됐다. 오스미 교수는 회식 자리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해라. 자신이 흥미 있는 것에 열중해라”라고 자주 말한다.

 일본이 22개의 노벨 과학상을 받는 동안 한국은 단 1개도 받지 못했다. 단기 실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연구개발 풍토 탓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연구 주제를 끈기 있게 끌고 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저널 네이처도 올 6월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 현황을 분석한 뒤 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로 기초연구에 대한 장기적 투자에 인색한 점과 경직된 연구실 문화를 꼽았다.

 선진국들에 비해 기초과학 연구비 규모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연구비 배분 방식도 문제다. 정부가 미리 정한 ‘제안요청서(RFP) 주제’에 맞춰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 자율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연구비를 신청하면 심사를 받게 되는데 인력풀이 좁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 연구자금이 여러 기관이나 단체의 눈치를 보면서 ‘나눠 먹기’ 형태로 지급되는 것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점 지원 분야가 바뀌면서 생기는 비효율성도 개선돼야 할 대목이다.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할 과학자들 중 일부는 자리를 얻기 위해 정권에 줄 대기 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송준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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