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출신일수록 ‘재취업 심사’ 무시… 전관예우 의혹

강경석기자 , 강유현기자 , 황태호기자

입력 2016-09-21 03:00 수정 2016-09-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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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절벽 청년 울리는 정부]재취업 공무원 58% ‘뒷북 심사’

‘175일.’ 최근 8년 5개월간 퇴직한 공무원 중 재취업에 성공한 2771명이 직장을 다시 구하는 데 걸린 평균 기간이다. ‘고용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 취업이 어려운 가운데 불과 6개월도 안 돼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재취업자의 절반이 넘는 1610명은 재취업을 마친 뒤에야 ‘뒷북 심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허술한 심사를 받은 퇴직 공무원의 절반 이상은 경찰청, 국방부, 국세청, 대검찰청, 국가정보원, 감사원 등 권력기관 출신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인사혁신처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퇴직 공무원 재취업 심사 자료를 김우주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장에게 의뢰해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다.


○ 끊이지 않는 퇴직 공무원 재취업 ‘뒷북 심사’

공직비리를 감시하는 기관인 감사원의 차관급 출신 고위 공무원은 2008년 6월 한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재취업한 뒤 1년 2개월이 지난 2009년 8월에서야 심사를 받았다. 국정원 차관급 출신 공무원도 2007년 10월 대기업 상근고문으로 취업한 지 7개월 뒤인 2008년 5월 심사를 받았다. 퇴직 전 소속 부서와의 업무 관련성은 없었던 터라 둘 다 모두 취업 가능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관피아 방지’를 위해 만든 퇴직 공무원 재취업 심사 제도에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뒷북 심사를 받은 1610명 중 절반 이상이 사정기관 등 이른바 ‘힘 있는 기관’ 출신이었다. 경찰청 331명, 국방부 226명, 국세청 76명, 대검찰청 72명, 국정원 58명 순이었다. 전관예우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경찰청 출신은 10명 중 8명이 취업한 뒤 심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등 고위 법관 및 법원 공무원 재취업 심사를 하는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에서도 최근 5년간 18명 중 8명이 뒷북 심사를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류상 ‘2개의 직장’에서 겸직을 했던 퇴직 공무원이 56명에 이른 것도 심사 제도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48명은 서류상 겸직 기간이 30일 이내였다. 하지만 8명은 평균 겸직 기간이 208일이나 됐다.

이른바 ‘금피아(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마피아)’로 불리는 퇴직 공무원의 금융권 재취업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12일 마감된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 공모에 정찬우 전 금융위 부위원장이 응모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최경수 현 이사장의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막상 최 이사장은 공모에 응모하지 않았다.

공직자들의 낙하산 인사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는 금융위 국감 증인으로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채택했다. 그는 금융위 상임위원 출신으로 지난해 말 한국증권금융으로 옮기면서 낙하산 논란을 빚었다.


○ 취업 제한 공무원, 해임 요구는 25건에 불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뒷북 심사’를 받는 임의취업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씩 실시한다. 건강보험공단의 협조를 받아 취업제한기관의 직장건강보험 가입자 명단 중 심사 대상 퇴직 공무원이 포함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임의취업자의 경우 사후 심사를 통해 취업 가능 승인 판정이 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분한다. 취업 제한이나 불승인 판정이 나면 과태료와 함께 퇴직 전 소속 부처에 해임 조치를 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8년 5개월 동안 해임 요구가 이뤄진 건 25건에 불과했다. 단, 5급 이하의 공무원이 연봉 4000만 원 이하의 단순 생산직 및 기간제 근로자 등으로 취업한 ‘생계형 재취업’이나 심사 기간 중 자진 퇴사했을 경우 임의취업을 했더라도 과태료를 면제해 준다.

퇴직 전 민간 기업 등에 재취업한 ‘겸직 공무원’의 경우 영리업무 및 겸직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및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소속 기관장이 징계 처분을 내리도록 돼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599일이나 겸직을 했던 공무원에 대한 사후 징계 여부는 현행법상 공개할 수 없다”고만 해명했다. 모럴 해저드에 빠진 공직자가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처 관계자는 “2013년부터 취업제한기관이 크게 늘어나면서 임의취업자 수도 증가한 측면이 있다”며 “임의취업자가 과태료 면제를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자진 퇴사를 했다고 판단하면 과태료 면제를 해주지 않는 등 규정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퇴직 공무원이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먼저 취업심사를 요청하도록 돼있는 현행 제도를 고쳐야 ‘뒷북 심사’나 ‘겸직 공무원’ 같은 부작용이 근절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생계형 재취업은 문제가 없지만 공직사회에서 쌓은 인맥과 영향력을 악용해 전관예우 형태로 재취업하는 경우는 철저히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강유현·황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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