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텀블러

조경란 소설가

입력 2016-08-31 03:00 수정 2016-11-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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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뜨거웠던 여름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듯 하루아침에 가을이 날아와 버린 느낌이다. 때라도 맞춘 듯 대학은 내일부터 2학기 수업을 시작한다. 강의 노트에 메모를 하고 구두를 닦고 커피를 담아 갖고 다니는 텀블러들을 세척하여 건조시키는 것으로 개강 준비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여름방학에 묶여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을 찾지 못한 상태로.

철학과 월터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해 질문한다. 학교에 가기 전이면 그 노교수는 텀블러에 아내가 내려놓은 커피를 담고 한 손에는 가방을, 한 손엔 텀블러를 들고 생각에 잠긴 채 학교로 걸어간다. 강의실 책상에는 몇 권의 책과 그 은빛 스테인리스 텀블러가 우아한 사물처럼 놓여 있고 교수는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가? 윤리, 도덕, 아니면 선?

자신이 좋아하는 사이즈와 디자인의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대개는 그런 편이다. 물이나 차, 커피, 건강 음료 등 내용물은 다르지만 용기에서부터 각자의 취향과 필요가 엿보인다. 내가 텀블러에 관심을 갖고 필요를 느낀 건 아마도 출강하면서부터겠지만 카페에서 한 번만 쓰고 난 일회용 잔을 버릴 때마다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신문에서 캔이나 병, 플라스틱 컵 같은 길거리 쓰레기의 주범 중 97%가 카페에서 나온 일회용 커피 잔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지하철 입구에 줄줄이 버리고 간 음료수 잔들을 찍은 흉물스러운 사진과 함께. 누군가는 그것을 치우고 누군가는 다시 버리겠지. ‘손잡이가 없는 큰 컵’이라는 뜻의 텀블러는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나온 상품이라고 알고 있다.

만나자마자 신뢰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데 한 출판사의 편집장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과테말라에서 살다 온 그녀는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건 물론이고 카페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 일회용 잔도 꼭 집으로 들고 가곤 한다. 한번은 “그걸 갖고 가서 뭐 하시게요?” 물었더니 “몇 번 더 쓰다가 망가지면 꽃씨라도 심게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철학자들은 아무래도 주변 가까이에 있는 걸까.

마지막 수업에서 월터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서로가 타인이 되지 말자”고, “서로에게 배운 것들을 모른 척하지 말자”고 말이다. 원제는 ‘무감각(anesthesia)’인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이야기이다. 건조된 세 개의 텀블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첫 수업에 들고 갈 스테인리스 재질의 텀블러에 까만색 뚜껑을 헐겁게 닫아두면서 나는 창작 수업의 방향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 역시 “문학 수업은 훌륭한 독서를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는 마르케스의 말이 정답에 가까운 것일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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