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야구 “떳다 볼, 잡아라!”

입력 2016-08-11 10:06 수정 2016-11-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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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열광하며 응원한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라면 애국심으로 밤을 새운다.

그런데 서울에서 5시간을 내리달려 도착한 천년고도 경주에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전국여자야구대회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관중도 없고, 응원소리도 없는 조용한 야구였다. 하지만 사력을 다하는 여자선수들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진짜 야구였다.

지난 7월 16일. 유한양행 구강관리 전문 브랜드 유한덴탈케어 “힘내라 청춘! 힘내라 대한민국!” 캠페인과 함께 이뤄진 본 경기 현장을 담았다.



던지면 치고, 치면 집으로 달린다

경주 서천 둔치야구장은 벌판 위에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건물도 거의 없고, 풀밭과 벌판이 사이좋게 있는데 그 가운데 떡하니 그라운드가 조성되어 있다. 전국대회라서 기대했는데, 너무 한산하다. 관중도 없고, 취재진도 없고, 매점도 없는 야구장. 떳다볼팀과 플레이볼팀의 첫날 경기. 두 팀은 여자야구의 강팀이다. 그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야구는 단순한 게임처럼 보인다. 던지면 치고 달리고 홈으로 들어오면 이긴다. 하지만 결코 투수는 친절한 공을 던지지 않으며, 타자가 친 후에도 수비수들은 주자가 달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한다.

타자가 안타를 치고 루상에 나가도 어떻게든 아웃을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 그런 수비팀에게 장타를 날리며 공격팀은 좋아라하고, 죽을힘을 다해 뛰는 공격팀을 아웃시키며 수비팀은 쾌감을 얻는 경기, 그게 야구다.

대부분의 구기종목이 공을 어딘가에 집어넣는 것이 승부의 관건인데 비해, 야구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홈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집은 하나인데 상대방은 못 들어가게 하고 내가 집에 들어가야 이기는 게임. 야구는 얄궂은 스포츠다.

붉은 상의에 파이팅이 좋은 떳다볼팀의 초반 공격이 매서웠다. 아직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푸른 유니폼의 플레이볼팀의 마운드를 공략하여 선취점을 얻는다.

야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선취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점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대팀에 대해 기선을 제압하고 아군의 사기를 충천하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 힘으로 떳다볼팀은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 플레이볼팀의 공격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운동경기가 그러하듯 경기엔 흐름이 있고, 선수들 동선엔 리듬이 존재한다. 떳다볼팀이 강공으로 추가 득점을 얻게 되고, 두 팀 사이의 점수가 벌어진다.

의외로 초반에 승부가 갈리는 걸까? 떳다볼팀의 덕아웃 분위기가 좋다. 응원 온 몇 명의 지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넘친다. 스포츠 경기라는 것이 승부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라지만, 사실 이겨야 흥이 나고 힘이 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포수가 수비로 전환되면 안전장비를 차고, 3루 베이스 코치가 나가서 루상의 주자를 독려하고, 앞선 타자가 치고 던진 배트를 뒤의 타자가 집어오고, 그물망에 매달려 안타깝게 보는 선수까지……. 아주 사소해 보이고 별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들이 흥미로운 풍경처럼 다가왔다. 소소한 모습들이지만, 선수들의 진지함이 게임에 몰두하게 한다.


야구, 알 수 없는 심리전 게임!

그라운드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감독이 연신 뭔가를 소리치고 지시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예비로 빠져 있는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동료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적하며 열띤 참여를 보인다. 이런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이나 낯설다. 프로야구나 큰 야구경기에서는 보기 어려운 소박한 정경이다.

플레이볼팀이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시도한다. 좋은 공을 던지던 떳다볼의 선발투수가 흔들린다. 루상의 주자가 계속 도루하는데 포수가 제지하기엔 역부족이다. 환호하는 공격팀에 비해 수비팀은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하며 서로를 챙기고 용기를 북돋는다.

상대가 친 내야땅볼을 잡긴 잘 잡았는데, 1루 베이스까지 송구가 너무 멀다. 외야 깊숙이 친 공을 외야수가 낙하지점을 가늠하지 못한다. 두 팀 다 같은 경우의 실수를 매회 반복하고, 그럴 때마다 점수가 난다. 그리고 어느새 두 팀은 7:7 동점이 되어 있다.

뒤처져 있는 팀의 입장에서는 타자를 루상에 진루시키고 득점하는 것이 마음만 앞서고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상대편에서도 결코 호락호락하게 공격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 말이다. 상대편 투수의 공 하나하나가 날카로우며 수비수들의 몸놀림도 빠르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플레이볼팀이 착실히 점수를 따라붙었다.

동점 상황. 승부는 원점이 된다. 누가 이기지도 않고 지지도 않는다. 흐름이 떳다볼팀에서 플레이볼팀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플레이볼의 상승세를 차단해야 한다. 야구에서 쫓기는 팀은 앞서면서도 점수를 지켜야 하기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쫓는 팀은 어떠해서든 점수를 만회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동점이 되었을 때, 전자는 허탈감을 느끼고, 후자는 성취감을 갖는다. 당연히 분위기가 후자로 쏠리게 된다.

보통의 프로야구나 큰 야구 경기에는 모든 것을 승부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더 멋진 공격으로 점수를 내는지, 어떤 팀이 훌륭한 수비로 저지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그런데 이 경기를 보다보면 그것보다 선수들의 움직임과 심리상태 그리고 팀워크를 다지는 과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점을 만들어낸 플레이볼의 선수들은 어느새 순수한 아이들처럼 웃음이 넘치고, 자신감이 보이고, 흥이 난다.

반면에 동점을 내준 떳다볼팀은 다소 침체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사기를 북돋운다.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는다. 경기 내내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하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떳다볼 노은영 감독이 전격 투수교체를 지시한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여자야구에서 투수만 전문으로 하는 선수는 드물다. 모자라면 메우고, 자기 포지션이 아니라 하더라도 서브로 다른 포지션을 커버해야 하는 것이 현실.

아쉽지만 잘 던져준 선발투수가 야수로 내려가고, 막내 격인 중견수를 보던 박소현 선수가 마운드로 올라온다. 로진백을 손으로 턱턱 주무르며 날카로운 눈매로 몸을 푼다. 왼손 투수인데 제구가 나쁘지 않다. 이 선수가 플레이볼의 타선을 저지할 수 있을까? 정말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구원투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키고, 선수들에게 공격기회를 줘서 달아나야 하는데……. 복잡하고 책임감이 무거운 상황이다.

구원투수의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그 절박함을 볼 수 있다. 공 하나하나 신중하게 던지고, 타자의 마음을 읽고, 심리전을 해야 한다. 오랜 선배 언니인 포수의 사인도 간파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감 있게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점수를 내주고 만다. 플레이볼 팀의 파이팅이 거세다. 운도 따라주니 상황이 역전되고 흐름이 바뀌어 버린다. 점수 차가 계속 벌어지자 다급한 떳다볼팀의 노은영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오른다.

벤치로 돌아간 구원투수 박소현의 모습에서 허탈감을 보았다. 모자에 로진백에서 나온 흰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의자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박소현의 눈은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노은영 감독의 투구에 집중한다.

대회 규정상 게임이 시작되고 1시간 50분이 지나면 새로운 이닝을 진행할 수 없다. 몇 점을 더 실점하고, 스코어가 7대14, 더블이 된다. 플레이볼 팀이 경기를 압도한다. 경기시간은 1시간 45분을 경과한다. 다행히 한 이닝 더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떳다볼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상대 투수가 너무 강하다. 체격도 그렇고, 구질도 그렇고 내리꽂히는 볼들의 위력이 대단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떳다볼 선수들의 공격은 그 바람과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끝나고 만다.

아쉬움과 허탈함이 남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토너먼트 방식의 대회방식이어서, 떳다볼팀은 첫 게임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상대팀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떳다볼 선수들, 허탈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탈하게 웃고 있다. 서로 위로하고 파이팅한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 없이 마무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을 연습하며 기다려왔고, 멀리 경상북도 경주까지 내려온 이들. “가을에 LG배 전국대회가 있잖아!”하며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서로 악수하고 껴안으며 다시 힘을 내고 있었다.


우린 우리가 자랑스럽다


“막내가 스물두세 살이고, 마흔 넘으신 분들도 있어요. 직업도 자영업, 회사원, 경찰, 학생,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합니다. 십 년이 넘게 이 팀에서 야구를 했는데, 처음엔 재미로 하다가 이제 감독을 하면서 욕심이 생겼어요. 물론 우승을 꿈꾸긴 합니다만, 그것보다도 그 과정에서 팀원들이 발전하고 팀워크를 만들어 가는 상황이 너무 좋습니다.” (노은영 감독)

3년째 떳다볼팀을 이끄는 노은영 감독은 오랜 시간 야구를 하면서 품게 된 애정과 포부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회사에 다닌다고 하는 노감독은 여자야구가 과거에 비해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구장 확보 문제나 외부지원이 아직도 많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팀원들이 회비를 거둬야만 하는 상황이 버거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꿈을 이룰 기회가 없다가 사회인이 되고 아는 분을 통해 작년에 이 팀에 왔어요. 복싱, 스쿼시 등을 해봤는데, 야구가 최고예요. 그냥 좋아요. 그리고 전 제가 이렇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 있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같이 야구하는 우리 팀 선수들도 자랑스럽고요.” (박소현 선수)

입단한지 1년밖에 안 되었지만, 노 감독 말로는 급성장하고 있다는 박소현 선수. 야구를 하게 되면서 성격도 좋아지고 주변에서 많이 밝아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져준다고 한다. 평소 주변 지인들이 “야구 했어? 잘했어?”라며 물어보는 것이 박소현 선수는 좋다고 한다.

“예전에야 보는 야구였죠. 그것에 만족하다가 직접 하는 야구를 하게 된 거잖아요. 훨씬 더 좋죠. 그리고 주 중에는 보고, 주말에는 하고, 참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야구 경기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자세 같은 것을 눈여겨보죠.” (노은영 감독)

야구선수니까 평소에 잘 관리하고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다들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주말에 격렬한 경기를 하다보면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쓰고 해서 부상을 당하거나 한다고 한다. 그래도 평소에 야구연습장 등을 찾아 꾸준히 연습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사실 팀에 결혼한 분들이 없어요. 결혼하고 애 낳으면 경기에 나오기가 어려운가 보더라고요. 남자 야구팀은 경기에 가족을 데리고 와서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여자야구는 그렇지 못해요. 한국적인 상황일 수도 있고, 다른 팀을 보면 오히려 애들이 다 크면 다시 나오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긴 한데 전반적으로는 어려울 거예요.” (노은영 감독)

박소현 선수에게 결혼해서 애 낳아도 야구를 계속하고 싶느냐고 물었더니 밝게 웃으며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체육이란 것이 승부나 결과를 내기보다는 열정적으로 즐기는 것이라고 본다면, 여자야구에서도 결혼과 육아가 선수경력 단절로 연결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엄마가 선수로 뛰는 그라운드 한편 잔디밭에서 남편과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응원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올림픽에 나가서 수많은 금메달을 따는 체육 강국 대한민국이라면, 이런 소박한 희망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유한덴탈케어는 여성 야구인들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취재=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임준 객원기자, 사진= 윤동길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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