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오직 실력으로 보여주마” 5년 만에 돌아온 북유럽의 ‘고수’

입력 2016-07-22 03:00 수정 2016-07-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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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DRIVEN

볼보 ‘XC90’



볼보가 완전히 바뀌었다.

‘럭셔리’ ‘프리미엄’ ‘최고’ 같은 단어가 잔뜩 들어간 슬로건을 내걸고 호들갑스럽게 자신들의 진화를 알릴 법도 하지만 볼보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XC90’이라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력과 야망을 묵묵히 보여줬다. 허세 없는 북유럽 스타일이다.

경영 위기에 빠진 스웨덴의 볼보는 2010년 중국 지리자동차에 인수된 뒤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다 할 신차 없이 5년을 보낸 볼보는 XC90을 내놓으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강호를 떠나 절세무공을 익힌 뒤 무림 고수로 돌아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XC90에 붙여진 가격표(8030만∼1억3780만 원)만 놓고 보면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과연 XC90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속속들이 살펴봤다.


은은히 드러나는 럭셔리한 디자인

XC90의 전체적인 라인은 단순하고 다부진 모습이다. 심심해보일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토르의 망치’로 이름 붙여진 전조등 속 주간주행등(DRL)과 크롬 도금 인테이크 그릴이 포인트를 줘서 분위기를 살렸다. 그래도 1억 원짜리 SUV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허전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차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비싸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자연스러움 속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이 느껴졌다. 억지스럽거나 강요하는 고급스러움이 아니라 기능에 충실하고 단순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품위라고나 할까. 볼보는 이를 스웨디시 럭셔리라고 했다.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의 가죽으로 감싸져 있는 시트는 보기만 해도 철저한 인체공학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우드트림은 실제로 북유럽의 나무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원목을 만지는 촉감까지 살렸다.

대시보드와 중앙 디스플레이 모니터, 계기반의 디자인도 직선적이고 단순하지만 기품이 느껴졌다. 디스플레이 속의 각종 아이콘과 한글 폰트도 깔끔하게 처리돼 실내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다. 준프리미엄 브랜드쯤으로 여겨졌던 볼보에 이제는 럭셔리라는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과 효율을 동시에 잡은 엔진


XC90의 덩치만 보면 최소한 3리터급 터보 엔진이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가솔린과 디젤 모델 모두 2L급이다. 그렇지만 힘은 제법 강하다. 가솔린 모델은 최고 출력이 320마력에 이른다.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2.1t을 넘는 차체가 시원하게 가속된다.

회사에서 밝힌 0→100km/h 가속시간은 6.5초에 불과하다. 직접 정밀 장비로 측정한 결과 7.1초가 나왔다. 2L급 엔진에 대한 불신이 간단히 사라졌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았을 때 힘에 부치거나 하는 느낌 없이 대배기량 엔진처럼 자연스럽게 가속이 이뤄졌다.

이는 볼보의 새로운 동력 시스템인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Drive-E Powertrains)’ 덕분이다. 가솔린 엔진에는 슈퍼차저와 터보차저가 함께 들어가 저속과 고속 모두 엔진이 최대한 힘을 내도록 설계가 됐다.

2L 디젤엔진에는 파워펄스 기술이 세계 처음으로 적용돼 엔진 반응성이 크게 개선됐다. 파워펄스는 2L의 압축공기를 작은 탱크에 저장했다가 가속할 때 터보차저에 빠르게 내보내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만들어준다. 압축공기는 곧바로 채워진다.

가솔린모델의 서울시내 주행 연료소비효율(연비)는 L당 6km대, 고속도로는 12km대가 나왔다. 디젤모델은 서울시내 8km대, 고속도로 15km대로 측정됐다.


스포티한 승차감, 균형감 있는 핸들링

XC90의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다. 차체의 무게가 있어서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서 튀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노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해주는 정도다. 하지만 고속주행 안정감은 뛰어나다. SUV는 차체의 무게중심이 높아 고속주행에서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XC90은 일반 중형 세단 이상의 승차감은 제공했다. 바람소리와 외부소음도 잘 차단됐다. 다른 소음이 차단됐기 때문인지 타이어 소리는 평균 수준으로 들렸다.

5m에 가까운 크기여서 핸들링 반응이 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반 중형 SUV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시내에서는 서스펜션이 약간 단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고속도로에서 안정감과 적절한 운전 재미, 그리고 장거리 운행에서의 쾌적함을 감안한 유럽형 세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

XC90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사고 예방기능이다.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감시하며 적극적으로 이를 막아주는 시스템은 자율주행차의 직전 단계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안전기능은 선택이 아니라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제공된다.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은 시속 15km 이상에서 작동시킬 수 있는데 차체가 자동으로 차로를 유지하게 해주고, 선행 자동차와 간격을 유지시켜 충발을 방지한다. 사실 이런 기능은 다른 브랜드에도 많이 적용되지만 XC90에 들어간 시스템은 훨씬 강력하다.

차체가 차로 안에서 좌우로 오가게 하지 않고 마치 능숙한 운전자가 운전을 하는 것처럼 차로 중앙을 유지해서 달린다. 커브길에서 자동으로 운전대를 돌려주는 기능도 업그레이드됐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자동차 중 가장 커브길을 잘 따라간다. 손을 놓고 경부고속도로 주행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자율주행기능이 안정적이었다. 물론 30초 이상 손을 놓으면 안전을 위해 경고음이 울리고 기능이 해제되기 때문에 계속 운전대를 놓고 운전할 수는 없다.

만약 차가 도로를 이탈하면 보호기능이 작동해 안전벨트를 당기고, 시트를 조절해 충돌에 대비한다. 시내에서는 선행차, 보행자, 자전거는 물론 동물과 교차로에서 마주 오는 자동차까지 인식해 충돌하지 않도록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이 정도까지 경험하고 나면 볼보가 XC90에 붙인 가격표를 보고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

석동빈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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