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아서]인디아나 존스가 성배를 찾던 그곳, 고대도시 ‘페트라’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6-06-20 03:00 수정 2016-11-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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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기자의 힐링투어] 영화를 통해 본 요르단

《‘인디아나 존스3-최후의 성전’의 클라이맥스는 인디아나 존스가 사막의 한 사원에서 성배(聖杯)를 찾는 장면. 거대한 협곡의
사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실제로 성배가 있을 듯 신비로웠다. 상영 당시엔 그런 곳이 실재하는지, 실재한다 해도 어디인지 전혀
몰랐다. 그곳이 기원전 6세기부터 700년간 번성했던 고대 도시 페트라(Petra)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사실을 안 건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다.

성배란 예루살렘에서 가진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건넨 포도주잔. 서구문학에선 신비한 물건의 대명사다. 》








예루살렘이 적시된 최초(6세기)의 이 지도는 마다바의 성조지 성당 바닥의 모자이크다. 맨 위에 요르단 강과 사해가 보이는데 그 아래 타원형 지역이 예루살렘이다.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

제작자 조지 루커스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성배 촬영지로 네푸드 사막 바위산악의 고대 유적도시 페트라를 선택한 건 탁견이었다. 촬영지는 그 페트라에서도 ‘알카즈나’(Al-Khaznah·영어로는 보물을 뜻하는 ‘Treasury’)라고 불리는 길고 좁은 바위협곡의 막다른 곳의 절벽. 협곡은 길이 1.2km에 폭은 가장 좁은 곳이 3m다. 그런데 가보지 않으면 오해한다. 건물로 말이다. 건물이 아니라 부조(浮彫)다. 건물처럼 보일 뿐 실제는 절벽을 쪼아 사원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아래의 문 안엔 공간도 보이지만 좀더 깊이 판 것에 불과하다.

페트라는 귀족의 무덤으로 만든 사원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알카즈나는 아라비아반도에서 번성한 나바테아인(人)이 만든 고대 도시 페트라의 극히 일부. 기원전 312년경 알카즈나를 만들 당시 이 일대 돌산은 높은 수준의 문명도시였다. 부근에서 발굴된 건물 잔해와 도로 등이 그걸 웅변한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원형극장을 통해 도시의 규모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고대 동서교역의 핵심 요르단 계곡

예수의 세례터. 당시는 요르단 강가였지만 지금은 강줄기가 바뀌어 맨 땅이다.

페트라의 나바테아인은 요르단 국민의 조상. 알렉산더대왕(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 사후 그리스의 통치력이 약화되자 남으로 이동해 요르단 계곡의 암만(요르단 수도)을 중심으로 영토를 늘리며 문명의 꽃을 피웠다. 전성기(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엔 지중해 연안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는 아라비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 106년 로마제국에 복속되며 멸망했다.

그 문명의 원천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고대 교역로와 그 위로 오가던 동서양의 문물. 그 길은 페르시아 만∼유프라테스 강 유역(시리아)∼다마스쿠스∼암만으로 이어졌다. 이 길은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렸는데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상지를 가로지른다. 길은 요르단 강이 흐르는 요르단 계곡에 이르면 강 동안으로 남행해 사해와 네푸드 사막을 가로질러 홍해 아카바 만에 이른다. 아카바 만은 아프리카로 향하는 뱃길이 시작되는 곳. 페트라는 사막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융성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3-최후의 성전’ 포스터.
사해는 예리코(기원전 9000년부터 존재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의 고대도시)와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의 교차로. 지중해 항구를 통해 유럽과 연결되는 길목이기도 하다.


요르단 관광루트가 된 고대 교역로


고대의 동서교역로는 지금도 건재하다. 특히 요르단이 그렇다.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킹스 하이웨이’(King’s highway)와 ‘데저트 하이웨이’(Desert Highway)는 고대의 동서교역로를 따른다. 두 길은 수도 암만과 사해, 사해와 와디럼과 페트라, 와디럼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요르단의 3국 국경도시 아카바 항을 잇는다. 거리는 아카바 항을 기점으로 와디럼 58km, 페트라 125km, 사해 260km, 암만 325km.
알카즈나 근방의 페트라 고대도시 유적. 2세기 초나바테아 인의 최번성기엔 3만5000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3000년 역사의 고대교역로는 요즘 관광도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요르단 주요 관광지가 이 도로로 이어져서다. 가지를 친 길까지 더하면 성지순례 코스까지 아우른다.

가나안 땅을 본 뒤 숨진 모세가 묻힌 느보(Nebo) 산, 예루살렘이 최초로 표시된 지도(모자이크)가 있는 성 조지 성당(6세기)의 마다바(Madaba), 세례자 요한이 살았고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르단 강 동안의 베타니(Bethany)는 모두 요르단에 있다. 고대도시 예리코,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과 처형당한 예루살렘 등 이스라엘의 기독교 성지는 요르단 강 건너에 있는데 그리 멀지 않다.

그래서 이스라엘 여행사의 성지순례 상품엔 페트라와 와디럼, 홍해(아카바 만) 등 요르단 지역까지 넣기 때문에 코스가 더 다채롭다.

●Travel Info

항공루트: 인천∼암만은 직항 편이 없다. 에티하드 항공(아랍에미리트 국영항공사)의 아부다비 경유 편을 추천하는데 인천∼아부다비는 10시간, 아부다비∼암만은 4시간. 스톱오버(연결 편 탑승을 위한 숙박)를 하면 아부다비와 두바이까지 즐길 수 있다. 요르단 정부 관광청과 에티하드 항공은 지난달 요르단 관광 활성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에티하드 항공(www.etihad.com/ko) 서울사무소 02-3483-4888

안전성: 요르단은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테러나 폭력시위, 전쟁 위험이 없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이스라엘과는 1994년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2010년 북아프리카 아랍 국가의 벨벳혁명 때도 입헌군주국 요르단의 왕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현 압둘라 2세 국왕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신임과 지지, 존경 때문이다.

요르단 국민은 친절하고 잘 웃는다. 유목민 베두인 족의 환대전통에서 비롯된 문화다. 지금도 사막에서 텐트 생활을 하는 베두인 족의 전통은 누군가 텐트를 찾아오면 따지거나 묻지 않고 사흘간 먹이고 재워 주는 것. 그런 후예답게 93%가 이슬람(수니파), 7%가 기독교를 믿어도 갈등 없이 잘 지낸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도 많다.

여행 일반: 10월부터 이듬해 2월이 우기. 그렇지만 관광엔 지장이 없다. 사막이라지만 그늘 아래는 시원하고, 도시가 대개 해발 1000m여서 한여름이라고 해도 굳이 방문을 피할 이유가 없다. 관광은 요르단에서 정보기술 다음으로 중요한 국가산업. 유럽과 미국인이 즐겨 찾을 만큼 국제적인 관광지여서 자유여행도 문제없다. 요르단 정부 관광청(한글) http://kr.visitjordan.com 주한 요르단대사관(한글) www.jordankorea.gov.jo/ko

성경 속의 요르단: 요르단 정부 관광청 책자는 아브라함과 욥, 모세 같은 선지자의 말(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 앞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곳이 모두 요르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2000년 ‘희년 중동순례지’로 요르단을 지정하고 직접 순례했다. ◇에덴동산: 창세기에 기록된 ‘요르단 골짜기에 있는 여호와의 동산’으로 요르단 강둑의 베이산으로 추정. ◇도피성(城·피신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카인이 찾아간 도피성도 요르단으로 추정. ◇모압 평야: 모세가 느보 산에 오르기 전 지난 곳. ◇예수의 마지막 여정 출발지: 병든 이를 치유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곳은 요르단 강 동편. ◇베타니: 1996년 확인된 예수의 세례 터. 1994년 평화협정 체결 전까진 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전쟁터라 발굴하지 못했다. 세례자 요한의 동굴도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지 안에 실재한다. www.baptismsite.com

페트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빼놓지 않고 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요르단 최고의 관광 명소. 14세기 이후 잊혀졌던 이 고대도시를 1812년 스위스인 탐험가가 찾아내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인도에서 온 아랍상인 행세를 하며 예언자 아론의 무덤에 제물을 바치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베두인 족이 비밀리에 지키던 페트라에 접근했다고 한다. 페트라 관광은 반드시 낮과 밤, 두 번 하길 권한다. 야간의 ‘페트라 바이 나이트(Petra by Night)’가 아주 장관이기 때문(사진). 이 광경을 못 보면 평생 후회한다. 고대 도시의 유적까지 살피려면 온종일 돌아다녀도 모자란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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