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Black Box 360]재소자 가족의 희망여행 “아빠는 언제 돌아오나요?”

구희언 기자

입력 2016-06-15 11:53 수정 2016-11-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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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명·21)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3년 전 ‘그 날’ 이후다. 어릴 적부터 큰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지혜에게 큰아버지는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혜가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려던 차에 큰아버지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빨리 와보라”는 것이었다.

이제 막 테이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와 김밥이 나온 차였다. 지혜는 “친구가 밥 사줘서 이거만 먹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지금 당장 와야 한다”고 했다. 지혜는 친구들에게 “큰아버지가 몸이 안 좋은가 보다”라며 “음식 불게만 하지 말라. 금방 갔다 오겠다” 하고는 집으로 내달렸다.

걸어서 3분 거리였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괜스레 불안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4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바닥을 보니 전에는 없던 남자 신발 여러 켤레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자 큰아버지 곁에 선 낯선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이었다. 형사들은 지혜에게 “큰아버지가 어디 가야 하니 집을 지켜 달라”고 했다. 형사들은 지혜의 눈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큰아버지를 연행해갔다. 그가 지혜의 학교 친구를 성폭행해 신고 당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의 일이다. 현재 지혜의 큰아버지는 징역 6년에 전자발찌 부착 10년 명령을 받고 복역 중이다.
교정복지 전문기관 기독교세진회(이사장 백현기)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재소자 가족을 초청해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에서 진행한 가족희망여행. 지호영 기자


큰아버지는 지혜네 집에서 가장 노릇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집안은 어떻게 될까. 여러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가장 먼저 불거지는 건 돈 문제다. 당장 내일모레 내야 할 공과금, 다음 달 내야 할 학원비가 걱정이다. 결국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한다. 누가 그 무거운 역할을 짊어져야 할까. 지혜네의 경우에는 지혜 본인이었다. 꿈 많던 10대 소녀는 한순간에 집안의 가장이 됐다. 지혜는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을 대줄 사람이 없어서 진학을 포기했다. 70대인 할머니께서 ‘폐지라도 줍겠다’고 하셨지만 ‘짧게라도 내가 일해서 생활비를 드릴 테니 절대 일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줄곧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 심판, 그 후


2014년 경찰 범죄 통계에 따르면 그해 전체범죄자 중 남성 범죄자는 81.5%로 여성의 4.4배에 달한다. 강력 범죄는 남성 범죄자 비율이 96.5%(2만4183명)로 다른 범죄 유형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즉 국내에서 강력 범죄를 저질러 장기간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 대부분이 아버지 혹은 남편 역할을 하며 가정에서 경제 주체였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범죄자의 가족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가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재소자의 성공적인 사회 복귀와 남아있는 재소자의 가족을 돕고자 여러 교정복지 전문기관이 다양한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올해로 설립 48주년을 맞은 교정복지 전문기관 기독교세진회(이사장 백현기)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재소자 가족을 대상으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에서 가족희망여행을 진행했다. 기자는 2박 3일간의 여정에 동행해 재소자 가족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마음을 열지 못하는 가족도 있었지만,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가족은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들어줘서 고맙다”며 기자의 손을 부여잡기도 했다.


재소자 가족과 떠난 힐링 여행

6월 2일 오후 제주 히든호텔에서 진행된 가족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 가족. 지호영 기자


이번 여행에 참여한 가족들은 아버지나 아들, 남편이 교도소에 간 이후 제대로 웃어볼 일이 없었다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게 처음인 가족도 많았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고 자연 풍광을 즐기며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저녁에는 스태프들이 함께한 가운데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다 함께 율동하고 색종이를 찢어 던지고, 서로의 장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몸에 붙여주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오전엔 배를 타고 마라도로 향했다. 대한민국 최남단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가족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었다. 이날 저녁에는 YWCA (제주)통합상담소 강미라 소장의 지도로 재소자 가족이 남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상담과 교육 시간이 마련됐다. 교육에는 다섯 명의 어머니가 참여했다. 두 명은 아들을, 세 명은 남편을 교도소에 보냈다고 했다.

남편이 폭행죄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김소영(가명) 씨는 가장 힘든 점이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고등학생인 두 아이의 어머니다.

“제가 일을 하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더라고요. 남편이 곧 출소하면 현실로 돌아가는 셈인데, 사회에 나와서도 바로 일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못해도 직업을 갖기까지 2~3개월은 잡아야 할 텐데 나와서 어떻게 될지도 막막하고 고민이 많아요. 남편 성격이 욱하는 편이라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죠.”
6월 3일 오전 마라도에서 재소자 가족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호영 기자

장기간 재소자와 재소자 가족 상담을 진행해온 강 소장은 “가족적인 유대가 형성된 재소자는 재범 확률도 낮고, 사회와 융화될 가능성도 높다. 교도소에서 10년을 살아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가족이 찾아와 면회하는 사람도 있다. 교도소 안에서도 서열이 있고 파워 게임이 있는데, 그 안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가족이 면회 가는 사람이다. 가족들도 고통스럽겠지만 상처가 있을수록 용서하고 보듬어야 한다.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을 살리려면 밖에 있는 가족이 그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3년 형기가 남은 재소자들은 밖에 나가기까지 시간이 있어서 덜 불안해하지만, 출소 한 달 전, 15일 전인 재소자들은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모습을 자주 목격해요. 이들은 ‘나가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나를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고민하죠. 이들이 출소한 후 올바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과거에 가족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가족들이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줘야 합니다. 이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가족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 하면 그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아요. 당신이 비록 범죄자이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순을 훌쩍 넘겨 아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중학생 손녀딸을 키우며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하게 된 최순영(가명) 씨는 “겪어보지 않으면 그 심정 모른다. 솔직히 당해보지 않으면 그렇게 얘기 못할 것이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에 마찬가지로 아들을 교도소에 보낸 김정숙(가명) 씨는 “주위에서 아들이 안 보이니 ‘어디 갔느냐’고 자꾸 묻는데 처음에는 그런 질문을 듣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자꾸만 물어봐서 하루는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고 말해버렸다. 그랬는데 주변에서 ‘그간 고생이 많았겠다’며 되레 위로해주더라.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났다. 어머님도 말을 하는 게 오히려 나아지는 길일지 모른다”며 최씨를 다독였다.


남들에게 숨기고픈 아버지의 존재

젊은 어머니들의 고민은 단연 아이 걱정이다. 이민주(가명) 씨는 “아이가 아빠를 모른다”며 울먹였다.
6월 3일 오후 제주 히든호텔에서 YWCA (제주)통합상담소 강미라 소장이 진행한 재소자 가족 상담 및 교육 프로그램. 지호영 기자

“아이가 ‘아빠’ 소리를 거의 안 해요. 가끔 ‘아빠가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면 ‘아빠 저 멀리 돈 벌러 갔다’고 하죠. 그런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재소자 가족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 아버지의 존재를 밝힐 수 없다는 점이 힘들다고도 했다. 5살과 3살 아들을 홀로 키우는 박정은(가명) 씨는 “큰 아이는 아빠를 기억하지만 작은 아이는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때 교도소에 갔기에 아빠를 모른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빠’라는 단어가 어떤 말인지 잘 모르나 봐요. 둘째는 남자만 보면 다 아빠라고 해요. 큰 아이는 아빠랑 그렇게 친했는데, 아예 제 앞에서는 얘기를 꺼내지도 않아요. 종종 물어보면 ‘비행기 타고 돈 벌러 갔다’고 하죠. 아이가 ‘빨리 아빠가 돌아오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을 해주면서도 저 스스로 당당하기가 힘들어요. 남편을 용서하기도 쉽지 않고요.”

박씨는 어린이집 지원금을 받으려면 재소(출소) 증명원 같은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 때문에 동사무소를 찾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제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못 하니까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범죄자의 자식이라고 할까 봐…. 아이들 사이에서도 범죄자의 자식이라고 하면 괜히 해코지당하거나 왕따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러니까 더 숨기게 되고요. ‘아빠 어디 갔느냐, 안 보인다’며 사람들이 물어볼 때 제일 괴로워요.”

강 소장은 “아이에게 어머니가 지금 심어주는 아버지상이 나중에 남자상, 남편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해야 한다. 부끄럽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있겠지만, 객관적인 태도로 아버지랑 떨어져 있어서 밉고 눈물이 난다고 얘기해줘야 한다. 아이에게 아버지 얘기를 숨기는 건 남편과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다. 가족이 재소자에게 주는 상처는 남들이 주는 상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풀어내서였을까. 교육과 상담 시간이 끝난 뒤 가족들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김소영 씨는 “남편이 돌아오면 사랑으로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다”고 했고, 이민주 씨는 “아이 앞에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정은 씨는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안심은 된다. 나오면 어떻게 맞아줘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부끄러움이 많았고,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한 번에 용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교육이 끝나고서도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한참을 서서 “애썼다” “잘했어”라며 서로를 안아주고 다독였다.
남편을 교도소에 보낸 재소자 가족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최준영 세진회 총무는 “우리나라 재소자의 대부분이 남자”라며 “남자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은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재소자 가족은 심적인 부담을 가진 데다, 교도소에 가족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쁠 일도 없고 웃을 일도 없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늘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비슷한 처지의 가족을 모시고 와서 한 번이라도 힘든 속마음을 꺼내놓고 위로받고 괜찮다고 토닥거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소자 자녀, 범죄 위험 높아


1997년 부산 교도소를 탈옥해 도피 생활을 벌이다 무기수로 복역 중인 신창원은 과거 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제가 만난 재소자 중 90%가 부모의 따뜻한 정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폭력 또는 무관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 사춘기에 비로소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략) 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다른 게 없습니다. 교도소를 아무리 많이 짓고 경찰력을 아무리 많이 늘려도 현 상태에선 절대 범죄가 줄어들 수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자녀들에게 좀 더 사랑과 관심을 가진다면 범죄는 자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재소자 가족 중에서도 가장 위태로운 건 어린 자녀다. 이들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사회의 손가락질을 견디다 못해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이른바 ‘범죄의 대물림’이다. 신동욱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아동·청소년기 가정폭력 경험이 성인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경기도 지역의 한 교도소 재소자 486명 중 249명(51.2%)이 아동·청소년기에 가정폭력을 직‧간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죄목별로 가정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성범죄(63.9%) △살인(60%) △절도(56%) △강도(48.8%) △폭행·상해(48.5%) △사기·횡령(42%) 등이었다. 가정 폭력을 직접 경험한 응답자는 226명(46.5%), 간접 경험한 응답자는 176명(36.2%), 직·간접 폭력을 모두 경험했다는 복수 응답자는 153명(31.5%)이었다.
‘범죄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범죄자 자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호영 기자


2003년 미국 오리건주의 연구에 따르면 범죄자의 자녀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범죄자가 될 확률은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재소자 자녀를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위기 아동, 청소년 집단으로 간주해 민간단체와 정부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집중 지원하나 국내에서는 이들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출소 후 사회와 융화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러 다시 교도소로 향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법무부 교정본부 통계에 따르면 형기 종료·가석방·사면 등의 사유로 출소한 자 중, 출소 후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다시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사람의 비율은 10년 전인 2006년(2002년 출소자 3만869명 중 24.3%가 3년 이내 재복역)과 2014년(2010년 출소자 2만5066명 중 22.1%가 3년 이내 재복역) 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0명 중 2~3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재범하는 이유는 자신을 받아줄 가정이 없거나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러 복지단체에서는 재소자와 재소자의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해 궁극적으로 범죄율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이들은 재소자 자녀의 안정적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범죄자들의 사회화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소자 가족은 또 다른 피해자

앞서 만난 지혜는 큰아버지가 잡혀간 날 이후로 담배를 자주 피운다고 했다. 큰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한 개비 두 개비 피우던 게 이제는 없으면 살기 힘들 정도라고도 했다. 지혜는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몇 개비를 피워도 기분이 좋아지질 않았다. 돈이 없으면 꿔서라도 피웠다”고 말했다. 아무 약이나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해를 하기도 했다. 양팔에 난 자해의 흔적을 숨기고자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고집했다.

그랬던 그는 세진회에서 만난 재소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혜는 “세진회를 통해 다양한 재소자 가족을 만났는데, 다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숨김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며 다독여 줄 수 있었다. 가족과 이야기하며 펑펑 울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지혜는 “경제적인 지원도 그렇지만 범죄자의 가족이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고 다독일 수 있는 자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 지혜는 요즘에는 울지 않는다고 했다.

“제가 가장이니까요. 울음이 나와도 진짜 꾹 참고, 그때(큰아버지가 잡혀간 때) 이후론 절대 안 울어요. 할머니께서 종종 면회를 다녀오거나 전화를 받고 나면 대성통곡을 하시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 나도 안 우는데 할머니가 울면 안 된다. 6년 금방 간다’고 말씀드리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기사의 목적은 결코 지혜의 큰아버지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옹호하거나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쁜 일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자명한 사실이다. 그건 지혜 역시 기자에게 먼저 꺼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가해자 ‘단죄’에서 끝난다는 데 있다. 최준영 세진회 총무의 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나쁘고 분명히 벌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그 가족까지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어요. 가해자의 가족도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좀 더 넓게 포용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교정복지 전문기관 세진회


1968년 7월 7일 발족해 1980년 국내 최초로 법무부 인가 사단법인이 된 세진회는 48년간 소년원과 교도소 수용자 및 그 가족을 지원해온 법무부 인가 교정복지 전문기관이다. ‘세진(世進)’은 갇힌 자들이 변화해 세상을 향해 새롭게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업의 핵심 목적은 △재범 방지 △범죄 대물림 근절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이다. 전국 교정시설에 갇힌 재소자 5만여 명을 위한 집회, 위기상담, 소그룹 모임, 집단상담 등의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재소자와 그 가족이 회복되고 치료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업을 진행한다.



 
▼백현기 세진회 이사장 인터뷰

세진회 이사장 백현기 변호사. 홍중식 기자


세진회 이사장인 백현기 변호사는 법무법인(유한)로고스의 구성원 변호사다. 로고스 창립 멤버로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세진회는 재소자 교화와 복지를 위한 일 외에도 재소자 가족, 특히 자녀들이 제2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힘쓴다. 백 이사장에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재소자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책과 재소자들의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출 방안을 물었다.


-그동안 세진회에서 해온 일과 그 성과는 어땠나.

“세진회는 48년간 무연고 불우 재소자의 영치금 지원과 편지 교환을 통한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원망과 증오 범죄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재소자 접견과 상담 외에도 재소자 자녀 여름 캠프와 자녀 멘토링을 꾸준히 진행하고 교도소 내 양서 보급에도 힘썼다. 불우한 재소자 가족 지원과 가정 방문 외에 재소자 가족 만남의 날, 출소자 지원, 어린이날과 성탄절에 재소자 부모를 대신해 자녀에게 선물을 보내주는 Angel’s tree 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나.

“한두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갇힌 지 몇 년 만에 연락이 끊겼던 가족이 교도소에서 상봉한 일, 교도소에서 수없이 보내오는 재소자들의 감사 편지 등 재소자와 그의 가족 간 관계가 회복되고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도록 돕는 순간순간마다 보람을 느낀다.”


수용자 자녀 지원센터 설립 추진


세진회 이사장 백현기 변호사. 홍중식 기자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왜 범죄자를 도와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업을 진행하며 어려웠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세진회는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가 아니기에 모든 재정을 모금이나 후원으로 충당한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서 교정복지 전반에 관한 일을 하지만 이름 때문에 종교단체로 여겨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이나 일반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 등 프로그램 선정에서 제외되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재소자의 출소 후 재범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까지 정부에서는 재소자의 재범을 막고자 취업 관련 교육을 우선시해왔는데,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재소자의 가족관계 회복과 강화다. 출소 후 돌아갈 가족이 남아 있어야 책임을 느끼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무부에서 재소자와 가족 간 관계 회복 프로그램(가족 만남의 날, 가족사랑 캠프, 가족접견) 등을 실시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좀 더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재소자의 가족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죄인의 아내’ ‘죄인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짊어질 때가 많다. 세진회에서는 재소자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하는데.

“재소자 가족은 또 다른 피해자다. 재소자의 든든한 버팀목인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 견뎌내도록 돕는 것은 재소자가 출소 이후 재범하지 않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세진회에서는 생활지원비와 재소자 자녀 학업지원비 등을 지원하고, 주기적으로 재소자 가정을 방문해 상담 및 도움이 필요한 사항을 점검한다. 또한 재소자 자녀를 위한 여름 캠프, 어린이날․성탄절 선물 보내기, 멘토링 등을 통해 일반 청소년보다 범죄율이 5배 높은 재소자 자녀가 범죄 대물림을 하지 않고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재소자 가족이 교도소 면회를 갈 수 있도록 서울-수원-청송교도소 왕복 희망버스를 매달 한 차례 제공한다. 재소자 가족을 위한 희망여행은 올해로 3년째다. 재소자 가족이 여행을 즐기고 집단 상담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고 힘을 얻게 하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재소자 가족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나 프로그램이 절실한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지원 외에도 주변의 낙인효과 때문에 가까운 친척에게도 가족이 교도소에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겉으로 드러내야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재소자 가족을 위한 자조 모임이 꼭 필요한데,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재소자 가족까지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자녀가 받는 상처는 어른보다 클 수밖에 없기에 재소자 자녀를 위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세진회의 장기적 목표는 무엇인가.


“시급하게 진행할 것은 재소자 자녀를 위한 사업이다. 지금까지 형이 확정된 기결수의 자녀를 돌봐왔는데, 더 시급한 것은 보호자가 경찰이나 검찰에 체포된 이후 강제로 부모와 분리된 자녀를 돌보는 일이다. 이 때문에 세진회에서는 ‘세진 수용자 자녀 지원센터’를 설립해 경찰이나 검찰에 체포되는 보호자와 강제 분리되는 자녀를 파악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사회복지사가 긴급히 출동해 아이들을 일시 보호하고 필요한 경우 관계시설로 연계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사업을 통해 재소자 자녀가 제2의 피해자로, 혹은 범죄 대물림을 하지 않고 올바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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